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만

 




1. 개요
2. 루스 공국들과의 혈투
3. 부족 연맹 국가
4. 멸망
5. 기타


1. 개요


Cuman. 또는 '폴로베츠'라고도 한다. 11세기 말 ~ 13세기 초 몽골의 침공 때까지 볼가강 하류 평원부터 오늘날의 카자흐스탄 일대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다스린 튀르크계 부족 연맹체. 페체네그족이 동로마 제국과의 레부니온 전투, 베로이아 전투에서 대패하며 소멸한 이후에는 다뉴브 강 ~ 카프카스에서 발하슈 호 인근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에 거주하게 되었다.
11세기말에 동로마 제국의 용병으로 애용되었다.
전성기인 12세기에는 다뉴브(도나우)강~아랄 해 북안의 드넓은 지역을 다스리며 헝가리(마자르), 페체네그족, 동로마 제국, 루스 공국들, 볼가 불가리아, 조지아 왕국, 카라키타이 (서요), 호라즘 왕조 등과 접경하며 교류 및 전쟁을 치렀다.
특히 키예프 공국과 100여년 간의 혈투를 치루어 10세기 말 ~ 11세기 중반에 이르렀던 키예프의 번영을 종식시키고, 둘다 몽골 군대의 말발굽에 짓밟히게 되었다.

2. 루스 공국들과의 혈투


키예프 루스가 11세기 초의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무역'''이었다. 흑해 주변의 크림반도와 드네프르 강의 하류로 연결되는 동로마 제국의 동방 물품을 육로를 통해 중부 유럽으로 보내고, 운하와 강으로 연결되는 북해를 통한 해로로 북유럽 국가들에게 파는 중개업이었다.
즉 입구 1개, 출구가 2개인 셈이었는데 모든 무역의 시발점인 크림반도와 흑해 북안의 유목민족들 (페체네그 - 쿠만 등) 은 키예프 공국의 경계대상 1호였다.보통은 무역로만큼은 확보했던 공국 앞에 11세기 중반, 페체네그를 쫓아내고 등장한 쿠만인은 만만한 세력이 아니었다.
두 세력의 역사적인 첫 만남은 1055년에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 아직은 쿠만 세력이 드네프르 강 동쪽에서 완전히 세력을 다잡지 못해서 그랬을 듯 하다. 그러나 1061년, 유력 부족장 소칼의 지휘하에 쿠만 군대는 키예프 남쪽의 프레야슬라프 공국을 유린했다. '''175년 동안 이어질 기나긴 항쟁의 시작이었다.''' 1068년, '''얄타 강 전투'''에서 쿠만 군대는 야로슬라프 1세 무드르이의 세 아들이 이끈 군대를 격파했고, 대규모 물적, 인적 약탈을 자행하여 이슬람 세계에 슬라브인 노예가 넘쳐나게 되었다.
현재의 우크라이나의 대부분 지방이 몽골의 침입에 앞서서 11세기 말에 이미 초토화되어 있었다.
1093년 5월에는 체르니코프 공이자 훗날 키예프 대공이 되는 블라디미르 2세 모노마흐(1073~1125 재위)마저 '''스투그나 강 전투'''에서 패배시키며 기세를 올렸으나, 다른 루스 공국들의 원군을 이끈 모노마흐에게 패배하여 일시적으로 물러났다. 혼란의 와중에 쿠만의 지배를 받던 페체네그 일부와 오구즈 일부가 탈출하여 키예프로 귀순하였고 변방 방어 군대가 되었다.
11세기 말에 쿠만인을 이끈 보냐크 칸(Boniak khān)은 1096, 1097, 1105, 1107년 등 수시로 키예프로 원정을 나갔다. 특히 1096년에는 키예프를 점령한 후 궁전을 불태우고, 우크라이나 중부에 아주 정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키예프의 유명한 동굴 수도원도 이때에 파괴되었다.
그 와중에 보냐크 칸은 1099년, 헝가리 원정을 떠나 승리하고 왕실 보물을 약탈해 오기도 하는 여유를 부렸다.
1107년, 왕자들이 이끄는 키예프군이 '''루브니 전투'''에서 승리할 때까지 점거는 지속되었다.
다만 이후에는 한동안 밀렸다. 블라디미르 2세 모노마흐가 키예프 대공이 되고 분열되어 있던 루스 공국들을 일시적으로나마 재통합하면서 쿠만족은 처참하게 밀려버렸다.
그러나 그 시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모노마흐와 그의 아들이 죽고 루스 공국들은 키예프 대공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기나긴 내전에 돌입했고, 쿠만족은 그틈에 힘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루스 공국들을 마구잡이로 약탈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약탈은 13세기 초엽까지 계속되었다. 그들의 약탈이 중단된 것은 루스 공국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요인에 의한 것이었다.

3. 부족 연맹 국가


12세기의 유대인 여행가의 기록에 의하면 그들에게는 왕이 없었고, 부족장끼리의 연맹의 형식으로 존재했다고 한다. 전쟁시를 제외하면 하나로 단결하지 않은 점은 특기할 만하다. 또한 전쟁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시의 지도자가 세습 왕조를 창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여러 세력끼리의 견제가 잘 이루어졌다고 볼 수도 있겠다.

4. 멸망


1239년, 이미 루스 공국들 대부분을 평정한 몽골군에게 패배하여 흑해 이북 스텝을 상실하였고, 1241년에 왈라키아와 다뉴브(도나우) 강 유역까지 빼앗기며 몽골에게 멸망당한다. 멸망후 쿠만인들의 상당수는 헝가리 왕국으로 도피했는데 당시 몽골과의 참혹한 전쟁 이후 심각한 인구 부족에 시달리던 헝가리는 이들을 받아들였고, 쿠만인들은 중부 헝가리에 정착하면서 약 17세기까지 천천히 동화되며 정체성을 이어나간다.
또한 쿠만족 공주와 헝가리의 왕이던 이슈트반 4세의 혼인 동맹이후 둘 사이에서 라슬로 4세가 태어나기도 했는데, 그는 '쿠만 왕 라슬로' 라고 불릴 정도로 친쿠만적인 정책을 펼치다 헝가리 귀족들의 반감을 사서 쫓겨나기도 했다.
쿠마니아는 쿠만인이 다수 토착민이던 킵차크족을 지배하는 구조였기에 몽골이 쿠마니아를 지배하던 시기엔 킵차크 칸국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몽골 정복 이후 많은 쿠만인들이 포로가 되었는데, 그 후예 중에는 아인잘루트 전투에서 키트부카의 서정군을 격파하고 맘루크 왕조의 전성기를 연 바이바르스도 있었다.

5. 기타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결정판에서 타타르, 불가리아, 리투아니아와 함께 신규 문명으로 추가되었다.
토탈 워: 아틸라의 mod로 Medieval Kingdoms Total War 1212 AD에서 플레이가 가능한 57개 세력 중 하나로 추가되었다.
Kingdom Come: Deliverance에선 주요 적으로 쿠만족 용병들이 등장하는데, 실제 시대상으론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쫓겨나 헝가리에 정착한 이후이기 때문에 작중에 등장하는 쿠만족들은 헝가리어로 말하며, 이와 관련된 이벤트들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