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태

 


성명
박노태(朴魯胎)
본관
순천 박씨[1]
생몰
1915년 10월 17일 ~ 1983년 12월 19일
출생지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덕산리[2]
사망지
서울특별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포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노태는 1915년 10월 17일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덕산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3년 9월 경성제국대학을 졸업 후 휘문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 노력했다. 그는 내선일체의 허구성에 대하여 한국과 일본은 민족성이 다르므로 융화가 어려울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일본 민족에 비해 한국 민족이 우수함을 강조하면서 내선일체를 거부하였다. 또한 그는 태평양 전쟁의 전황을 주시하면서 일제의 패전을 예견하는 한편 주위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숙지시키고 힘을 합하여 일제의 패전을 독립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였다.
이 일이 발각되면서 일제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45년 4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8.15 광복 직후 출옥했다. 이후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다 1983년 12월 1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박노태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3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22세손 노(魯) 항렬.[2]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