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티베트 망명 정부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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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티베트'''
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2.2. 20세기
3. 문화 교류
4. 관련 문서


1. 개요


부탄티베트의 관계. 부탄과 티베트는 언어, 문화, 종교 등 모든면에서 매우 가깝다.
티베트 망명 정부에 의하면 현재 부탄 내 거주하는 티베트인 난민 인구는 1,298명이라고 한다.
부탄은 티베트의 독립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고대부터 부탄과 티베트는 티베트 왕국의 일부였다. 그리고 불교를 받아들이는 등 부탄과 티베트는 문화적, 민족적인 면에서도 매우 가까웠다. 또한, 양국은 인도의 영향을 매우 받는 등 가까운 편이었지만, 동시에 전쟁도 있었다. 티베트도 부탄을 침공한 적이 있어서 사이가 안 좋은 것도 있었다.
19세기에 부탄은 영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차이가 생기기도 했다.

2.2. 20세기


20세기초에 부탄은 영국에서 독립을 했다. 1950년대에 티베트가 중국의 침공을 받아 점령당하면서 부탄내에선 반중감정이 높아졌고 중국과 일절 외교관계를 맺지 않았다.[1]
물론 티베트 망명정부 측과 부탄이 항상 사이가 좋기만 한 것은 아니고 생각보다 갈등도 많다. 부탄에 정착한 티베트 난민은 4천여 명 정도에 달했으나 1974년에는 달라이 라마 14세측 대표를 포함한 티베트인 28명이 부탄 왕 암살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고문 후 재판없이 투옥되었던 적이 있었다.
1979년에는 부탄 정부측에서 부탄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티베트인은 모두 티베트 자치구로 강제 송환할 것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배신감을 큰 느낀 티베트인 난민 중 3천여 명이 부탄을 떠나 인도나 네팔로 넘어가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3. 문화 교류


부탄과 티베트는 매우 가깝다보니 언어, 문화, 종교에서 매우 가까운 편이다. 티베트어종카어는 매우 가깝고 문자도 티베트 문자를 사용한다. 그리고 티베트와 부탄은 티베트 불교를 믿고 있다.
사실상 부탄의 국교이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 대신 샵둥나왕남걜(Zhabdrung Ngawang Namgyel)이 국사(國師)의 위치를 차지한다. 16세기에 티베트 불교 종파 중 둑빠 까규빠 세력이 겔룩빠의 탄압을 피해 부탄에 자리잡아 국교가 되었기 때문.

4. 관련 문서


[1] 부탄은 지금도 중국과의 관계가 안 좋은 편이고 중국과는 수교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