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래칠선자
1. 개요
풍종호의 무협소설 『지존록(至尊錄)』에서 200여 년 전, 탈혼마제(奪魂魔帝)를 무찌른 암천향(暗天香)이 남긴 유진(遺塵)에 인연이 닿은 풍현은 신주제파(神州諸派)에 관한 상세한 정보와 감춰진 기인들에 대해 알게 된다. 이 중 봉래도[1] 에서 유래한 문파가 봉래파(蓬萊派)이다. 문제는 정작 봉래도가 어디에 위치했는지 봉래파 문외의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알려진 봉래비전(蓬萊秘傳)은 그 문인 중 일부가 세상에 선보인 것이 전부이다. 게다가 그 문인들은 세상의 다양한 학문을 통하여 독자적인 자신만의 기예를 연마하는 것으로도 유명했으니······.- 분명히 남해(南海)나 동해(東海) 어딘가 무인도에 현판 하나 달랑 걸어놨을 것이다! 봉래도라고!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까지 근거지가 모호할 리가 없다! 아예 바다 위를 떠다닌다는 남해의 전설, 지옥도(地獄島)가 아니라면 말이지!
- 『지존록』에서 봉래도와 관련하여 귀문신투가 남긴 말을 풍현이 떠올린 것이다.
그런 봉래파의 대표적인 일곱 고수를 일컫는 말이 '''봉래칠선자(蓬萊七仙子)'''이다. 모두 제각각 다른 시대에 돌연히 나타나 가공할만한 능력을 선보이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는 과정도 돌연 자취를 감추거나 강호의 벗들이 보는 앞에서 입적(入寂)한 경우이다. 그런데 유체와 유품마저도 얼마 뒤에 홀연히 사라져서 그 신비로움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모습을 드러냈던 봉래의 문인은 전부 여자였으며, 그녀들이 세상에 선보인 절기는 오로지 두 가지뿐이었다. 묘현검법(妙玄劍法)과 백봉침(白蜂針)이 그것으로, 이 두 가지만으로도 결코 얕잡아 볼 수가 없었다. '''철선자(鐵仙子)'''는 형산신유(衡山神儒)의 비조검(飛鳥劍)을 철검으로 받아쳐 낸 적이 있고, '''흑선자(黑仙子)'''는 녹림천자(綠林天子)를 도울 때 천하십대고수(天下十大高手)에 필적하는 기량을 드러낸 적이 있을 정도이다.[2]
봉래파의 제자는 어느 세대에나 한 명이나 두 명이 세상을 유람한다. 그래서 그들은 신주십이파(神州十二派)에 속하는 것이다. 아예 몇 세대에 걸쳐 자취를 감춘다면 호정(護鼎)의 의무조차 제대로 행할 수가 없어져 결코 신주십이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세상을 종횡하면서 실전된 절기를 찾고자 한다. 세상에 봉래심법이라 알려진 그들의 기초심법 본래 명칭은 봉황심법(鳳凰心法)이며, 실전된 절예를 창궁절예(蒼穹絶藝)라 부른다고 한다. 또한, 봉황무(鳳凰舞)라는 구명절기도 실전된 것으로 보인다.[3]
2. 무공
- 묘현검법(妙玄劍法): 검을 사용하는 것만이 아닌 손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묘현신검수(妙玄神劍手)라는 체계가 정립되어 있다.[4]
- 백봉침(白蜂針)
[1] 전설적인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신선이 산다고 한다 . 봉산(蓬山), 봉구(蓬丘), 봉도(蓬島), 봉호(蓬壺). 삼신산은 발해(渤海) 가운데 있는 세 섬의 산으로 봉래, 방장(方丈), 영주(瀛州)를 뜻한다. 〔출처: 네이버 한자어 사전〕[2] 남은 다섯 명의 명호는 '''비선자(飛仙子), 혈선자(血仙子), 향선자(香仙子), 독선자(毒仙子), 백선자(白仙子)'''이다.[3] 봉래칠선자가 활동할 때는 목숨을 위협받는 일이 없다가 후대에 들어서 유람 중 봉래파 문인이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런고로 암천향은 봉황무가 실전된 것으로 추측한다. 그 봉황무는 귀문신투(鬼門神偸)가 얻어 풍현에게 전해진다.[4] 풍현이 참마검(斬魔劍) 이수에게 전수한 귀문신검(鬼門神劍)과 닮아있다. 그렇기에 풍현도 의아해한다. 봉황무와 더불어 귀문신투가 봉래파와 어떠한 연관이 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