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휘

 

裴徽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자는 문계(文季). 배무의 아들. 배잠, 배준의 동생.
하동에서 명성이 높으면서 식견이 있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재능이 뛰어나고 도량이 넓으면서 현묘함을 잘 논했다.
기주자사가 되면서 조공요라는 사람이 관로를 추천하자 그를 문학종사로 삼으면서 불러서 만나보고 관로를 매우 칭찬했다. 후에 이부랑이 되었을 때 왕필과 담론을 나누면서 왕필을 높이 평가했으며, 태화 연간[1] 초에 순찬부하가 서로 논해 그 취지는 같았지만 어떤 때는 논쟁으로 번져 서로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배휘는 두 사람간의 생각을 소통시켜 두 사람의 입장을 잘 설명해주면 잠시 후에는 순찬과 부하가 다시 사이가 좋아졌다고 한다.
세설신어에도 부하가 현허함을 첫째로 꼽는 명리를 논하는 것에 뛰어나고, 순찬은 현원한 철리를 논하길 좋아해 논쟁이 붙었을 때 두 사람의 논지를 해석해 서로의 생각을 소통시켜 두 사람의 감정을 흡족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배휘의 6대손이 정사 삼국지를 편찬한 배송지이다.

[1] 227 ~ 233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