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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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비 피셔는 미국의 체스 선수이자 제 11대 체스 세계 챔피언이다.
2. 상세
바비 피셔는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전설의 체스 선수이며, 날카로운 계산력과 매서운 공격력이 돋보이는 선수였다. 바피 피셔는 6살때 처음 체스를 배웠다.
바비 피셔는 1957년 14세 당시 최연소 미국 챔피언이 되었으며 인터내셔널 마스터 타이틀을 취득했고, 그 다음 해인 1958년 당시 15세의 나이로 미국 역사상 최연소 그랜드 마스터 타이틀을 취득했다. 이후 1962년도에 미국 국내 대회에는 출전하는 대신 국제 무대에서 은퇴했다가 1966년도에 다시 복귀했다. 그리고 1968년도에 국제무대에서 은퇴했다가 1970년도 소련 대 세계전에서 다시 복귀했다.
1958년 세계 체스 챔피언십 지역 간 예선에서 공동 5위로 통과, 1959년도 도전자 결정전에 첫 진출하였다. 이때 피셔의 나이는 16세로, 2007년 망누스 칼센 이전까지 역대 최연소 도전자 결정전 진출자였다.
1962년 도전자 결정전에서 승부조작 논란을 제기하였다. 당시에는 도전자 결정전이 8명 간의 쿼드러플 라운드 로빈으로 진행되었는데, 상위 3명의 소련 체스 플레이어들이 서로간의 12경기에서 평균적으로 '''단 19수'''만 두고 모두 무승부로 끝내버린 것. 이에 피셔는 3명이 짜고 모든 경기를 무승부로 한 게 아니냐고 주장하였다. 이는 사실상 받아들여지고 FIDE에서는 이러한 논란에 대응하기 위해 이후 도전자 결정전부터는 기존의 풀리그제에서 싱글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제로 방식이 변경되었다.
1971년도 도전자 결정전에서는 소련의 마르크 타이마노프에 6 대 0으로 완승하고 덴마크의 벤트 라르센에게도 6 대 0으로 완승을 거둔다. 전직 체스 세계 챔피언인 티그란 바르타노비치 페트로시얀에 5승 3무 1패로 승리하여 당시 제 10대 세계 체스챔피언이었던 보리스 바실리예비치 스파스키의 도전자로 나설 자격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뒤인 1972년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있었던 세계 체스 챔피언십 대회에서 당시 세계 체스챔피언 스파스키에게 7승 11무 3패로 승리하고 세계챔피언이 된다.
1975년도에는 방어전의 운영을 둘러싸고 세계 체스 연맹과 대립했다. 피셔는 기존 방식인 24전제가 무승부를 너무 유도한다고 주장하며, 초대 챔피언십 방식이었던 무승부 관계없이 먼저 10승을 거둔 플레이어가 이기는 방식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이는 부분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결국 그는 타이틀을 반납하고 그 타이틀은 1974년도 도전자 결정전 우승자인 카르포브에게 돌아간다.
그 후 오랜 시간동안 체스계에서 모습을 감췄지만 1992년 돌연 복귀해 상술했던 규정대로 유고슬라비아에서 스파스키와 다시 맞붙어 승리한다. 이 승리로 300만달러 이상의 상금을 받지만 당시 미국이 취한 유고슬라비아 경제 제재 조치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다시 소식 불명이 된다. 이 기소에 대해 피셔 자신은 반유대주의 발언과 반미 발언에 대한 정치적 박해라고 주장했다.
그 후 일본에 주재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고 2004년 7월 14일 나리타 공항에서 필리핀으로 출국하려다 출입국 관리법 위반 혐의로 도쿄 입국 관리국 나리타 공항 지국에 구속되었다. 같은 해 8월 친교가 있던 일본 체스 협회 사무국장 와타이 미요코와 결혼하게 된다.
미국 정부는 신변을 요구했지만 피셔 측은 거부했다. 2005년 3월 21일 아이슬란드 정부가 피셔에게 시민권을 주는 조치를 취해 일본 정부는 피셔의 아이슬란드 출국을 허락했다. 이후 아이슬란드에 체류했지만 2008년 1월 17일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현지 미디어에 의해 전해졌다.
3. 여담
폴 모피 이후로 유럽(특히 소련과 러시아)이 독식하던 체스 챔피언계에서 유일한 미국인 세계 챔피언이다보니 미국에서 인기가 많다.
바비 피셔는 미국 체스 챔피언십에 8회 출전하여 모두 우승을 거두었다. 그 중 6번째로 출전한 대회인 1963-64년 대회에서는 무려 '''전승 우승'''을 기록했는데, 이는 미국 체스 챔피언십 대회 역사상 유일무이한 전승우승이다.
바비 피셔 본인은 유대인이었으나 유대인을 싫어했다. 전 하인 도네르에 따르면 피셔는 히틀러를 존경했고 그에 대한 거라면 닥치는 대로 읽었다고 한다.
역사상 최고의 체스 선수를 논할 때 그의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역대 Elo 레이팅 랭킹에선 30위 권이지만 이는 레이팅 인플레이션의 영향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했을 때 2890점대에 해당한다는 연구도 있다. 특히 동시대 다른 플레이어들과 격차 면에서 압도적인 기록을 보이는데, 2위 스파스키보다 레이팅이 120 더 높았다. 이는 예상 승률 66%에 해당하는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