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라키아 공국

 


'''루마니아국'''
'''Țeara Rumânească'''
'''발라히아'''
'''Valahia'''
'
[image]
국기
[image]
1330년[1] ~ 1859년, 530년간
수도
아르제슈(1330~1418)
트르고비슈테(1418~1659)
부쿠레슈티(1659~1859)
정치체제
전제군주제, 선거군주제
국가원수
공작(보이보드)
주요 군주
미르체아 1세
블라드 3세

언어
루마니아어
문자
키릴 문자
종교
정교회
종족
루마니아인
성립 이전
불가리아 제2제국
헝가리 왕국
동군연합 이후
몰다비아 왈라키아 연합공국
1. 개요
2. 역사
2.1. 건국 이전
2.1.1. 1317, 바사라브 1세의 보이보드 임명
2.1.2. 1325, 바사라브 1세의 독립선언
2.2. 건국
2.2.1. 포사다 전투(1330)
2.2.2. 미르체아 1세(1386 ~ 1418)
2.2.2.1. 1387, 폴란드 왕국의 봉신
2.2.2.2.1. 10월 10일, 로비네 전투
2.2.2.3. 1395, 헝가리 왕국의 봉신
2.2.2.5. 1417, 오스만 제국의 봉신
2.2.3. 블라드 3세(1차: 1448, 2차: 1456 ~ 1462, 3차: 1476)
2.2.4. 블라드 수도공(1차: 1481, 2차: 1482 ~ 1495)
2.2.4.1. 1526, 모하치 전투
2.2.5. 미하이 2세(1593 ~ 1601)
2.3. 식민지
2.3.1. 1714 선거제 폐지, 오스만 제국의 직접 통치: 파나리오치 시대
2.3.2. ~ 1853, 러시아 제국의 속국화
2.3.3. 1856 ~ 1859, 오스만 제국의 자치령
2.4. 1859 ~ , 재독립, 동군연합과 함께 소멸
3. 수도
4. 지형
6. 정치형태
6.1. 지도자
6.1.1. 선출법
6.2. 특권계급
6.3. 노예 계급
6.4. 종속
7. 종교
8. 역대 군주(보이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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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현대 루마니아어
Țara Românească, '로마인의 땅'
România, '로마인의 나라'
Valahia, '블라흐인의 나라'
중세 루마니아어
Цѣра Рȣмѫнѣскъ
Țeara Rumânească
'로마인의 땅'
불가리아어
Влашко (''Vlaško'')
세르비아어
Влашка (''Vlaška'')
체코어
Valašsko
헝가리어
Havasalföld
독일어
Walachei
라틴어
Valachia / Transalpina
비잔틴 제국
Οὐγγροβλαχία
오스만 터키어
افلاق (''Eflâ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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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왈라키아 공국이란 중세 ~ 근세 루마니아의 세 구성지역인 중서부 트란실바니아, 남부 왈라키아, 동부 몰도비아 중 남부의 왈라키아 지방에 세워졌던 보이보드(Voivode) 국가를 가리킨다. 보이보드를 보통 공작과 동격으로 보기 때문에 왈라키아 공국(Principality)이라고 한다.
공국의 주류 민족인 루마니아인은 스스로를 로마인이라 부르고 공국도 로마인의 땅(Țeara Rumânească)이라고 불렀으며 이 이름이 현대 루마니아 국가의 기원이다. 하지만 주변 민족들은 이들을 블라흐(Vlach)인이라고 불렀는데, 루마니아인들이 이를 받아들인 표현이 발라히아(Valahia)이다. 영어 이름 왈라키아(Wallachia)는 발라히아가 독일어를 거쳐 변형된 것이다.[2]
15세기경 50만명 정도의 인구로 추산되며[3]지배가문은 바사라브 가문, 지배체제는 전제군주정, 귀족 계층은 보야르, 종교는 정교회였다.
드라큘라의 모델로 유명해진 블라드 가시공이 왈라키아 공작이다.

2. 역사



2.1. 건국 이전



2.1.1. 1317, 바사라브 1세의 보이보드 임명


1317년 바사라브 1세헝가리 왕국의 영토였던 왈라키아 지역의 보이보드로 임명된다.

2.1.2. 1325, 바사라브 1세의 독립선언


1325년, 아르제슈(Arges)에서 당시 형가리 왕 '카로이 1세'의 지배에 항거하여 독립을 선포한다.

2.2. 건국



2.2.1. 포사다 전투(1330)


이후 바사라브 1세는 당시 헝가리 왕국의 왕이었던 카로이 1세와의 '포사다 전투(1330년)'에서 승리하면서 공국이 헝가리 왕국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한다. 이후 왈라키아 공국의 왕들은 바사라브 1세의 자손들인 '바사라브 가문'이 차지하게 된다.
이 후, 헝가리 왕국오스만 제국의 각축장이 되면서, 서로의 입맛에 맞는 지배자를 선출시키기 위해 전투와 암약이 끊이질 않게된다.
보통 한 세대를 넘기기 힘들게 정권이 자주 바뀌며, 400여년간 혼돈의 카오스가 펼쳐진다. 연표파악이 매우 힘든데, 한 공작이 지배한 시기가 한 해 내에 3, 4번 바뀔 때도 있었다(...).
그중에서 유명한 보이보드들은 다음과 같다.

2.2.2. 미르체아 1세(1386 ~ 1418)


오스만 제국이 북상하던 시기, 왈라키아 공국을 30여년간(!) 다스려 공국을 안전히 지켜낸 인물로, 그 업적으로 인해 '''대(大)미르체아(Mircea cel Mare)'''이라 불린다.
하지만 즉위과정에서 형을 살해했다는 의혹도 있어, 이후 이어지는 피를 부르는 가문간의 복수가 시작된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후 형의 자손들은 '''다니스티 혈족'''을, 자신의 자손들은 '''드라큘레스티 혈족'''을 구성하게 된다.
군주로서 재능이 뛰어났던 미르체아는 즉위 이후 왈라키아 공국을 크게 발전시켜 전성기를 누리게 만들었다. 그는 교회를 많이 짓는 등 정교회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것을 통해 민심을 안정시켰고,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 등지에서 온 상인들에게 특권을 주는 정책을 펴 많은 외국 상인들을 왈라키아로 끌어들여, 공국을 동유럽 무역의 중심지들 중 하나로 만들었다. 이를 통해 많은 부를 얻은 미르체아는 그 부를 국방에 투자, 다뉴브 강가 등의 군사적 요충지에 건설한 요새들을 보수, 증축하였고, 농민들로 구성된 군대를 육성하였다.

2.2.2.1. 1387, 폴란드 왕국의 봉신

폴란드 왕국의 종주권 인정, 당시 폴란드 왕국은 '브와디스와프 2세'와 그의 아내 야드비가가 공동 통치하고 있었다.

2.2.2.2. 1394, 오스만 제국바예지트 1세의 침공

1394년 오스만 제국바예지트 1세는 4만명의 병사와 함께 다뉴브 강을 넘어 침공해 온다. 당시 미르체아 1세에게는 1만의 병력 밖에는 없었기에 전면전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 게릴라 전술을 사용하게 된다.

2.2.2.2.1. 10월 10일, 로비네 전투

기적적으로 오스만 제국의 군대를 '로비네 전투'에서 물리쳤으나 미르체아 1세역시 피해를 많이 입고, 헝가리 왕국으로 피신하게 된다.

2.2.2.3. 1395, 헝가리 왕국의 봉신

헝가리 왕국의 종주권 인정, 당시 헝가리 왕국의 왕은 지기스문트 였다.

2.2.2.4. 1396, 니코폴리스 전투

1396년 9월 25일에 오스만 베이국의 6만 군대과 유럽연합( 헝가리 왕국, 신성 로마 제국, 프랑스, 왈라키아 공국, 폴란드 왕국,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왕국, 구스위스 연방, 튜튼 기사단, 베네치아 공화국, 제노바 공화국, 성 요한 기사단)의 13만 군대 사이 사이에서 일어난 전투이다. 니코폴리스 십자군이라고 불리며 50년 후에 벌어질 바르나 십자군(1444)과 함께 중세 말기 최대규모의 십자군 원정들 중 하나였다. 결과적으로 오스만 베이국이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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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tle of Nicopolis (1396), f. 263v. Sébastien Mamerot, Les Passages d’Outremer, Fr. 5594, BnF

2.2.2.5. 1417, 오스만 제국의 봉신

오스만 제국의 종주권 인정, 당시 황제는 메흐메트 1세였다.

2.2.3. 블라드 3세(1차: 1448, 2차: 1456 ~ 1462, 3차: 1476)


'''평생을 싸웠다.''' 처음에는 오스만의 편에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귀족계급과 싸웠고, 영주가 된 후에는 아버지의 원수중 하나였던 후녀디 야노시와 힘을 합해 오스만과 싸웠다. 후에는 오스만의 편이 된 동생, 라두 3세와 싸웠으며, 죽은 후에는 형인 블라드 수도공이 본인과는 정반대로 귀족친화적인 노선으로 정치를 했다.
동생은 오스만에게 협력했고, 형은 귀족들과 손을 잡았지만, 본인은 당시 최강의 세력이었던 오스만에게도 저항하고, 당시 왈라키아의 경제적인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던 귀족과 독일인들을 탄압한 희한한 인물. 덕분에 백성들에게는 영웅으로 모셔지게 된다. 이래저래 대단한 인물.
본명이나 공식적인 이명인 용의 아들보다는 별명인 블라드 체페슈(Vlad Ţepeş)쪽이 엄청나게 유명한 인물. 체페슈는 단순히 가시나 꼬챙이가 아닌 그것으로 무언가를 '꿰뜷는 자', 즉 인물을 칭하는 호칭이므로 직역하자면 '(가시나 꼬챙이로)꿰뜷는 자 블라드'로 칭하는 것이 적절하며 더 간단히 하면 블라드 가시공(公)으로 표현된다. 단 체페슈라는 별명은 말년의 그의 잔혹성과 그로 이루어진 꼬챙이형의 악명이 유명해지면서 그의 말년과 사후에 갑작스럽게 유명세를 탄 이명이었기에 그의 생전엔 체페슈가 아닌 드라큘라의 모티브인 드러쿨레아(Drăculea=용의 아들)[4]란 별명으로 주로 불렸으며 블라드 본인도 이 별명이 마음에 들었는지 본인의 친필로 보이는 서명 중에서 Wladislaus Dragwlya라고 써있는 서명이 발견되기도 했다.

2.2.4. 블라드 수도공(1차: 1481, 2차: 1482 ~ 1495)


블라드 가시공의 배다른 형이고, 그와는 정치적으로 다른 노선을 걸었던 인물.
귀족들에게 엄격하게 대하고 그들을 탄압했던 동생에 비해, 귀족들과 경제인들과 잘 지냈고 결국 이들로 인해 말년에 13년 간이나 왈라키아 공국을 다스렸고, 70살까지 살며 아들에게 왕관을 넘겨주는 것까지 성공한 인물이다.

2.2.4.1. 1526, 모하치 전투

더불어 모하치 전투(1526) 이후에 몰락한 헝가리 왕국 대신, 합스부르크의 입김도 더해진다.

2.2.5. 미하이 2세(1593 ~ 1601)


1593년부터 1601년까지 왈라키아 공국의 공작.
오스만 제국신성로마제국이 전쟁[5]을 벌이고 있는 틈을 이용하여 세력을 넓혀 1599년부터 1600년까지는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공작, 1600년에는 몰다비아 공국의 공작을 겸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루마니아 출신의 군주 한 명이 오늘날 루마니아 영역 전체를 통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자신의 힘을 이용했다기보다 전쟁통에 오스만 제국의 지배체제가 잠시 흔들렸던 것을 이용한 데다 이웃한 강국, 폴란드가 몰다비아 지배를 노리고 있었기에, 통합 루마니아의 군주라는 지위는 반년 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어쨌던 루마니아 통합이라는 업적으로 인해, 미하이 2세는 오늘날 루마니아의 민족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루마니아 국가에도 등장할 정도.

2.3. 식민지



2.3.1. 1714 선거제 폐지, 오스만 제국의 직접 통치: 파나리오치 시대


인접 민족들의 잇단 침략을 받다가 16세기 초, 오스만 제국의 보호 하에 들어가고, 1714년 부터는 선거제가 폐지되어 완전히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이시기(1714 ~ 1821) 오스만 제국그리스 출신 부르주아 계급에 해당하는 파나리오테스 중 상당수는 외교관(Dragoman)으로서의 봉직에 대한 보상으로 도나우 공국(몰다비아 공국왈라키아 공국)의 군주(Hospodar; 보이보드 혹은 공)직을 지내기도 하였으며, 루마니아 역사에서는 이 기간을 보통 '파나리오치 시대'라고 부른다.

2.3.2. ~ 1853, 러시아 제국의 속국화


하지만, 러시아 제국이 점차 강대해저 가면서 결국, 부동항을 찾으려는 남하정책에 의해 속국화 되어가던중, 크림전쟁(1853)에서 러시아 제국이 패하자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2.3.3. 1856 ~ 1859, 오스만 제국의 자치령


이후, 1856년, 파리조약 체결 이후, 다시 오스만 제국의 '자치령'이 된다.

2.4. 1859 ~ , 재독립, 동군연합과 함께 소멸


1859년 몰다비아 공국과 같은 군주(알렉산드루 이오안 쿠자) 하에서 동군연합을 이루면서, 몰다비아 왈라키아 연합공국이 되면서 왈라키아 공국이란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3. 수도


첫번째 수도(1330 ~ 1418, 89년간): 쿠르테아 데 아르제슈(Curtea de Arges): 바사라브 1세가 공국을 창건한 곳
두번째 수도(1418 ~ 1659, 242년간), 트르고비슈테
세번째 수도(1659 ~ 1859, 201년간), 부쿠레슈티

4. 지형


문테니아(동쪽, 거대한 지역)
올테니아(서쪽)

5. 언어문자


언어는 루마니아어, 사용된 문자는 키릴 문자.
왈라키아 공국의 키릴 문자와 몰다비아 공국의 키릴 문자 표기법은 약간 다른데, 가령 '''ea'''의 경우 왈라키아 공국에선 '''Ѣ(yat)'''라고 썼지만 몰다비아 공국에선 '''Я(ya)'''라고 썼다. 왈라키아 공국에서 ea는 ia와 거의 똑같이 '야'로 발음하는데 어원에 따라 구분해 적는다.

6. 정치형태


왈라키아 공국의 정부형태는 비잔틴 제국, 즉 동로마 제국의 것을 사용했고, 이는 왕권신수설전제군주제였으며, 또한 보야르들에 의해 선출되는 선거군주제였다.

6.1. 지도자


보이보드(viovode) 혹은 호스포다(Hospodar)라는 명칭을 사용했는데, 이는 영어로는 프린스(prince: 공작, 제후)라고 번역된다.
'바사라브 가문'에서 48명, 보그단-무삿 가문에서 2명, 바사랍과 모빌라 가문들에서 6명, 다양한 가문에서 19명이 보야르들간의 선거제도를 통해서, 이후 오스만 제국의 휘하에서 63명이 지배를 한다.
도합, 138명이고, 이중 왈라키아 공국이 독립적으로 존속한 기간인 1317년부터 오스만 제국에게 직접적으로 지배를 받는 1714년까지, 총 398년간은 선출된 75명의 공작에게 지배를 받았다.
평균 통치기간은 5.3년 정도 된다.

6.1.1. 선출법


지배가문(ruling family)인 '바사라브 가문'의 일원 중에서, 보야르들에 의한 선거에 의해 선출(election).

6.2. 특권계급


보야르 : 지방 토호 + 보이보드가 선택한 사람들

6.3. 노예 계급


티가니(롬인 '집시', Romani people)

6.4. 종속


14세기 중반(1350년)이후, 오스만 제국발칸 반도를 정복하기 시작하자, 여러 국가들을 봉신으로 섬기게 되었다. 예를 들어, 미르체아 1세(통치시기: 1386 ~ 1418)의 경우에는 폴란드 왕국(1387)과 헝가리 왕국(1395)의 종주권을 인정하면서 오스만 제국에게 대항했으나, 결국 1417년에는 오스만 제국의 신하국이 된다.

7. 종교


정교회

8. 역대 군주(보이보드)


왈라키아 공국을 다스리던 보이보드들의 목록.
참고: 영문 위키피디아 링크: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rulers_of_Wallachia

집권기: 1330 ~ 1352, 23년간, 수도 아르제시(Argeș)에서 통치: 치세 말기 유럽에서 흑사병(1346 ~ 1353)이 유행함.

집권기: 1352 ~ 1364, 13년간

  • 블라디슬라프 1세: 니콜라에 알렉산드루의 첫째 아들(1/2): 자손이 없음.
집권기: 1364 ~ 1377, 14년간
  • 라두 1세: 니콜라에 알렉산드루의 둘째 아들(2/2), 단과 미르체아 1세의 아버지. 이후, 바사라브 가문은 첫째 아들의 다니스티 가문과 둘째 아들의 드라큘레스티 가문으로 나뉘게 됨.
집권기: 1377 ~ 1383, 7년간

  • 단 1세: 라두 1세의 첫째 아들(1/2), 의문의 죽음, 후에 다니스티의 시초
집권기: 1383 ~ 1386, 4년간
1차 집권기: 1386 ~ 1394, 9년간
2차 집권기: 1396 ~ 1418, 22년간, 이후 드라큘레스티의 시초. 이때부터 오스만 제국에게 공물을 바침. 얀 후스(44?) 화형당함(1415)

  • 블라드 1세(다니스티): 찬탈자, 단 1세의 셋째 아들? 사생아?(3/3)
집권기: 1394 ~ 1396, 3년간
  • 미카엘 1세(드라큘레스티): 미르체아 1세의 첫째 아들(1/4)
집권기: 1415 ~ 1420, 초반 3년은 아버지와 함께 공동 통치를 하나 그 후, 아버지 미르체아 1세가 사망하며 단독으로 통치하게 됨. '아르게스'와 '트르고비슈테'를 모두 수도로 사용,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중 사망
  • 단 2세(다니스티): 단 1세의 첫째 아들(1/3)
1차 집권기: 1420 ~ 1421, 2년간: 1420년, 후스파의 명장, 얀 지슈카(61살), '타르보 파'의 지휘관으로 임명됨, 신성 로마제국의 '후스파 십자군'과 전쟁.
2차 집권기: 1421 ~ 1424, 4년간
3차 집권기: 1423 ~ 1424, 2년간, 1424년, 후스파의 명장, 얀 지슈카(65살) 전염병으로 사망.
4차 집권기: 1426 ~ 1427, 2년간
5차 집권기: 1427 ~ 1431, 5년간
  • 라두 2세(드라큘레스티): 미르체아 1세의 둘째 아들(2/4)
1차 집권기: 1421, 1년
2차 집권기: 1423, 1년
3차 집권기: 1424 ~ 1426, 3년
4차 집권기: 1427, 1년
  • 알렉산드루 1세(드라큘레스티): 미르체아 1세의 넷째 아들(4/4)
집권기: 1431 ~ 1436, 6년간
1차 집권기: 1436~1442, 7년간 (블라드 가시공의 아버지, 7년 후 미르체아 2세에게 양위후 퇴위) 신성 로마제국 황제, 지기스문트 사망(1437, 70세).
2차 집권기: 1443~1447, 5년간 (후녀디 야노시(36살)의 후원을 받아 집권한 바사랍 2세로부터 탈환. 이후 블라디슬라프 2세에게 암살당함.)

1차 집권기: 1442, 1년 (블라드 가시공의 둘째 형. 아버지로부터 승계)
2차 집권기: 1446~1447, 2년간 (아버지와 함께 집권중 암살당함.)
  • 바사라브 2세(다니스티): 단 2세의 첫째 아들(1/4)
집권기: 1442~1443, 2년간 (후녀디 야노시(36살)의 도움으로 집권 시작)
  • 블라디슬라프 2세: 단 2세의 셋째 아들 (3/4)
1차 집권기: 1447~1448, 2년간 (블라드 가시공의 아버지와 둘째 형을 암살하고 집권)
2차 집권기: 1448~1456, 9년간 (블라드 가시공을 몰아낸 후, 헝가리 왕국의 세력하에 집권, 하지만 후에 오스만 제국쪽으로 배신)
1차 집권기: 1448(17세), 1년 (블라디슬라프2세의 집권 이후, 오스만 제국의 파견으로 집권)
2차 집권기: 1456(26세)~1462(32세), 7년간 (후녀디 야노시(50살)의 도움으로 블라디슬라프 2세를 몰아낸 후, 집권에 성공. 하지만, 7년 후 동생에게 뺏기고 도망)
3차 집권기: 1476(46세)~1477(47세) 1월, 2년간
1차 집권기: 1462~1473, 12년간(!) (을 몰아내고 집권)
2차 집권기: 1473~1474, 2년간
3차 집권기: 1474, 1년
4차 집권기: 1474~1475, 2년간
  • 바사라브 3세 라이오타 셀 바트란(다니스티): 단 2세의 넷째 아들(4/4).
1차 집권기: 1473, 1년
2차 집권기: 1474, 1년
3차 집권기: 1474, 1년
4차 집권기: 1475 ~ 1476, 2년간: 블라드 가시공에게 패해 물러남
5차 집권기: 1476 ~ 1477, 2년간: 블라드 가시공 사후, 다시 복권.
  • 바사라브 4세 테벨루스 셀 타나르('젊은 바사랍', 다니스티)
1차 집권기: 1477 ~ 1481, 5년간
2차 집권기: 1481 ~ 1482, 2년간
1차 집권기: 1481, 1년
2차 집권기: 1482 ~ 1495, 14년간(!)

집권기: 1495 ~ 1508, 14년간(!)
집권기: 1508 ~ 1509, 2년간
집권기:1510, 1년

...
집권기: 1593~1601, 9년간
...

[1] 포사다 전투를 기준으로[2] 독일어에서 W는 V의 발음이 나기 때문에 영어로 발음하면 왈라키아가 된다.[3]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Wallachia#Historical_population 영문위키피디아 링크[4] 그의 아버지의 별명이 용공, 즉 용 공작이란 별명이었던 만큼 그에게서 태어난 블라드 3세는 별명대로라면 용의 아들이 되는 셈.[5] 1592 ~ 1605, 13년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