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옥저

 


'''북옥저 (北沃沮)
(치구루(置溝婁))'''
[image]
▲옥저와 주변국 지도
'''존속기간'''
기원전 3세기 ~ 244년(기원후 3세기)
(기원전 3세기)[1]
'''위치'''
북간도
연해주 남부 지방
'''군주'''
군장 (읍군, 삼로)
'''종족'''
예맥[2]
'''언어'''
고대 한국어
'''사건'''
주몽에 의해 복속
'''성립 이전'''
부족사회
'''멸망 이후'''
?[3]
1. 개요
2.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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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옥저는 개마산 동쪽에 있었던 한국의 옛 나라로, 치구루라고도 한다. 후에 주몽에 의해 고구려에 흡수되었다.

2. 기록


《후한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북옥저가 있는데 일명 치구루(置溝婁)이다. 남옥저에서 팔백여리를 간다. 그 풍습이 모두 남옥저와 같다. 경계는 남으로 읍루이고, 읍루 사람이 배 타는 것과 노략질을 즐기니, 북옥저가 이를 두려워하여 늘 여름에는 바위구멍에 숨어있다가 겨울에 이르러 뱃길이 통하지 않으면 아래로 내려와 읍락에서 살았다. 한 늙은 노인이 말하기를 바다 가운데에서 베옷을 하나 얻었는데 그 모양은 보통사람 옷과 같으나 양 소매가 삼장이나 되었다. 또 그는 말하기를, 언덕 위에서 보니 한 사람이 부서진 배를 타고 오는데 목 복판에도 얼굴이 하나 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말이 서로 통하지 않아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죽었다. 또 말하길 바다 가운데에 여인국이 있어 남자가 없다. 혹 전하기를 그 나라에는 신의 우물(神井)이 있어 이를 보면 쉽게 아이를 낳는다. [4]

기록에 의하면 남옥저와 320km 정도[5] 떨어져있었고 읍루에게 상당히 당했던 것 같다.
[1] 고고학으로 확인했을 경우.[2] 삼한, 여진[3] 고구려로 다수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4] 위지(魏志)에 관구검이 왕기를 파견하여 구려왕 '궁'을 쫓아 옥저 동쪽 경계에 이르러 늙은 노인에게 물어 전한 것이다.[5] 서울에서 한 부여 정도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