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고등학교
1. 개요
전라북도 정읍시 흑암동에 위치한 사립 일반계 고등학교. 바로 옆에 중학교가 붙어 있다.
두 학교 모두 같은 버스를 사용하며 버스에 카드기가 부착돼있어 학생증을 버스카드처럼 충전해 버스를 이용한다. 버스비는 500원. 중고등학교가 같은 버스를 이용한다는 점 때문에 양측 간에 민원이 들어가기도 한다.[1]
학교 뒤편에는 급식실과 기숙사 건물이 하나로 붙어있으며, 강당과 도서관, 소운동장, 오당기념관 등이 있다. 바로 앞에 대운동장이 있으며, 소운동장과 대운동장은 중학교와 같이 사용한다. 대운동장보다 이용이 적은 편. 거수경례[2] 를 하는 학교라 그런지 재학생들이 거수경례를 할 때 신입생들은 거수경례와 90도인사가 섞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역사
2.1. 연혁
더 자세한 내용은 배영 고등학교의 학교 연혁 참고
3. 상징
3.1. 교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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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홍색은 교화인 철쭉을, 녹색은 교목인 소나무를 상징하며, 둘이 겹친 모양은 뛰어난 영재를 육성하는 '배영'학원을 상징한다.
그리고, 가운데의 B는 바뀔 수 있는데, 高가 들어가면 고등학교를, 中이 들어가면 중학교를 상징한다.
3.2. 건학이념
자립(自立)[3]
- 진실한 사람
- 근면한 사람
- 진취적인 사람
- 정의로운 사람
3.3. 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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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교목
교목은 소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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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교화
교화는 철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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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학교 시설
2013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하면서 대부분의 교실이 전자칠판이나 스마트펜을 이용할 수 있는 교실이 되었다. 이를 구분하는 방법은 칠판을 좌우로 치웠을 때 전원을 켤 수 있는 버튼이 보인다면 전자칠판이고, 그냥 하얀 벽면이 나온다면 스마트펜이다.
교통이 열악한 위치인지라[4] 학교 버스를 운행하는데, 바로 위에서 말했듯 버스카드를 찍고 탑승해야한다. 버스카드는 매점에서도 충전할 수 있다.
3학년 교무실에는 4대의 학생용 PC가 존재한다. 보통 대학 원서접수 할 때 또는 인터넷 강의를 들을때 사용한다.
또한 딱히 시설이랄것도 없다. 가끔 들어오는 헌혈차 하나에도 엄청나게 흥분하여 달려가는 배영고 학생들의 순수함(?)도 주변 부대시설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건실이 없다. 어디 다치거나 아플때는 보건실이 아닌 보건교과 선생님[5] 에게 가서 약을 받아야 한다. 물론 침대도 없다. 아프면 그냥 약먹고 책상에 엎드려 자야한다.
없는 시설을 그나마 설명하자면, 고등학교 건물, 중학교 건물, 대운동장, 소운동장[6] , 성오관(급식실,전 기숙사), 성계당(체육관), 오당기념관[7] , 들풀서재, 평심관 등이 있다.
고등학교 건물은 총 4층으로 이루어져있고, 각각 1학년이 2층, 2학년이 4층, 3학년이 3층을 교실로 사용한다[8] . 1층에는 음악실, 미술실, 과학실과 회의실, 교장실, 이사장실[9] 행정실 등이 있다.
ㄱ자 구조의 고등학교와 중학교가 마주보고 있고 그 사이에 성오관과 체육관이 있고, 고등학교 건물위, 성오관 옆에 오당 기념관이 있으며, 오당 기념관과 성오관 사이의 계단위에 들풀서재와 평심관이 있다.
들풀서재에는 세계로[10] , 채석강[11] 등 묘한 네이밍 센스가 돋보이는 실들이 있다. 입구에 들어가서 오른쪽에 있는 곳이 도서실, 반대 편에는 기숙사생이 이용하기위한 인강실이 있고, 위 층에는 면학실과 야자실이 있다.
평심관은 ㅁ자 구조로 가운데는 비어있다.[12] 비가 오면 왠지 분위기가 좋다..
4.1. 주요 행사
'''두승제''': 매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교내축제이며, 이 시기에는 이 학교 학생이나 학부모가 아니더라도 와서 축제에 같이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가 외진 곳에 있기 때문에 굳이 오려는 외부인들은 별로 없다.[13]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참고
'''가요제''': 2012년 배영재단의 그 말도 안되는 짠돌이정신이 완벽히 사라졌던 1994년 이후 '''최대의 축제'''. 정읍사예술회관을 대관해서 외부인들의 참여를 높였고, 평소의 학교와는 다른 쾌적한 진행으로 축제를 성황리에 마쳤다. 허나, 안타깝게도 2012년 이후로는 소식이 없다. 그러나 2016년 학생회장이 복면가왕 형식으로 가요제를 부활시키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당선됐다.
'''A.T.F(all that art festival)''': 가요제의 정신을 잇는 축제인듯 하다. 학생회 학예부에서 야심차게 추진했으며 노래, 성대모사, 춤등 학생들이 자신의 끼를 마음껏 펼쳤다. 반응은 매우 좋았다.
'''학생회 새만금 캠프''' : 전국 대부분의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배영고등학교에는 많은 학생회 소속 부서가 있다.
각 부의 부장과 차장은 새 학기가 시작하고 학생들의 인사지도와 학교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3월초 새만금 33KM코스를 직접 걸으며 의지를 다진다. 겉보기에는 아주 좋은 취지의 행사이나, 33KM를 걷는다는 것은 일반 고등학생들에겐 지옥일 수 밖에 없다.
물론 그 안에서 재밌고 유쾌한 추억거리들이 생기기도 하고 선생님 몇분들도 동참 하시기 때문에 사제관계 또한 원만해지지만 다 그렇지만은 않다. 코스 완주를 한뒤 숙소에 짐을 풀고 좀 쉬다가 숙소1층에서 항상 정갈하게 교복을 갖춰입고 학생회 각 부서의 1년계획과 포부를 발표하고 배영고등학교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학생회의가 열린다.
'''꽃동네 봉사활동'''
'''해양수련활동'''
5. 출신인물
- 한병옥
- 김형곤 투비소프트 대표
- 양민수 해군 준장
- 김건 경기도청 인사과장(2급)
- 정동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술서기관(4급)
- 박형윤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이사)
6. 이야깃거리
교내 신발장의 경우, 1학년은 1층 안쪽에 있는데, 덕분에 1층에 있는 1학년 교실 2개'''만''' 버스 자리 잡기 위해 달리기 좋은 위치가 되었다.
중국의 격매납이중학과 일본의 쇼인고등학교와 국제교류를 하고 있다. 홈스테이를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14]
토큰을 사야만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할수 있던 시절에는 학생들 사이에서 일명 토따(토큰따먹기)가 유행하였다. 친구들과 소소한 재미를 찾으며 지루한 수험생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던 와중에 선생님께 걸려 분노의 빠따질을 맞는 학생이 다수 발견되어 학생들 사이에서 몰래 뒷거래를 하는 케이스가 생겨났다.
1년에 약 4번 학교 뒤에 있는 두승산에 오르는데, 이에 그치지 않고 등산이 전국범위로 확대되어 지리산을 1박2일로 오르고 제주도 수학여행에서는 한라산을 오른다. 정 못 올라가는 학생들의 경우 빼주기도 한다. 사실 한라산과 지리산의 경우 등반하다가 못가겠다고 퍼져버리면 이거는 인솔하는 교사들 입장에서도 대책이 없기 때문에 아예 못올라갈 만한 학생들은 사전에 선발해 산 밑에서 놀게 한다. 등산 프로젝트는 상당히 좋은 추억거리이다.[15]
2013년까지 유도를 가르쳤다가 2014년에는 중단되었고 2015년부터 다시 유도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예전에는 유도와 함께 태권도도 함께 가르쳤다. 그래서 고등학생들은 유도와 태권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2020년 현재 유도와 태권도 수업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2013년부터 교실을 리모델링하고 교과교실제를 시행하였는데 이로 인해서 두 개밖에 없는 계단에 민족대이동이 발생하게 되었다. 특히 홈베이스가 특별실쪽 계단에 가까이 위치하여 이 쪽 계단이 제일 혼잡하다. 하지만 2016년부터 학생수 감소에 따라 혼잡은 어느정도 해소되고 있다. 교실의 역할을 일부 대신하기 위해 층마다 1개 교실의 문을 제거하고 의자와 사물함을 비치하여 홈베이스화시켰다.[16] 이러한 시스템덕에 학생들은 홈베이스에서 잠도 자고 교우의 물건을 훔치며 대도의 꿈을 키워나갔고 자물쇠를 풀기위한 몇가지 기술들을 연마한 학생들이 악의적으로 체육복을 훔쳐 달아나거나 교과서를 가져가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배영고등학교 학생들의 선천적인 선함때문인지 돈과 관련한 재물을 가져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는 2019년부터 학생들이 불편함을 호소하여 교과교실제를 폐지했다. 학생들의 만족도는 전보다 더 높은듯 하다.
각 층 교무실과 홈베이스 사이엔 미디어실이 존재한다. 하지만 용도는 미디어 시청이 아닌 자습실.
교외에는 문구점 한 곳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다.[17]
화장실 바깥문이 없었다. 물론 대변칸의 문은 있다. 유일하게 외문이 존재 하는 화장실은 1층 교사 화장실. 즉, 교사용 화장실을 제외 하고는 화장실 안이 바깥에서 훤히 보인다는 충격적인 사실. 그래서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있으면, 실제로 보이진 않았을 것이지만 여선생님이 지나가다가 "누구야~ 고추 보인다~"라고 하기도 했었다. 이런 상황때문에 화장실에서 담배를 태우거나 나쁜짓을 하기가 힘들었다.
특이하게도 모든 체육수업은 '''체육관에서 한다.''' 운동장 수업은 3년 재학기간중 한 손에 꼽을 정도.[18] 2017년부터는 어느 정도 운동장 수업이 활발해졌다. 겨울 제외하면 대부분은 운동장에서 수업 진행했다.
명찰의 색깔이 학년마다 정해져 있다. 초-노-빨 순으로 연마다 돌아간다. 덕분에 초면일지라도 간편하게 학년을 파악할 수 있었다. 2017년 신입생부터 학생의 인권 문제로 명찰이 없어지며 학년 대표 색깔도 무색해지는듯 했다. 2019년 버스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 학생증으로 바뀌면서 학생증을 목에 맬 수있는 목줄의 색깔이 됐다.
학교에서 기숙사를 두 채 운영한다. 하나는 성오관 또 하나는 평심관이다. 성오관은 학교 부지가 현 위치로 이전 할 당시 지은 건물인데 1층은 급식실이고 나머지 2, 3, 4층은 기숙사로 사용하고 있다. 평심관은 2010년대에 준공된 건물로 약간은 구식의 성오관과는 달리 신식으로 지어져 좋다고 생각했지만 벌레가 많이 나온다. 기숙사 입소생들을 성적순으로 나열해 둘로 나누어서 각 기숙사에 배치했는데 어느 해에는 우등생이 성오관에 배치되고 열등생이 평심관에 배치되어 우등생들이 불만을 가지게 되는 일이 있었다.[19] 그러다가 2012년부터는 조금 복잡해졌는 데, 2012 ~ 2013년에는 3학년이 성오관, 1,2학년이 평심관을 썼고 2014년부터는 아예 평심관은 2주에 한번씩 나가는 학생들, 성오관은 1주에 한번씩 나가는 학생들로 채워졌다. 하지만 평심관 냉난방 고장이 잦아 가끔식 불편하기도 하다.
보통 기숙사의 목적인 집-학교가 먼 학생들이 입소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성적순으로 끊는다. 2002년까지는 한 방당 에 5명씩 총 15명 정원으로 운영했는데 2003년 리모델링을 하면서 4인 1실로 바뀌었다. 2층은 3학년이, 3층은 2학년, 4층이 1학년 [20] 2017년에는 시설 수리탓에 성오관을 없애고 평심관에 사람들을 몰아넣었다. 2018년에는 2주 기숙사를 폐지하고 2주 기숙사 학생들을 1주 기숙사 학생들과 통합하였다. 여담으로 평심관 내의 시설 자체는 괜찮다. 냉,난방도 잘 되는 편이다. 대신 여름만 되면 벌레들이 창문에 많이 보인다.
기숙사 기상시간은 6시이고, 기상 후 기숙사 밖에서 아침체조를 한다. 체조 후에는 구보를 한다. 2018년 이후 체력 증진의 목적으로 학교 2바퀴를 뛴다. 보통 구보 후에는 다시 방에 들어가 잔다. 원래는 자기보다는 하루를 시작할 준비[21] 하기위한 시간이나 12시에 들어와서 6시에 일어나는 스케줄을 견디기위해 15~20분이라도 더 자려는 학생이 많다[22] .
"큐태의 모험"이라는 플레시 게임이 있는데, 2007년 경 배영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만든 게임이다.
[1] 이유는 고등학생이 중학생 시간대 차를 타서 위압감을 풍긴다던가, 반대로 중학생이 고등학생 시간대에 차를 타서 자리를 차지한다는 등.[2] "자립"을 외치며 거수경례한다[3] 중학교하고 고등학교 사이에 이 글자가 적힌 바위가 존재한다. 자립탑이라고 부르기도 하나 탑보다는 비에 가깝다.[4] 하루에 정읍시에서 온 버스 몇 대 지나가는 게 전부다.[5] 보건교사 개념이 아니라 말 그대로 교과선생님들중 보건을 담당하는 선생님[6] 평심관 뒤[7] 1층에 운동기구실과 유도장이 있으며, 2층에는 강당이 있다.[8] 경우에 따라 교실 부족으로 1학년 일부 반이 윗층을 교실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9] [10] 대충 세계로 나아가기위해 노력하는 화로라는 의미[11] 해양 수련회에서의 배운 점과 관련된 의미[12] 풀이 자라있으며, 이용하지 않는 쓰레기통이 있다. [13] 2003년도에는 교통이 불편한 관계로 외부에서 축제를 진행하기도 하였다.[14] 사람에 따라 확실이 호불호가 갈리는 듯, 외국인 파트너에 따라 케바케가 심하다.[15] 배영고 학생이 되면 산 3개(두승산, 한라산, 지리산)는 정복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16] 2020년에는 홈베이스 내에 탈의실도 설치했다![17] 이전에는 문구점만 두 곳이였지만 하난 망했다.아직 간판도 제거하지 않아서 뭔가 영 좋지 못한 분위기가 풍긴다.[18] 과거 2000년대 초, 중반만 하더라도 체육수업이 매우 다채로웠다. 체육 선생님들 전공이 체조, 배구, 유도 등 이라서 바깥에서는 같이 축구도 하고 그랬다.[19] 성오관은 역대 이사장 중 두 명의 호를 따 이름 붙였으며 건축 당시 성오관을 부지의 중심부에 세워 이 곳이 학교의 심장이라는 상징이라 우등생이 그 곳에 배치된 것이라고 한다.[20] 리모델링 전에는 2층이 독서실, 3~4층이 방이었으나 외부에 독서실을 따로 지었다.[21] 씻는 등[22] 시간이 꽤 남아 문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