바그라다스 전투

 


바그라다스 전투
Battle of the Bagradas River
'''시기'''
기원전 255년
'''장소'''
북아프리카 튀니스
'''교전국'''
[image] 로마 공화정
[image] 카르타고
'''지휘관'''
[image]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
[image] '''크산티푸스'''
'''병력'''
보병: 15,000명
기병: 500명
보병: 12,000명
기병: 4,000명
코끼리: 100마리
'''피해'''
사망: 12,000명
포로: 500명
사망: 800명[1]
'''결과'''
로마군의 전멸과 시칠리아에 대한 카르타고의 반격 시작
1. 개요
2. 전개
3.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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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1차 포에니 전쟁북아프리카의 바그라다스에서 벌어진 로마군과 카르타고군의 전투.
에크노무스 해전의 패전으로 집정관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와 루키우스 만리우스 불소가 이끄는 로마군이 클루페아 해안에 상륙하여 카르타고에서 남동쪽 40마일 거리에 있는 아디스를 포위하자 카르타고는 급히 구원병을 파견했다. 그러나 하스드루발과 보스타르로 지휘 체계가 나누어진 카르타고군은 패퇴하였고 레굴루스는 강화를 요청하는 카르타고 사절단에게 시칠리아, 사르데냐, 코르시카를 양도할 것과 해군을 해산할 것을 요구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던 카르타고는 스파르타 출신의 용병대장 크산티푸스를 고용하여 이례적으로 지휘권을 위임하였고 바그라다스 평원에서 레굴루스가 이끄는 로마군과 맞서게 한다.

2. 전개


당시 레굴루스의 동료 집정관인 불소는 로마 함대를 이끌고 이탈리아로 귀국한 상태였다. 왜냐하면 로마는 3월 15일에 집정관이 교체되고 전임 집정관이 다음 집정관의 선거를 주최해야 하기 때문에 후임 집정관이 도착할 때까지 레굴루스가 클루페아 해안에 남기로 한 것인데 아디스에서 카르타고군을 격퇴하여 우세를 점한 레굴루스는 자신의 임기 동안 전쟁을 끝내 전공을 얻고 싶어했다.
폴리비오스에 따르면 레굴루스에게는 1만 5천의 보병과 500명의 기병이 있었고 크산티푸스가 이끄는 카르타고군은 보병 전력에서는 1만 2천으로 열세에 있었으나 4천의 기병 전력과 100여 마리의 코끼리 부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양군의 배치가 끝나자 크산티푸스는 코끼리들을 보내 로마 중보병의 발목을 붙잡았고 8:1이라는 압도적인 기병 전력의 열세를 견디지 못한 로마 기병이 패주하면서 로마군의 측면이 포위당하게 된다. 이때 로마군의 격렬한 저항으로 카르타고의 코끼리 부대가 전선을 이탈하자 레굴루스는 크산티포스가 지휘하는 그리스 용병의 팔랑크스 진형을 공격하려고 시도했지만 로마 기병을 격파하고 돌아온 4천의 카르타고 기병이 측면을 공격하면서 전열이 붕괴된 로마군은 1만 2천의 병력이 죽고 집정관 레굴루스를 비롯한 500명이 포로가 되는 참패를 당한다.

3. 결과


카르타고군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2천의 로마군 패잔병들은 로마 함대의 구조를 받아 아프리카에서 탈출한다. 이후 대규모의 해난 사고를 겪은 로마는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아프리카에 상륙할 때까지 카르타고 본국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포기하였으며, 이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레굴루스는 로마가 카르타고의 강화 협상을 거부한 뒤 처형당한다.
[1] 폴리비우스 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