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구묘

 


1. 정의
2. 마한의 분구묘
3. 기타


1. 정의


분구묘의 정의는 광의의 정의와 협의의 정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보편적인 정의와 관용적인 정의 정도로 달리 말 할 수 있다.
먼저 일반적 차원에서의 분구묘라고 지칭하는 것은 무덤의 축조과정에서 분구(墳丘)를 먼저 형성한 후 그 분구의 위에 시신을 안치하는 매장주체부를 두는 것을 뜻한다. 역사고고학에서 매장주체부의 위치에 대해서 지상식, 지하식으로 구분하는데, 지상식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분구묘이다.[1] 흔히 알려진 신라적석목곽묘는 완전히 지하식으로 분구묘와 반대되는 대표적인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별거아닌 것 같지만 장례의 매커니즘을 따져보면 순서가 완전히 다르게 되는 중요한 구분이기도 하다. 지하식의 무덤은 시신을 안치하는, 다시말해 하관(下棺)을 할 때에는 봉분이 형성되어 있지 않고, 분구묘의 유형에 해당하는 경우 분구의 상부에 있기 때문에 하관 및 관련 제의를 할 때는 분구의 정상에 올라가서 행위를 하게 되므로 제례의 경관 자체가 확연히 차이나게 된다. 즉 분구선축이냐 매장주체부 선축이냐는 다른 제사 문화를 향유하는 것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일반적 차원에서의 분구묘의 관점에 볼 때 흔히 말하는 마한의 분구묘를 포함하여 원삼국시대 한반도 중부지역에서 확인되는 소위 청당동식 분구묘도 여기에 해당한다. 심지어는 고구려의 적석총도 분구선축식의 무덤으로써 이 범주에 해당하기도 한다. 초기 백제의 무덤 형태인 즙석식적석총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일본, 한국에서 확인되는 전방후원분 또한 분구묘에서 발전된 개념이기도 하거니와 그 자체로도 분구묘의 범주에 들어간다.

2. 마한의 분구묘


관용적인 차원에서의 분구묘는 마한의 고지(故地)[2]인 호남지역의 원삼국시대, 삼국시대의 분구묘를 흔히 지칭한다.
첫째, 위와 마찬가지로 분구(마운드)를 먼저 조성한 후 그 안에 피장자를 매장한다. 둘째, 여러 사람을 하나의 봉분(분구)에 매장하는 경우가 비교적 많다. 이를 다장이라 하며 피장자간 위계차가 전제되는 순장과는 차이가 있다. 셋째, 마운드 주변으로 도랑이 존재한다. 도랑만 확인되고 피장자를 묻은 묘가 확인되지 않은 경우 주구묘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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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표적인 분구묘인 나주 복암리 고분군, 유적전시관 건립 이전의 전경 사진으로써 지금의 유적전시관이 있는 부근에는 주거지도 확인이 되었었다. 참고로 사진 속 동그라미의 조그마한 산 등성이는 나주 복암리 정촌 고분으로써 하나의 단일 고분이다. 물론 단일 고분이라고 하기에는 수차례에 걸쳐 매장행위를 실시한 일종의 공동묘지처럼 사용하였었다.[3] 여담으로 이 무덤에는 현대의 무덤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분구가 워낙 커서 그냥 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 기타


분구묘는 고고학계에서 언급되는 학술적 용어이며 학계 내부적으로 개념과 인식에 관해 상당한 논쟁이 있어온 만큼 비전공자가 분구묘의 함의를 이해하기엔 장벽이 높은 고고학자료이다.
상술하였듯이 원삼국시대 마한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분구묘들은 방형주구묘[4]라고 하며, 또 호남지역의 원삼국시대~삼국시대의 무덤(전방후원분을 포함하여)들이 대부분 분구묘이기 때문에 학술적인 용어로도 그렇고 뉴스에서 이 용어를 접할때 헷갈리기 쉽다. 따라서 제목이나 주제, 문맥 등으로 파악해야하는 단점 아닌 단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분구묘에 대한 개념적 용어 구분, 분류에 대한 연구도 더러 확인할 수 있는데, 아직 누구나 인정할만큼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용어가 제시되지는 않았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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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서 확인된 대규모 방형주구묘 군집
또한 분구묘는 의외로 분구 자체가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호남지역에서 확인되는 삼국시대 5~6세기대의 분구묘들은 산이라고 생각할 만큼의 대형의 분구묘이기 때문에 잘 잔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반도 중부지역 및 호남지역에서 확인되는 그 밖의 분구묘들은 비교적 낮고 작게 많이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분구가 이미 파괴되어 사라진 경우가 많다.[6] 위에서 서술된 주구묘의 범주에 해당하는 것들이 그러한 것으로 지상식으로 축조되는 무덤들이 갖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신라의 적석목곽묘처럼 지하에 있는 경우에는 온전히 남아 있거나 흔적이라도 알 수 있는데 분구 위에 매장주체부가 형성된 경우에는 분구의 흔적만 찾을 수 있지 매장주체부는 알 수 가 없다는 단점 아닌 단점이 있다.
그래서 중부지역의 주구묘들이 대량으로 발굴되었다는 뉴스를 보면 눈썹 모양 내지는 사각형의 주구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의 발굴, 연구 성과 덕분에 이것이 무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 물론 이 조차도 약간 애매한 정의이긴 하다. 분구 아래가 아닌 분구 안에 매장주체부가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2] 물론 마한인지 백제인지 5~6세기 호남지역의 정치체와 관련되어 여러 견해가 있지만 일단은 기존 서술을 고려하여 마한이라고 한다.[출처] 문화재연구소, 2009, 나주 복암리 유적1[3] 이는 분구묘에서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4] 또 여기서 혼동이 있을 수 있다. 주구묘의 범주에는 이 주구묘 외에도 청동기시대의 주구묘가 있기도 하다. 그 밖에도 주구 자체를 둘러쳐놓은 무덤을 주구묘라고도 하기 때문에 이 또한 헷갈리기도 한다.[5] 학술적 용어의 구분에는 개념적, 이론적, 그리고 실물 자료에 대한 적응 등의 다양한 차원의 함의를 충분히 포함하여야 하기 때문에 새롭게 용어를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6] 토광만 얕게 남았거나 아에 사라진 경우도 꽤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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