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솀블즈
[image]
(초기 → 후기 라인업 변경)
'''피트 도허티''' - 보컬, 리듬 기타, 하모니카, 피아노
패트릭 왈든 → 믹 휘트널 - 리드 기타
드류 맥코넬 - 베이스, 콘트라베이스
아담 파이섹 → 현재 탈퇴 후 세션맨 채용 - 드럼
Babyshambles
피트 도허티를 중심으로 하는 영국 펑크/인디 록 밴드.
'''잃어버린 리버틴즈.'''
리버틴즈에서 쫓겨난 피트 도허티가 본디 사이드프로젝트로서 활동하던 밴드를 그대로 이어받아 지금에 다다른 대안밴드'''였으나''' 현재 피트 도허티의 '''주력 밴드다'''. 초기 라인업 시기(2004~2005년)에는 '''공연이 10개 있으면 5개는 펑크 내는''' [1] , 런던에서 가장 막장을 치달았던 밴드였다. 이때 발매한 데뷔 앨범은 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는데, 귀가 아플 정도로 거친 연주가 특징이다. 곡의 퀄리티에 대해서는 쉽게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애초에 앨범 자체가 '''반 이상이 리버틴즈 시기'''에 작곡했었던 곡들이었다. 그러나 기타리스트 교체를 전후한 후기 라인업 시기에는 밴드의 내부 분위기를 쇄신하며 상당히 진정된 페이스에 접어들기 시작하고 각 매체로부터 우수한 평을 받은 두번째 앨범을 낸다. 아예 장르 색깔부터 달랐던 이 앨범은 펑크라기보다는 인디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7년만에 낸 세번째 앨범이 영국 UK #10에 오르며 여전한 밴드의 기력을 과시, 준수한 평을 받으며 현재까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동부 런던의 아마추어 기타 신동[2] 이었던 '''패트릭 왈든'''이 같이 활동하였던 2005년까지를 초기, 그 이후를 후기로 나눌 수 있다. 믹 휘트널로 리드 기타리스트를 교체한 후 과도기적인 미니 앨범과 앨범 두 개를 더 발표하였다. '''색깔이 완전히 달라져서''' 같은 밴드라기에는 이질감이 들지만,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방법이었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그러나 몇몇 팬들로부터는 패트릭 왈든 시기의 베이비솀블즈만을 전성기 시기로 인정받고 있다.
초기와 후기의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밴드이다.
2003년 중순 피트 도허티와 칼 바랏이 뉴욕의 역사 유구한 첼시 호텔에 머무르며 다음 앨범을 위한 초고 작업을 위해 데모 세션을 녹음하게 되는데, 이 때 피트의 아이디어로[3] 'Babyshambles Sessions'라 명명한 후, 뉴욕에서 공연 중 만난 리버틴즈 팬이었던 Helen Hsu라는 여성에게 '''원본 CD'''를 건네주며 '''혼자만 듣지 말고 팬포럼에 공유할 것'''이라고 분명한 다짐을 받는다. 그렇게 뉴욕 프로모를 끝내고[4] 베이시스트 존 하살과 함께 런던으로 돌아간 피트[5] 는 표면적으로는 (이미 이때부터 밴드 분열의 조짐이 예정될 정도로 기류가 심상치 않았었다.) 다시 리버틴즈에 합류하며 공연을 돈다.
(2003년 리버틴즈의 데모 세션 'Babyshamble Sessions'을 녹음, 피트 도허티가 'T-Libertines'라는 이름 하에 2003년 경부터 사이드 프로젝트 밴드로 활동)
2004년 베이비솀블즈로 이름을 바꾸고 '''패트릭 왈든'''을 리드 기타리스트로 1차 라인업 결성. 데뷔 셀프 타이틀드 싱글 'Babyshambles' 발매.
2005년 데뷔 앨범 'Down In Albion' 발매. UK Gold(10만 장) 달성.[7]
2006년 메인 기타리스트를 '''믹 휘트널'''로 교체한 후 (사실상 1.5집이라 칭해지는) 'The Blinding EP' 발매.
2007년 두번째 앨범 'Shotter's Nation' 발매. 마찬가지로 UK Gold 달성. [8]
2013년 세번째 앨범 'Sequel To The Prequel' 발매.[9]
2006년 NME Awards 최고의 앨범상 노미네이트(1집).
2007년 NME Awards 최고의 영국 밴드상, 최고의 라이브 밴드상 노미네이트.
2008년 NME Awards 최고의 영국 밴드상, 최고의 앨범상 노미네이트.
UK Top 10 싱글 4개. 영국 내 총 누적 앨범 판매고 30만 장 이상.
(초기 → 후기 라인업 변경)
'''피트 도허티''' - 보컬, 리듬 기타, 하모니카, 피아노
패트릭 왈든 → 믹 휘트널 - 리드 기타
드류 맥코넬 - 베이스, 콘트라베이스
아담 파이섹 → 현재 탈퇴 후 세션맨 채용 - 드럼
1. 개요
Babyshambles
피트 도허티를 중심으로 하는 영국 펑크/인디 록 밴드.
2. 소개
'''잃어버린 리버틴즈.'''
리버틴즈에서 쫓겨난 피트 도허티가 본디 사이드프로젝트로서 활동하던 밴드를 그대로 이어받아 지금에 다다른 대안밴드'''였으나''' 현재 피트 도허티의 '''주력 밴드다'''. 초기 라인업 시기(2004~2005년)에는 '''공연이 10개 있으면 5개는 펑크 내는''' [1] , 런던에서 가장 막장을 치달았던 밴드였다. 이때 발매한 데뷔 앨범은 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는데, 귀가 아플 정도로 거친 연주가 특징이다. 곡의 퀄리티에 대해서는 쉽게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애초에 앨범 자체가 '''반 이상이 리버틴즈 시기'''에 작곡했었던 곡들이었다. 그러나 기타리스트 교체를 전후한 후기 라인업 시기에는 밴드의 내부 분위기를 쇄신하며 상당히 진정된 페이스에 접어들기 시작하고 각 매체로부터 우수한 평을 받은 두번째 앨범을 낸다. 아예 장르 색깔부터 달랐던 이 앨범은 펑크라기보다는 인디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7년만에 낸 세번째 앨범이 영국 UK #10에 오르며 여전한 밴드의 기력을 과시, 준수한 평을 받으며 현재까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동부 런던의 아마추어 기타 신동[2] 이었던 '''패트릭 왈든'''이 같이 활동하였던 2005년까지를 초기, 그 이후를 후기로 나눌 수 있다. 믹 휘트널로 리드 기타리스트를 교체한 후 과도기적인 미니 앨범과 앨범 두 개를 더 발표하였다. '''색깔이 완전히 달라져서''' 같은 밴드라기에는 이질감이 들지만,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방법이었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그러나 몇몇 팬들로부터는 패트릭 왈든 시기의 베이비솀블즈만을 전성기 시기로 인정받고 있다.
초기와 후기의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밴드이다.
3. 결성 배경과 데뷔 앨범 발매까지
2003년 중순 피트 도허티와 칼 바랏이 뉴욕의 역사 유구한 첼시 호텔에 머무르며 다음 앨범을 위한 초고 작업을 위해 데모 세션을 녹음하게 되는데, 이 때 피트의 아이디어로[3] 'Babyshambles Sessions'라 명명한 후, 뉴욕에서 공연 중 만난 리버틴즈 팬이었던 Helen Hsu라는 여성에게 '''원본 CD'''를 건네주며 '''혼자만 듣지 말고 팬포럼에 공유할 것'''이라고 분명한 다짐을 받는다. 그렇게 뉴욕 프로모를 끝내고[4] 베이시스트 존 하살과 함께 런던으로 돌아간 피트[5] 는 표면적으로는 (이미 이때부터 밴드 분열의 조짐이 예정될 정도로 기류가 심상치 않았었다.) 다시 리버틴즈에 합류하며 공연을 돈다.
4. 활동
(2003년 리버틴즈의 데모 세션 'Babyshamble Sessions'을 녹음, 피트 도허티가 'T-Libertines'라는 이름 하에 2003년 경부터 사이드 프로젝트 밴드로 활동)
2004년 베이비솀블즈로 이름을 바꾸고 '''패트릭 왈든'''을 리드 기타리스트로 1차 라인업 결성. 데뷔 셀프 타이틀드 싱글 'Babyshambles' 발매.
2005년 데뷔 앨범 'Down In Albion' 발매. UK Gold(10만 장) 달성.[7]
2006년 메인 기타리스트를 '''믹 휘트널'''로 교체한 후 (사실상 1.5집이라 칭해지는) 'The Blinding EP' 발매.
2007년 두번째 앨범 'Shotter's Nation' 발매. 마찬가지로 UK Gold 달성. [8]
2013년 세번째 앨범 'Sequel To The Prequel' 발매.[9]
2006년 NME Awards 최고의 앨범상 노미네이트(1집).
2007년 NME Awards 최고의 영국 밴드상, 최고의 라이브 밴드상 노미네이트.
2008년 NME Awards 최고의 영국 밴드상, 최고의 앨범상 노미네이트.
UK Top 10 싱글 4개. 영국 내 총 누적 앨범 판매고 30만 장 이상.
[1] 사실 팬들 사이에서는 리버틴즈/BS/솔로를 막론하고 도허티 공연 자체가 본인이 등장만해도 반은 성공(..)인 분위기다.[2] 데뷔 앨범의 반 이상을 애드리브로 채워넣었으며 포스트 계열에서 환장하는 Jazzmaster 애용자였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기타 자체가 매니아들만 쓰는 장비.[3] 정확히 말하면 밴드의 지인이었던 친구가 피트를 베이비솀블즈(Babyshambles), 칼을 파파싱글즈(Papashingles)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점에서 착안했다[4] 토킹헤즈가 자주 공연했던 유명 인디 클럽 CBGB 및 데이빗 레터맨 쇼에 출연하였다.[5] 이미 칼과 한바탕 싸운 후였기에 그는 먼저 영국으로 귀국한 상태였다. 사실 DLBITS를 보면 당시 정황을 약간이나마 추측할 수 있다.[6] 정규 앨범은 아니나 도허티 커리어상으로 정말 중요한 데모세션이기에 포함시킨다. 자세한 사항은 리버틴즈 참고.[7]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앨범. 아래 설명 참고.[8] 'Up the Bracket'과 도허티 솔로 앨범 다음으로 호평받는 앨범.[9] UK #10. 아직 골드 써티피케이션이 찍히지 않았다. 15년은 가봐야 알 듯하다. 평은 매우 좋다. 사실상 재기 성공 정도가 아니라 베이비솀블즈가 대세를 맞출 줄 아는 밴드라는 게 증명된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