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실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한규상의 부인이다. 딸인 한원주 매그너스요양병원 내과 과장은 최고령 의사로 활동하다가 2020년 9월 30일 소천했다. https://news.v.daum.net/v/20201005115139056
2. 생애
박덕실은 1901년 3월 4일 경상남도 진주군 진주면 평안동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919년경 평안동에 있는 기독교 계통의 광림학교(光林學校) 교사로 근무하던 중 동향의 친구 박보교(朴寶喬)의 권유로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진주지부에 가입하였다. 이후 9월에 대한적십자회 대한지회 진주지부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했고, 10월에 홍수원 등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할 목적으로 비밀결사 혈성단(血誠團)을 조직했을 때 광림학교 내 자택이나 기숙사를 회합의 장소로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1919년 11월 대한애국부인회가 경상북도 경찰부에 발각되면서 여러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고,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뒤 12월 26일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이후 한규상과 결혼한 그녀는 1920년 당시 통영부인회(統營婦人會)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4월 30일 통영부인회 제1회 강연회에서 「조선 여자여, 춘몽(春夢)을 각성(覺醒)하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였다. 또한 1923년 당시 진주기독교여자청년회 회장으로서 여자해방강연회(女子解放講演會) 개최, 삼가여자야학(三嘉女子夜學) 설립 등 각종 사회활동과 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1924년 12월 2일 진주에 독립적인 여자보통학교(女子普通學校)의 설립을 목표로 하는 실행위원으로 선정되었다. 진주여자청년회 임원으로 활동하던 1926~27년에도 야학회를 개최하는 등 진주지역의 여성교육을 위해 노력하였다. 1927년 4월 7일 근우회 진주지회 설립대회에서 임시의장으로서 대회를 이끌었으며, 그 자리에서 신임위원(新任委員)으로 선정되어 활동하였다.
1931년에서 1934년까지 마산의신학교 교원으로 근무했고, 8.15 광복 후인 1947년부터 1971년까지 진주한일병원 원장 한규상의 사모로서 봉사활동을 수행했다. 1971년 3월 1일 진주시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박덕실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