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천향
1. 개요
풍종호의 무협소설 『지존록(至尊錄)』에서 200여 년 전, 천하를 지배한 탈혼마제(奪魂魔帝)와 홀로 싸운 협객이 '''암천향(暗天香)'''이다. 당시의 탈혼마제는 천하제일고수였으며, 대표하는 사공(邪功)인 색혼탈백신공(索魂奪魄神功)은 인성(人性)을 압도하는 위력을 지녔기에 암천향은 스스로 암살자가 되어 대항하였다. 그리고 그 신통(神通)이 대단한 탈혼마제로부터 숨기 위해 천하를 주유하던 그는 옛 마교(魔敎)의 유적에 은신처를 만든다. 아무리 대단한 탈혼마제라 하여도 만겁윤회로(萬劫輪廻路) 안에서는 그가 몇십 배나 유리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만겁윤회로 안에서도 은신처를 은밀하게 지어 탈혼마제로부터 빼앗은 것과 격파할 것을 만들고 보관할 장소로 사용한다.''''한 자루 검을 품고, 천하에 희미한 향을 남긴다.''''
- 『지존무상록(至尊無上錄)』에서 발췌.
2. 행적
세월이 흘러 풍현과 운령이 그 은신처에 들어오면서 암천향의 비사가 밝혀진다. 암천향의 본명은 '''남궁천린'''이고, 그의 조부인 남궁인호가 바로 탈혼마제였다. 그들은 남천화의 일맥으로, 남씨를 사용하는 방계가 아직 세상에 남아 있어서 '남궁'을 성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수백 년간 내려오며 가문의 힘을 축적한 끝에 남궁인호가 태상가주이던 시절 가문의 진로를 놓고 고심하게 된다. 사마외도(邪魔外道)에 대항하는 힘으로 가문을 100년 더 지속시키던가, 아니면 사마외도와 싸우며 성씨 전환을 준비하는가를 놓고 고심 끝에 후자를 선택한다. 당시 사천황(邪天皇)의 지류가 번성하여 수백 년의 번영을 앞둔 상황이라 내린 결단이었다.- 어느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일생이었다. 심지어 나 자신과도 나눌 수 없었다. 어리광인 줄 알지만, 천마지주라면 거뜬히 받아줄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안의 나, 사혼향을 막을 수가 없기도 했다. 조부님과 나는 경우가 달랐다. 나는 불과 2살이 되기 전부터 남천화(南天華) 시조의 천기심법과 잊혀진 군마루(群魔樓)의 후예가 창안한 절세적인 사공을 한 몸에 담는 그릇이었다. 그릇의 목적은, 암살. 키워준 자를 죽이기 위한 도구. 조부께서는 자신의 상태를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만큼은 무심중에 결정하고 계셨다.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암살자로 손자인 나를 선택하셔서 키우신 것이다. 그 일생을 천마지주라면 함께 겪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여 일월주천몽유진(日月周天夢遊陣)을 남겼다. 그래도 어리광치고는 심했을까? 그대에게 사과한다.
- 『지존록』의 암천향이 남긴 유언 중에서 발췌.
어찌 됐든 괴로운 선택이었다. 20여 년의 긴 투쟁 속에서 가문의 인재들은 자신의 사명을 다 하며 죽어갔다. 희생이 심해지자 나중에는 시조의 유지를 알고 있는 가문의 원로들까지 반대하는 상황까지 오게 된다. 하지만 이때 처음부터 함께 싸우던 개방(丐幇)의 동방호법이 20여 년간 추적한 사천황의 직계 후예에 대한 흔적을 찾아낸다. 사천황의 직계는 일갑자 이상의 세월 동안 잊힌 마도절기(魔道絶技)를 찾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옛 군마루의 본거지, 군마천루(群魔天樓)를 발굴하여 힘을 축적하고 있었다.
결국, 원로들까지도 검을 들고 싸워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가문의 멸문까지 각오한 확전(擴戰)이었다. 결과는 옥쇄(玉碎), 단지 남궁인호만이 살아남는다. 그러나 남궁인호는 이미 색혼탈백신공에 의해 왜곡된 상태여서 자신이 아닌 다른 이가 살아남아서 탈혼마제가 된 것으로 생각하여 자살하지 않고 중원으로 돌아온다. 이로 인해 세상에 탈혼마제가 나타나게 되었으며, 비극적이게도 이중인격을 인지 못 한 남궁인호는 손자인 남궁천린을 탈혼마제에 대항하는 암살자로 키운다.
남궁천린이 암살자로 완성되던 날, 그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암천향이라는 이름을 취한다. 그런데 그 날 그의 조부는 '''사혼향(邪魂香)'''이라는 살수에 암산 당하고 만다. 즉, 암천향 역시도 색혼탈백신공에 의해 왜곡된 것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암천향은 사혼향이 자신인 것을 깨닫지도 못한 채, 탈혼마제를 암살하는 일을 그만둘 수 없었기에 혼령궁에 잠입한다. 마침 그는 혈마류(血魔流)의 사대혈마(四大血魔)가 먼저 혼령궁에 쳐들어가는 것을 보고 기회다 싶어 숨어서 싸움을 엿본다.
사대혈마는 개개인이 암천향에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강자라 혼령궁의 염왕검과 염왕시위대는 혼자서 쳐부수며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사대혈마는 탈혼마제 앞에 당도하나, 색혼탈백신공의 영향을 받은 호위인 네 명의 염왕을 이기지는 못한다. 사대혈마는 웃으며 회심의 노림수로 혈마잔양파(血魔殘陽破)라는 자폭기술까지 사용하여 어마어마한 폭발을 일으킨다. 주변을 초토화시키는 위력에도 탈혼마제는 전혀 흔들림 없이 눈빛만으로 그 폭발을 완전히 제압하여 제 몸은 물론 주변의 염왕까지 지켜내는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실상 자폭한 이들은 혈마잔양파를 심은 사대혈마의 화신(化身)들이었고, 탈혼마제는 반 년 뒤에 사대혈마의 본신(本身)까지 잡아내 혈마류의 혈왕야(血王惹)는 꼬리를 만다. 덕분에 탈혼마제는 몸조차 움직이지 못하는 실혼(失魂)이 된 사대혈마를 혈마천강시(血魔天殭屍)로 제련한다.
이후 탈혼마제가 죽고[1] 나서 암천향은 혈마천강시를 사혼향의 탈출을 막는 최후의 수단으로 활용하다가 색혼탈백신공과 같은 잔혹한 사공들이 남아있는 한천벽(恨天壁)을 봉쇄하지 못한 문제와 같이 다음대 천마(天魔)에게 떠넘기려 안배한다.[2] 더불어 불완전한 색혼탈백신공과 칠정식(七睛式)은 물론 그가 추가한 이정식(二睛式)까지 남겼으며, 탈혼마제가 강제로 탈취한 수많은 절기도 따로 모아놓는다. 여기에는 신주제파(神州諸派)의 실전절기(失傳絶技)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천기를 살펴 앞날을 예측한 그는 잔결신군(殘缺神君)의 혼원태극도해(混元太極圖解)를 기본 장치로 천심정안(天心正顔)은 볼 수 없게 패도(覇道)의 절기들은 따로 보관한다. 200여 년이 지나 인연이 닿은 풍현은 이와 같은 암천향의 억지에 짜증을 내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만다.
풍현과 운령이 암천향의 유진(遺塵)에서 빠져나가는 중에 최종관문으로 사혼향이 막아선다. 풍현은 탈명겁(奪命劫)에 당하고도 신혈(神血)의 효능으로 회복한 뒤에 그를 비조검(飛鳥劍)으로 무찌른다. 그러자 암천향의 원신이 나타나고, 풍현은 그에게 소천벽(素天璧) 진영주(眞影珠)를 보여줌으로써 이미 한천벽이 봉쇄되었음을 알려준다. 그로 인해 한결 마음이 놓인 암천향의 원신은 웃으며 떠나가는 풍현과 운령을 배웅한다.
3. 무공
- 칠성천둔보(七星天遁步): 암천향이 은신처 입구의 바닥에 직접 따라 걸어서 체득할 수 있도록 새겨놓은, 홀로 칠성진(七星陣)의 기세를 발할 수 있는 보법이다. 북두천강대법(北斗天罡大法)의 일부분으로, 전개하면 일곱으로 분화(分化)하여 제각각의 자세로 칠성진을 갖춘다. 풍현이 이미 묵연동(默然洞)에서 배운 칠성천둔보 이상의 효용을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상승(上乘)의 내공비결을 포함하고 있다.
- 제천금후인(齊天金猴印): 오로지 포함된 독자적인 공력이 연성되어야만 발휘할 수 있는 고고함을 자랑해 풍현이 비슷한 느낌의 원영신허인(元嬰神虛印)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가 시험 삼아 바위에 펼치자 일점(一點)의 금색이 새겨들어 순식간에 바위 전체로 그물처럼 번지며 무너뜨린다.
- 구두연환사수(九頭連環蛇手): 손의 잔영이 허공에 9마리의 뱀을 드러나게 하는 수법이다. 경지가 높아지면 9마리의 거대한 구렁이 모습을 선명하게 나타낼 수 있다. 나아가 연환하여 아홉 머리를 가진 한 마리의 거대한 구렁이를 그려낼 수 있으면, 나선으로 모여드는 아홉 머리의 줄기를 이용해 막힌 곳을 비집거나 꿰뚫는 데 더욱 효과적이어서 암천향이 은신처의 입구가 무너지기 전에 배울 수 있도록 안배한다. 이런 구두연환사수는 내외겸전(內外兼全)의 절기라 독자적인 내공심법도 갖추고 있는데, 위 두 절기와는 달리 다른 상승의 심법을 빌어서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암천향의 세 절기 중 풍현이 가장 많이 사용하며, 유일하게 운령에게 전수한 기예이기도 하다.
[1] 어떻게 죽었는지 과정이 나오지는 않는다.[2] 색혼탈백신공은 마교의 천마대제(天魔大帝)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색혼탈백신공이라도 천마에게는 심령의 붕괴를 일으킬 수가 없어 뒤처리를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