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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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금호아시아나그룹 제 5대 회장이였다.
2. 상세
1945년 3월 25일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까지 영광에서 거주하다, 중학교 때 스승의 조언으로 가족과 함께 서울로 상경해 배재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한국과학교재공사에 들어갔으나 2년 만에 직장을 옮겨 1969년 (주)금호에 입사하였다. 말단 사원부터 그룹 회장까지 승진한 베테랑 금호맨이자 샐러리맨으로 평가 받는다. 성씨 때문에 그룹 오너의 일가로 오해 받았지만, 박인천 창업주의 일가는 밀양 박씨, 박찬법 전 회장은 반남 박씨로 친인척 관계나 학연이 전혀 닿지 않는다.
(주)금호에서는 20년이상 '종합상사맨'으로 아프리카·중동·미국·홍콩 등 수출전선을 누비며 영업담당 이사로 승진, 아시아나항공 출범 후 10년 이상 영업 최일선을 챙겼다. 아시아나 미주지역본부장, 영업 부사장 등 요직을 거친 뒤 2005년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듬 해 항공부문 부회장, 금호타이어 대표이사를 거쳐, 전문경영인으로서는 처음으로 2009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으로 취임되었다. 취임 1년만에 건강상의 이유로 회장직에서 사임하였고, 금호 제6대 회장으로 다시 박삼구 전 회장이 복귀했다. 박찬법 전 회장은 이후 그룹 상근고문으로 자리를 옮겨 2016년에 퇴임하였다.
3. 상훈
- 동탑산업훈장 (2001년)
- 경희인상 (2002년)
- 한국관광학회 관광기업대상 (2003년)
- 외국기업의 날 대통령표창 (2003년)
- 한국윤리경영대상 (2003년)
- 여성사랑 베스트 기업인 상 (2005년)
- 금탑산업훈장 (2008년)
4. 여담
- 박삼구 전회장과 동갑내기며, 친구 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그룹을 이끌어왔다. 그룹의 위기, 형제의 난으로 인하여 2선으로 물러난 박삼구 회장이 직접 다음 회장직으로 박찬법 부회장을 추대했다.
- 47년을 그룹에 몸을 담았던 원로로 꼽힌다. 창업주 박인천부터 금호아시아나그룹 역대 회장들과 함께 근무했었던 말 그대로 '산 증인.'
- 그룹 입사 → 아시아나항공 대표 이사가 되기까지의 과정, 경험, 및 고통의 내용이 담겨있는 그의 경영일기가 있다. #
5. 어록
- '''"효도는 모든 행동의 근본이다."'''
- '''"주력 계열사 두 곳이 워크아웃을 신청했지만, 동요하지 말고 맡은 일을 다해주시길 당부드린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재 상황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위기 극복을 위해 힘을 모으는 것이다. 워크아웃 기업에는 노사가 따로 없고, 내년에는 조직의 축소, 비용 절감, 프로세스 개선 등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탄탄한 수익성을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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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2월 31일,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 신청에 관련한 경영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고나서 소집된 임원 회의 中#
-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은 부지런하다는 거예요. 나도 천성은 게으른 편이지만, 성공한 사람들 보고 후천적으로 부지런하려고 노력했어요. 요즘엔 밤 11~12시에 자서 새벽 5시30분쯤 일어나요. 성공한 사람들의 두 번째 특징은 순진할만큼 진지하다는 겁니다. 교활한 사람들은 일정기간 성공할지 몰라도 반드시 헛발질하게 돼 있지.성공은 장기적으로 이뤄지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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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7일, 한국경제 기자단들과 약 4시간 동안 서울 중림동 어느 대포집에서 인터뷰 中#
'''"효율성이다. 우리는 모양새를 갖추려고 불필요한 장거리 노선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철저히 돈이 되는 중국 일본 등 중단거리 노선에 집중한다. 두 회사의 비행기 운용시간을 비교하면 우리가 훨씬 높다. 또 고객 서비스에 강점이 있다. 아시아권에서 서비스 질로 우리와 경쟁할 수 있는 항공사는 싱가포르항공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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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26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대한항공과 차별화되는 아시아나항공의 특징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