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찬

 

荀粲
(209? ~ 237?)
1. 창작물에서

삼국시대의 인물. 자는 봉천(奉倩). 순욱의 아들, 아내는 조홍의 딸 조씨.
영천 영음 사람으로 형들은 모두 유학을 했지만 그는 도교를 좋아했으며, 아버지 순욱은 덕을 세워서 그것을 높이기 위해 의례의 법도를 만물에 훈(訓)을 달았지만, 8촌형 순유는 외형을 다스리지 않고, 신중하고 치밀하여 스스로를 보전할 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아버지 순욱보다 순유가 더 훌륭하다고 해서 형제들이 화를 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순찬은 현원함을 논하는 것에 능해 늘 생각하길 자공이 선생님(공자)께서 성과 천도에 대해서 말했다고 하지만 직접 듣지 못했으므로 그렇다면 육경[1]에 남아있는 말이라도 성인의 찌꺼기에 불과하다고 했으며, 그의 형인 순오가 역경에 따르면 성인은 형상을 세워 그 뜻을 다 드러내고 말씀을 엮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다 드러냈다. 그러므로 아무리 미언(微言)이라도 어찌 그것을 들을 필요가 없으며 듣고 보지 못할 수가 있느냐고 반박했다.
그러자 순찬이 대개 미언의 이치 중에 심오한 것은 만물의 모양을 거론해 설명하지 못하며, 형상을 세워 그 뜻을 다 드러냈다고 했지만 그것은 그 뜻 이외의 것은 통하지 못하는 것으로 말씀을 엮어 하고자 하는 말을 다 드러냈다고 했는데, 그것은 모든 표상을 다 포함한 것이 아니므로 거기에 내포된 모든 개념이 드러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당시에 담론에 뛰어난 자들도 그를 꺾을 수 없었으며, 태화 연간[2]부하와 담론을 즐기면서 순찬은 심오하고 현묘한 이론을 펼치는 것을 좋아했다.[3] 부하와 학문적 경향은 달랐지만 갑자기 만나 토론을 펼치면서 서로를 공격해 의견의 일치를 보기가 어려웠으며, 배휘와는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가 되어 두 집안을 오고가는 심부름꾼이 끊이지 않아 마침내 부하와도 친하게 지냈다.
하후현도 그들과 가깝게 지냈다. 그는 항상 부하와 하후현에게 자네들은 세속적인 사람들이므로 공명(功名)을 날리는 측면에서는 나보다 낫겠지만, 지식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명을 크게 이룰 수 있으면 그것이 곧 지식인데 천하에 어찌 근본이 부족하면서도 남아있는 것이 있겠는가라고 부하가 반박하자 순찬은 공명이란 뜻과 기량에 따른 것이므로 뜻과 기량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물건에 불과하지만, 지식은 그 하나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나는 그대들이 부귀한 존재가 되도록 할 수가 있지만, 그대들은 반드시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여성들을 보고 항상 부인이란 재능과 지혜를 갖출 필요가 없으며 마땅히 미색을 위주로 해야 된다면서 외모를 중요시했다. 표기장군 조홍의 딸 조씨는 대단한 미인이었다. 순찬은 그녀에게 장가를 들어서 아름다운 옷과 장막 안에서 즐겁게 부부생활을 영위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그러나 겨울에 병이 나서 심한 열에 시달리자 마당에 나가 자신의 몸을 차게 해서 안아주면서 열을 식히려고 했지만 끝내 부인이 요절하자 상심에 빠졌으며, 아직도 장례를 치르기 전에 부하가 조문을 갔더니 순찬은 곡을 하지는 않았지만 심신이 많이 상해있었다.
부하는 순찬에게 이렇게 물었다. 조문을 온 친구가 "부인이 재색을 함께 갖추기는 어렵다네. 자네가 장가를 간 것은 재능은 제쳐두고 색을 밝혔기 때문이네. 다시 (다른 여인을) 만나면 되는 일인데, 지금 무엇이 그리도 슬픈가?"라고 묻자 순찬은 "아름다운 사람은 다시 만나기 어렵다면서 세상을 떠난 사람을 생각하면 경국지색을 다시 만날 수가 없는데, 쉽게 만난다고 말할 수가 있는가?"라고 대답했다. 순찬은 애석해하다가 29세에 세상을 떠났으며, 특이한 사람이라 보통 사람들과 교제할 수 없었지만 그가 교제한 사람들은 모두 당대의 준걸로 그의 장례식에 간 10여 명은 모두 동시대에 명성을 날리던 사람으로 그들이 곡을 하면서 슬퍼하자 길을 가던 사람들도 모두 슬퍼했다.
순찬이 생전에 부인의 덕은 내세울 것이 없지만 용모만이 제일이라고 했는데, 배해는 이를 듣고 이것은 스스로의 견해일 뿐 덕담이 아니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이 말에 관심을 기울여서는 안된다고 했다.

1. 창작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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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4 일러스트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14부터 등장하고 능력치는 통솔 16, 무력 14, 지력 68, 정치 55, 매력 50이며 일러스트는 오른손을 턱에 올린 채 고심하고 있는 표정으로 있다. 개성은 학자, 주의는 명리, 정책은 태학 Lv 2, 진형은 학익, 정란, 전법은 저지, 도발, 친애무장은 부하, 조홍, 하후현, 혐오무장은 없다. 생년은 209년, 몰년은 237년까지 되어있다.
창천항로에서는 순의를 보고 경서에 집착하면 생각이 쭈그들 것이라 했다가 순의가 논어의 구절을 언급하자 성인은 세상을 삐딱하게 볼 뿐 중요한 인간의 본성이나 하늘의 법칙에 대해서는 아무 말 하지 않는다고 했다. 육경에 대해서는 공자가 울궈먹다 만 찌꺼기라고 하면서 순의를 고지식하다고 여기고 있으며, 순유에게서 화타의 의술을 보고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화타의 의술에 대한 얘기를 해달라고 했다.
삼국전투기에서도 전투외편 4-3 마지막 부분에서 유엽의 아들 유도와 함께 짧게나마 언급된다.
[1] 시경, 서경, 예기, 악기, 역경, 춘추 등 6가지의 경서를 뜻한다.[2] 227년 ~ 233년이다.[3] 반면 부하는 치밀하게 논리를 전개하는 장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