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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田 / field
농사(농업)를 짓는 흙으로 된 땅으로, 물을 채운 논은 제외된다. 신석기 시대부터 했던 가장 기본적인 농업이다.[1]
앞에 작물의 이름을 붙여 부르기도 한다. 논과 함께 '논밭', '전답', '농지'라고도 하며 법적으로 논과 밭은 토지 등록상 별개로 되어 있다. 채소를 심는 때에는 고랑을 파서 튀어나온 곳 이랑에다가 심는다.
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 제58조 제1호는 "물을 상시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곡물·원예작물(과수류는 제외한다)·약초·뽕나무·닥나무·묘목·관상수 등의 식물을 주로 재배하는 토지와 식용(食用)으로 죽순을 재배하는 토지"라고 하고 있다.
우리에게 생산품을 키워내어 가져다주는 느낌이 있으며, 여성을 남성이 준 씨를 키우는 밭에 비유하기도 했다. 사실 생물학적으로 남성의 역할은 꽃가루를 주는데 불과하고, 여성은 암꽃과 밭을 같이 가진 것이지만 말이다.
가끔 작물로서 재배하지 않더라도 어떤 식물종만 가득할때 쑥대밭처럼 밭으로 일컫기도 한다. 굳이 식물이 아니고도 XX투성이라는 의미로 'XX밭' 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도 사용된다.
자가경작을 위한 조그만 밭은 '텃밭'이라 한다.
밭을 뜻하는 한자는 '田'이지만, 일본어로는 논이라는 뜻으로 'た'(경우에 따라서는 'だ')로 읽고, 밭은 '畑·畠(はたけ)'이라는 일본제 한자를 쓴다[2] . '畓(논 답)'이라는 한국제 한자를 쓰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인 셈. 이는 비가 자주, 그리고 많이 오고 따라서 논농사의 비중이 높아 '''채소밭'''[3] 과 '''화전농법'''[4] 밖에는 밭농사가 드물던 탓으로 추정된다. 다만 한자음인 'でん'은 논과 밭 둘 다 가리킨다.
田 / field
농사(농업)를 짓는 흙으로 된 땅으로, 물을 채운 논은 제외된다. 신석기 시대부터 했던 가장 기본적인 농업이다.[1]
앞에 작물의 이름을 붙여 부르기도 한다. 논과 함께 '논밭', '전답', '농지'라고도 하며 법적으로 논과 밭은 토지 등록상 별개로 되어 있다. 채소를 심는 때에는 고랑을 파서 튀어나온 곳 이랑에다가 심는다.
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 제58조 제1호는 "물을 상시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곡물·원예작물(과수류는 제외한다)·약초·뽕나무·닥나무·묘목·관상수 등의 식물을 주로 재배하는 토지와 식용(食用)으로 죽순을 재배하는 토지"라고 하고 있다.
우리에게 생산품을 키워내어 가져다주는 느낌이 있으며, 여성을 남성이 준 씨를 키우는 밭에 비유하기도 했다. 사실 생물학적으로 남성의 역할은 꽃가루를 주는데 불과하고, 여성은 암꽃과 밭을 같이 가진 것이지만 말이다.
가끔 작물로서 재배하지 않더라도 어떤 식물종만 가득할때 쑥대밭처럼 밭으로 일컫기도 한다. 굳이 식물이 아니고도 XX투성이라는 의미로 'XX밭' 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도 사용된다.
자가경작을 위한 조그만 밭은 '텃밭'이라 한다.
밭을 뜻하는 한자는 '田'이지만, 일본어로는 논이라는 뜻으로 'た'(경우에 따라서는 'だ')로 읽고, 밭은 '畑·畠(はたけ)'이라는 일본제 한자를 쓴다[2] . '畓(논 답)'이라는 한국제 한자를 쓰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인 셈. 이는 비가 자주, 그리고 많이 오고 따라서 논농사의 비중이 높아 '''채소밭'''[3] 과 '''화전농법'''[4] 밖에는 밭농사가 드물던 탓으로 추정된다. 다만 한자음인 'でん'은 논과 밭 둘 다 가리킨다.
[1] 물을 다스리는 치수가 필요한 논농사는 좀 더 늦은 청동기 시대에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발달하는 것은 수리시설 축조와 관리가 본격화되는 삼국시대 중후반부였다.[2] 원래 일본제 한자이므로 한국 한자음이 없어야 원칙이지만 형성자로 여겨 '화전 전(畑)'·'밭 전(畠)'이라는 훈음(訓音)을 붙였다.[3] 위의 '白'+'田'은 배추밭이 유래인 듯 하다.[4] 현대 일본어로는 '焼き畑'(야키바타)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