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제2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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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불가리아 제2제국은 1185년부터 1396년까지 존속한 국가다. '제2'라는 수식어는 동로마 제국에게 멸망당하기 전의 불가리아 제1제국과 구별하기 위해 붙인 것으로, 당시에는 그냥 불가리아 제국이었다. 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으로 동로마 제국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불가리아 제1제국의 영토 상당 부분을 회복하였으나, 이후 세르비아 제국에 밀려 세력이 약화되고 결국 14세기 말 오스만 제국에게 점령되어 멸망했다. 전성기에 해당하는 14세기에는 흑해부터 아드리아해까지 널리 영향을 미치며 동로마 문화와 슬라브 문화를 융화한 불가리아 문화의 중흥을 이루었다.
2. 역사: 1185 ~ 1396
2.1. 1185 동로마제국으로부터의 반란과 독립
1018년 불가리아 제1제국이 동로마 제국의 바실리오스 2세에 의해 멸망한 후, 불가리아인들은 기존 동로마인과 동등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세금과 부역이 증가하고 외적의 침입이 잦아지자, 1185년 터르노보(Търново)[2] 의 지방 귀족이던 페터르 4세(Петър ІV, 재위 1185 - 1197)와 이반 아센 1세(Иван Асен I, 재위 1187/1188 - 1196)가 반란을 일으켜 불가리아 제2제국을 건설하고, 차르로 즉위했다.
2.2. 1196 ~ 1207 로마녹토노스 칼로얀: 로마인 학살자
칼로얀(Калоян, 재위 1196 - 1207)[3] 의 재위기에는 제4차 십자군 원정이 일어나 십자군이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정복하고, 약탈하는 사건이 발생한다.(1204년) 이때 차르 칼로얀은 십자군이 갓 세운 라틴 제국을 공격해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휩쓸기도 하였다. 심지어 라틴 제국의 초대 황제 보두앵 1세마저 포로로 사로잡아 처형시켜 버리기도 했다.
동로마인들은 곳곳에서 라틴 제국군을 때려잡는 칼로얀을 처음에는 환영했지만, 불가리아의 위세가 빠른 속도로 강해지자 서서히 라틴 제국과의 제휴를 도모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분노한 칼로얀은 트라키아 지방의 동로마인 마을을 잇따라 습격하여 주민들을 학살하거나 약탈하고 자기 땅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때 칼로얀이 자칭한 별명이 바실리오스 2세의 별명, '불가록토노스(Boulgaroktonos, 불가르인 학살자)'에서 따온 로마녹토노스(Romanoktonos, 로마인 학살자).
2.3. 1218 ~ 1241 이반 아센 2세: 전성기, 불가리아 교회의 독립
이반 아센 2세(Иван Асен II, 재위 1218 - 1241) 시기 제국은 전성기를 맞아 라틴 제국 및 그리스와 평화 협정을 맺었으며, 라구사와의 교역 증대로 상업이 발전했고, 1235년에는 불가리아 교회의 독립과 수좌대주교좌를 얻어내기도 하였다.
2.4. 1278 ~ 1279, 이바일로의 난
이반 아센 2세 사후 불가리아 제국은 내분과 봉건제의 강화로 농민들의 삶이 피폐해졌고, 이는 도브루자(Добруджа) 출신의 농민 이바일로(Ивайло)가 반란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이바일로의 난)
2.5. 1331 ~ 1371 이반 알렉산더르: 중흥기후, 3국으로 분리
이바일로의 난이 진압된 후 불가리아는 귀족들의 왕위 쟁탈전이 계속되다가, 자신의 장인어른이던 왈라키아 공국의 바사라브 1세의 지원을 받은 이반 알렉산더르(Иван Александър, 재위 1331 - 1371)시기에 다시 안정되어 중흥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그가 첫번째 부인이던 황후를 수도원으로 보내버리는 행동(1349)을 하는 바람에 그 황후의 아들이었던 황태자 이반 스라치미르(Иван Срацимир, 재위 : 1356~1396)[4] 가 반발하여 비딘(Видин)에 독립 왕국을 세워버린다.
게다가 이반 알렉산더르의 뒤를 이어 정통 황제로 즉위한 이반 쉬슈만((Иван Шишман 재위 1371 - 1395)은 즉위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데다 유능한 인물이라고 하기도 어려워 강력한 지방 귀족이 '도브루자 공국'이라는 독립국을 세우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아버지 때부터 이어진 오스만 제국의 침공을 제대로 방어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황제를 자칭하고 있는[5] 형 이반 스라치미르는 이반 쉬슈만을 돕기는커녕 그의 뒤통수를 때리는 것이 다반사였고, 결국 삼분된 불가리아 제국은 하나씩 하나씩 오스만 제국에게 정복당한다.
2.6. 1393, 1395, 1396, 3국의 멸망
불가리아 제국의 수도 터르노보는 1393년에 함락되었고, 이반 쉬슈만이 오스만 제국군도 피할 겸 헝가리의 지원도 요청할 겸 머물고 있던 니코폴리스는 1395년에 함락되었다. 이반 스라치미르의 왕국도 1396년에 수도였던 비딘이 무너지며 멸망.
3. 경제
불가리아 제2제국의 경제는 제1제국 시절처럼 농업에 기반을 두었으나 동로마 제국의 지배의 영향 및 제2제국 성립 과정에서 약화된 동로마 영토 상당수를 병합한 영향으로, 제1제국 시기보다 상공업이 훨씬 발달한 상태였다. 모이시아와 도브루자 지역은 유명한 곡창지대였으며 제국 각지에서 고품질 와인이 생산되었다. 산악 지역에서는 가축을 주로 사육하고 임업을 행했으며, 특히 꿀의 품질이 좋기로 유명했던 자고레 지역에서는 집약적으로 양봉을 하여 꿀과 왁스를 생산한 후 이웃 국가로 수출하였다.
당시 불가리아의 도시들은 빵, 치즈, 버터 및 와인 외에도 비단 생산으로 유명했다 한다. 도시 지역에서는 은화, 동전 등 화폐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불가리아 제2제국 황제들이 자체적인 화폐 주조권을 인정받고 콘스탄틴 티크 아센 (Constantine Tikh Asen, 1257 ~ 1277)을 비롯한 불가리아 제2제국 황제들이 통화를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이루어진 결과였다.
13세기 후반기 들어서는 몽골 제국이 불가리아 제2제국을 침략한 여파 및 세르비아 제국에 의해 불가리아의 영토가 축소된 결과 불가리아에서 주조되는 화폐들의 품질과 신용도가 크게 떨어지고 대신 다른 국가 화폐들이 불가리아 제국에서 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해외 화폐 중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통화 가치가 안정적인 베네치아 공화국 및 제노바 공화국 화폐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