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사라브 1세

 


? ~ 1351? 1352?
'''바사라브 창건공(Basarab Intemeietorul)'''
1. 개요
2. 업적
2.1. 1330, 불가리아 제2제국의 차르, 이반 알렉산더의 재위에 도움
2.2. 수도 재건, 1340
3. 가족
3.1. 아버지
3.2. 아들
3.3. 손자


1. 개요


왈라키아 공국보이보드. 독립 왈라키아 공국의 '''창건자이자 최초의 군주'''. 이후 왈라키아 공국을 200여년간 지배하는 바사라브 공가의 시조.
그의 생애의 많은 부분이 불확실하지만, 그의 이름이 튀르크 스타일이고, 14세기의 기록을 통해 루마니아인(블라치, Vlach.)이었다는 것은 교차확인이 가능하다. 1324년 이전에 권력을 잡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 과정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의 아버지, '토코메리우스'로부터 승계받았다는 설과, 왈라키아의 전설적 창건자, '라두 네그루'로부터 물려받았다는 설이 있다.
헝가리의 왕, 카로이 로베르트로부터 왈라키아 지방의 총독으로 명받았던 1324년 7월 26일에 발행된 왕실의 헌장에서 그에 대한 첫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2. 업적



2.1. 1330, 불가리아 제2제국의 차르, 이반 알렉산더의 재위에 도움


당시 불가리아 제2제국은 이바일로의 난이 진압된 후 귀족들의 왕위 쟁탈전이 계속되는 통에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바사라브1세는 사위, 이반 알렉산더르(Иван Александър, 재위 : 1331 ~1371)를 불가리아 제2제국의 차르가 되는데 도움을 준다. 이후 불가리아 제2제국은 다시 안정되어 중흥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1349년에 불가리아 제국의 차르, 이반 알렉산더르는 바사라브 1세의 딸이자 자신의 아내인 테오로라와 이혼하고 그녀를 수도원에 보내버린다. 결국, 이반 알렉산더르의 아들이자, 바사라브 1세의 손자인 이반 스라치미르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독립국을 세운다.

2.2. 수도 재건, 1340


1330년에 포사다 전투에서 승리한 후, 당시 헝가리 왕국의 국왕 카로이 로베르트에 의해 무너졌던 수도(아르게스)를 10년 후 재건한다. 이 때 0.76헥타의 크기에 궁전과 교회를 건설한다. 1359년에 '왈라키아 정교회'가 들어선 곳도 이곳이다. 이 곳은 트란실바니아 지역의 '시비우'와의 무역로로서 기능한다.

3. 가족



3.1. 아버지


  • 토코메리우스: '토크 타미르(Toq-tämir)'라는 13세기 자주 쿠만과 타타르 지방에서 사용되던 이름으로도 보이고, 당시 왈라키아를 지칭하던 '블라키(Vlach)'라는 뜻으로도 보이는 이름을 가짐.

3.2. 아들


  • 니콜라에 알렉산드루(Nicolae Alexandru)

3.3. 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