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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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박삼구''' (朴三求 / Sam-koo, Park)
'''출생'''
1945년 3월 19일 (79세)
전라남도 광주부(현 광주광역시)
'''거주지'''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한남힐탑트레져
'''종교'''
불교
'''부모'''
박인천, 모 이순정
'''형제자매'''
5남 3녀 중 다섯째
'''배우자'''
이경렬[1]
'''자녀'''
1남 1녀(박세창[2], 박세진[3])
'''현직'''
금호아시아나그룹 상임고문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이사장
'''학력'''
광주서중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
고려대학교 컴퓨터과학기술대학원
전남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
연세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
1. 개요
2. 생애
2.1. 회장 시절
3. 갑질
4. 기쁨조 미투 폭로
6. 이야깃거리
7. 상훈
8. 어록
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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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금호아시아나그룹 제4대, 6대 회장, 현재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상임고문이자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이사장이다. 아버지 박인천과 형인 박성용, 박정구에 이어 2002년 회장에 취임하였다. 2009년 그룹이 워크아웃에 빠지며 회장에서 물러났다가 2010년 11월 1일 전문경영인 신분으로 논란 속에 회장직에 복귀했다. 그러나 2019년 3월 28일 다시 회장직을 사퇴했다.
아버지와 형들이 일궈놓은 잘 나가던 금호아시아나를 '''위기로 몰아넣은 그룹 역사상 최악의 회장이다.''' 특히 그의 회장직 취임 후 그룹은 공격적 M&A의 여파로 자금난을 겪고, 해가 갈수록 위기는 더욱 심각해졌다. 한때 M&A를 통해 7위까지 올린 재계서열도 25위로 지속적으로 하락했으며, M&A의 부작용으로 인한 동생 박찬구와의 경영권 다툼 및 금호석유화학을 포함한 석유화학 부문 자회사들의 계열 분리, 급기야 2019년 결국 그룹 매출의 70%를 담당하는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 및 그 자회사를 매각하게 되었고, 인수작업이 완료되면 금호아시아나는 재계순위 60위권 밖의 중견기업으로 추락하게 된다.


2. 생애


1945년 3월 19일 전라남도 광주부에서 출생했다. 금호그룹 창업주인 아버지 박인천과 어머니 이순정 사이의 7남매(4남 3녀) 중 다섯째이자 3남이다.[4]
1964년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1968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학사를 졸업하여 20대의 나이에 금호타이어에서 근무를 시작해 금호그룹 전무이사, 부사장을 거쳐 1980년 (만 35세) 금호실업 대표이사 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2001년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은 후 2002년 둘째 형인 박정구 회장이 폐암으로 사망하자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직에 취임하였다.

2.1. 회장 시절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포트폴리오는 '''정말 망하기 힘든 구조'''였다. 캐시카우인 생명보험과 타이어, 항공사, 석유화학에다 부동산이 많은 금호고속까지 이렇게 자산과 현금이 풍부한 구성을 갖춘 재벌이 드물었다. 이를 바탕으로, 아버지 박인천, 첫째 형 박성용, 둘째 형 박정구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재계서열 10위권 내로 진입시켰다. 그러나 박삼구는 과욕을 부린 끝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사실상 해체 단계로 몰아넣었다.[5]
창업주 박인천의 작고 이후 그룹의 전통이였던 형제 경영도 깨뜨렸다. 다른 대기업과는 달리 금호아시아나그룹의 2세 형제들은 65세가 되면 다음 동생에게 회장직을 물려주기로 했었는데, 박삼구는 원칙대로라면 그의 나이 65세인 2010년에 동생 박찬구 석유화학 부문 회장에게 경영을 승계했어야 했지만, 아들 박세창에게 경영권을 승계해 주려 했다. 게다가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 인수 과정에서 무리한 인수를 강력히 만류하는 박찬구와 대판 싸움을 벌이게 된다. 결국 이 두 가지 문제[6]로 형제 사이가 악화되어, 결국 박찬구는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석유화학 부문을 계열분리하여 완전히 나갔다. 그 과정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인 것은 덤.
사실 대한통운 인수는 크게 나쁜 문제로 볼 수 없었다. 당시 대한통운은 현금흐름이 상당히 좋은 우량기업이였고, 육상·항만 물류 기업을 갖춤으로써 주력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을 합쳐 종합 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대한통운을 인수하기에 앞서 이뤄진 대우건설 인수가 매우 큰 문제였는데, 인수자금에만 6조 6천억원, 여기에 대한통운까지 포함하면 '''총 10조원(!!!)'''이 넘는 어마무시한 돈이 계열사 동원 + 교환사채 + 인수금융 등을 통해 투입됐다. 그룹 내부에서도 막대한 자금을 소모하는 무리한 확장에 대한 우려가 상당했었지만 세간에서는 '경영계의 마이 더스의 손이다'라면서 찬양하는 기사가 많았다.
결국 무리한 차입의 결과, 대침체가 터지자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된다. 그룹의 모태 기업인 금호고속, 지주회사 격인 금호산업, 주요 계열사인 금호타이어, 금호생명이 주채권은행인 한국산업은행으로 넘어갔다. 금호고속과 금호산업의 경영권은 되찾았으나, 금호렌터카는 KT에[7], 금호타이어는 중국의 더블스타에 매각되었고 금호생명은 1조원 가까운 공적자금이 투입된 후 지금까지 산업은행의 애물단지로 남아 있다.
이외에도 화물기 화재, 샌프란시스코 사고'''사망사고 2건'''히로시마에서 A320 1대를 폐차시킨 사고까지 다사다난한 기간을 보내기도 했다. 물론 이건 아시아나항공이 노선대비 적은 비행기를 운용하면서 생긴 문제의 연장선상. 참고로 대한항공은 1999년 세기말의 화물기 추락사고 이후에도 하네다에서의 엔진 화재 등 위험천만한 사고가 좀 있긴 했으나 어쨌든 20년간 사망사고는 0건이었다.
게다가 경영권을 되찾는 과정에서도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경영권 회복을 목적으로 금호기업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부동산 가치만 1조 원 가량이 되는 금호터미널을 아시아나항공으로부터 2천 7백억 원이라는 헐값에 인수한 후, 금호기업과 금호터미널을 합병시킨다. 설상가상으로 2018년 7월에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공급부족 사태까지 터졌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사태의 원인은 '''박삼구 개인이''' 금호타이어의 경영권을 되찾기 위한 자금을 투자받을 목적으로 무리해서 기내식 업체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경영인 한 사람의 욕심과 잘못된 판단으로 수많은 승객, 승무원, 하청업체 직원들까지 고통을 겪다가 기어이 하청업체 사장이 자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더욱이 박삼구의 경영권 회복에 동원된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무려 715%에 달하고 있다. IFRS 국제회계기준을 적용하면 1153.3%나 된다. 항공업의 특성상 항공기 구입 비용을 모두 지불하기 어려워 리스로 항공기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부채비율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
아시아나항공이 외부감사 결과 '한정' 의견을 받고 관리종목에 편입되는 사태에 처하면서, 2019년 3월 28일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물러나면서 누가 한국 재벌 아니랄까봐 아들 박세창에게 경영권을 넘기려 했지만, 채권단으로부터 퇴짜를 맞고 결국 아시아나항공 매각 요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HDC현대산업개발에서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서 계열분리가 이뤄질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사태 및 아시아나의 경영난 등 복합적인 문제로 인해 M&A가 무산되어 당분간 채권단 체제 하에 놓어질 것이다. '''이게 다 박삼구라는 작자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한항공 갑질사건이 워낙 이슈가 커서 그렇지 박삼구 회장의 갑질도 대한항공 저리가라 수준이다. 아니, 악명높은 조양호 회장도 재임기간 중 아시아나보다 더 많이 비행기 띄우고도 사망사고가 0건인데 박삼구 회장은 위에도 있듯 '''사망사고 2건'''+비행기 스크랩(고철처리≒폐차) 1건이다. '''그리고 아시아나항공 자체를 말아먹었다.''' 즉, 박삼구 회장은 애초부터 경영능력 자체가 의문인 인물이다. 조양호 회장과 도찐개찐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건 조양호 회장에겐 모욕일 정도이다. 그리고 조양호 회장은 기쁨조는 안 부렸다. 결론적으로, 박삼구 회장이 조양호 회장보다 질이 더 나쁜 인물이란 뜻이다. 사고건수가 낮다, 그리고 사망사고가 없다는 것은 운송업 특히 항공사에선 최우선 과제이고 이것도 객관적으로 수치화되는 중요한 경영실적인데 조양호는 본인과 가족이 다혈질이라 논란이 된 것 말고는 최소한의 기본은 했으나 박삼구는 '''기본조차 안된 CEO'''라는 의미다.

3. 갑질


  • 재계에서 보기 드물게 형제간의 우애가 좋기로 소문났었지만, 본인의 욕심으로 인해 형제 경영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역사상 최초로 깨뜨린 주범이다. 박삼구 전 회장이 대우건설대한통운을 인수함에 앞서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이 그룹의 위기를 우려해 형에게 만류하였지만, 묵살당하였으며, 두 회사 인수에만 총 10조원의 어마어마한 돈을 지출한 것과 더불어 미국발 금융위기와 대우건설 인수 때 내건 풋옵션으로 인해 수많은 이자까지 지불해야 했던 금호아시아나가 버티다 못해 유동성 위기가 찾아오자, 두 형제간의 책임공방 다툼이 점화되었다. 이에 빡친 박삼구는 동생 박찬구 석유화학 부문 회장을 강제로 해임시켜버렸고, 분노한 박찬구 회장은 자신을 해임시키고 그동안 갑질&무능의 경영을 그룹의 위기로 몰아붙인 형을 상대로 법적대응 및 그가 가지고 있던 금호산업 등의 지분 처리, 석유화학 부문의 계열분리를 하여 형과 완전히 결별했다. 이른바 7년이나 진행 되었던 형제의 난. 사실 두 형제간의 경영 스타일도 극과 극으로 다른데, 박삼구는 외형 확장을 중시하였고, 박찬구는 보수적이고 내실을 중시하였다. 2016년, 형제의 난은 종결되었고, 서로 표면상 화해는 했지만 남보다도 못한 앙숙 관계가 돼버렸다. 2019년 4월, 아시아나항공 매각으로 인해 중견기업 오너로 전락할 예정인 박삼구와 안정적이고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주는 박찬구의 입장과 평가가 뒤집혀졌다.
  • 박정구 회장의 작고 후 2010년 경, 그의 외아들인 박철완 당시 아시아나항공 부장과 그의 모친이 작은 아버지인 박삼구 회장을 만나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을 맡아보겠다고 제언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절대 안된다고 했으며, 1988년 회사 설립 이래 조그만한 항공사를 메이저급 국적 항공사로 성장시켰던 것 역시 박삼구 회장 본인이였던 것 만큼[8] 박철완의 제안을 거부했었다. 이 일을 계기로 형제의 난과 더불어 둘째 형의 가문과의 사이도 틀어져 버렸으며, 이후 박철완은 막내 작은 아버지인 박찬구 회장을 따라 금호석유화학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 금호석화그룹의 상무로 재직 중이다.

4. 기쁨조 미투 폭로


박 회장은 스튜어디스들을 만나면 ‘내가 기 받으러 왔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본관 1층에서 여승무원들을 불러놓고 20~30분 동안 껴안은 뒤에는, 20대 초반의 갓 입사한 승무원 교육생들이 머무는 교육훈련동으로 가서 시간을 보낸다. 업무보고를 받으러 온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승무원이 아닌 일반직들의 사무실에는 방문하지도 않는다.

  • 매년 1월 직원들과 하는 북한산 등산도 논란이다. 박 회장과 함께 산을 오르고 내릴 여승무원들로 구성된 별도의 조직이 있다는 주장이다. 또 박 회장은 매년 북한산 중턱에 있는 음식점 별채에서 여승무원들로부터만 세배를 받아왔다. 또 다른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도 증언한다.

정말 기이한 풍경이다. 박 회장은 방에 혼자 앉아 있고, 여성 직원들은 일렬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자기 차례가 오면 1명씩 들어가서 세배를 하고 흰색 봉투를 들고 나온다.

승무원들은 아시아나항공의 연례 가을행사 ‘플라자 앤 바자회’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출했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춤을 추는 등 장기자랑에 동원됐다는 것이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증언한다.[9]

누가 그걸 하고 싶겠느냐. 성심병원 간호사 춤 동영상이 논란이 됐을 때, 여기 직원들은 ‘우리가 원조”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회장님을 뵙는 날, 자꾸만 떨리는 마음에 밤잠을 설쳤었죠

새빨간 장미만큼 회장님 사랑해 가슴이 터질 듯한 이 마음 아는지"

(KBS 보도 중)


아시아나 승무원 "회장님 오신다, 넌 울고 넌 안기고 넌 팔짱"
"우리가 기쁨조냐"…아시아나 여승무원들, 박삼구 회장 상대 '미투' 폭로글 쇄도
기내식 사태 이후 올해 초 타칭 기쁨조에 자사 여승무원 인턴을 동원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단독] "새빨간 장미만큼 회장님 사랑해"..아시아나 갑질 공연, KBS 북한이 연상되는 수준이다.

5. 가족 관계




6. 이야깃거리


  • 아시아나항공의 코드가 OZ라서[10] 항공기 갤러리 등지에서는 마법사 항공 또는 마법사로 부르기도 했는데 이번에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공급부족 사태가 일어나고, 이를 통해 박삼구 회장의 부조리와 갑질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박삼구 회장은 흑마법사 또는 악한 마법사로 불리기도 했다(...).
  • 큰형 박성용 전 회장처럼 문화예술 애호가이며, 한국 메세나협회 회장으로서 적극적인 후원을 하고 있어서 음악계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본인이 총동문회장으로 있는 모교 연세대학교 백양로에 금호아트홀 연세를 기부하고 클래식 음악 영재들을 많이 후원해 주고 있다. 그러나 많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거쳐갔던 광화문 금호아트홀은 대우건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건물도 같이 매각하는 바람[11]에 어정쩡한 모양새가 되었고 결국 2019년 5월 1일 부로 폐관이 결정되었다.
  •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구 회장과 박삼구 회장은 1945년생 동갑내기이고 연세대 동문이라 절친했다고 하며, 그래서인지 구본무 회장 장례식 때 3일 모두 빈소를 찾았고 발인까지 함께 했다.
  • 정·관계 및 재계 뿐 아니라 법조계와 금융계를 비롯해 학계와 언론계 등으로까지 인맥이 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부인 박 모씨의 오빠가 금호그룹에서 임원으로 근무했던 인연으로 박삼구 회장은 김기춘과 친한 것으로 전해진다. 해외 인맥도 화려한데, 박삼구는 중국의 정관계 인사들과도 인맥을 쌓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후진타오 전 주석 등 중국 내 최고 지도자들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 2017년 11월 8일, 금호타이어 주식 호가창에 3,918주 주문이 일제히 나오는 상황이 빚어졌다. 3,918주 주문은 박삼구의 39, X발의 18을 조합한 주문으로, 박삼구 회장을 욕하기 위한 주문이다. 같은 원리로 1,839(X발삼구)주 주문도 박삼구 회장을 겨냥한 주문으로 쓰일 수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박삼구 회장의 악명은 자자했다고 한다.
  • 금호고속이 소유한 터미널인 유스퀘어의 건너편 쪽에 공교롭게도 '39(삼구) 콩나물국밥'이라는 식당이 존재하며 이름처럼 콩나물국밥을 3,900원에 팔고 있다.

7. 상훈


  • 보사부장관 표창 (1993년)
  • 국민훈장 석류장 (1996년)
  • 환경경영대상 종합대상 (1999년)
  • 물류대상 대통령 표창 (2000년)
  • 에어트랜스포트월드 승객서비스상 (2001년)
  • 금탑산업훈장 (2004년)
  • 한국능률협회 한국의 경영자상 (2006년)
  • 중한우호협회 중한우호공헌상 (2007년)
  •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2014년)
  • 레지옹 도뇌르 훈장 (2016년)

8. 어록


- '''"한일 양국은 물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오래 교류해 많은 공통점을 가진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민간 차원의 지속적인 교류가 한일 관계를 돈독하게 지탱한 버팀목이다."'''

-

2017년 6월 12일, 한국방문위원회가 추진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일우호의밤‘ 행사 환영사에서

- '''"내 부덕의 소치로 국민과 여러분께 너무 걱정을 끼쳤다. 참 민망스러웠고 정말 여러분께 죄송했다. 동생이 소송을 취하해줘서 동생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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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2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의 금호터미널 지분 매각 관련 소송을 취하해주자 언론과 인터뷰에서 고맙다는 소회를 털어놓으며#


- '''"기업의 기(企)자는 사람 인(人) 밑에 멈출 지(止)로 이루어진 글자로, 글자의 형상이 상징하듯 사람이 없으면 기업은 멈추게 됨을 의미한다. 기업의 가장 큰 사회적 책임은 고용 창출이다.'''"

-

2016년 상반기 공개채용을 시작하면서#

- '''"500년 영속기업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 목표를 당부드린다. 기업의 목적이 단순한 이윤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기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이윤뿐이다.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모든 조직이 우선순위를 가지고 이윤 경영을 해달라. 둘째, 품질경영이다. 품질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제품의 품질, 기술의 품질, 서비스의 품질로 제품의 부가가치를 올리자. 셋째, 안전경영이다. 안전경영은 경영자의 철학이 없인 불가능하다. 내 생명이 중요하면 다른 사람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소박한 철학을 가져야 한다.."'''

-

2016년 1월 4일, 금호아시아나그룹 신년사 中#

- '''"관광청이 없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관광청이 만들어지면 행정입법권을 가질 수 있어 한국관광산업을 더욱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에 입법기능을 가진 관광청이 만들어진다면 유럽연합처럼 ‘한, 중, 일 3국 공동관관청’설립도 가능할 것이다.”'''

-

2015년 11월 18일, 한국방문위원회 기자간담회 中#

- '''"기업은 지탄받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지탄은 그 어떤 총탄보다도, 폭탄보다도 무서운 것으로 약속한 것은 꼭 지키고 건실한 경영을 통해 신뢰받는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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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7일, 금호아시아나그룹 창립 60주년 기념사 中#

- '''" 회사를 한꺼번에 인수해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당장이라도 1조천억 원짜리 수표를 끊을 수 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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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전이 경쟁입찰기업들과 불붙자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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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관련 문서



[1] 이정환 前 장관 딸.[2] 금호산업 사장[3] 금호리조트 상무[4] 교육과학기술부 차관과 초당대학교 총장을 지내 인지도가 있었던 5남 박종구는 박인천 회장이 본부인이 아닌 혼외정사를 통해 낳은 아들로 금호가의 정식 일원으로 대접받지는 못했다. 박종구의 '구'는 한자로 아홉 구(九)자를 쓰고 박정구, 박삼구, 박찬구의 '구'는 한자로 구할 구(求)를 쓴다. 박삼구에 의하면 동사무소 직원이 잘못 받아적어서 그렇다고 한다. 또 맏형인 박성용은 동생들과 달리 이름이 유일하게 돌림자가 아닌데, 원래 이름은 준구(準求)였지만 후에 개명했다고 한다. 출처[5]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면 금호고속과 금호산업만 남게 된다. 재계 순위도 60위권 바깥으로 떨어질 예정.[6] 사실 세가지 문제다. 아래의 갑질 역시 형제 사이를 악화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7] 지금은 롯데가 인수해 롯데렌터카가 되었다.[8] 아시아나 초기 시절에 박삼구는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었으며 다른 계열사보다 애착이 갔던게 아시아나였다고 본인이 자주 이야기 했을 만큼 열정이 대단했었다.[9] 이것 때문에 곁에서 이를 본 동생인 박찬구 회장이 이를 하지 말아달라며 박삼구에게 크게 따졌다고. 물론 돌아온 건 박삼구의 호통이었지만.[10] 자세한 이유는 이곳 참조[11] 대우건설의 원래 사옥인 대우빌딩(서울역 앞의 금색 빌딩)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돈 없다고 모건스탠리에 팔아버렸고(...) 대신 금호아트홀이 있던 광화문 사옥을 대우건설에게 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