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룽안 술탄국

 



언어별 명칭
Kesultanan Bulungan(마인어)
국기
[image]
존속기간
1731년 ~ 1964년
통치자
술탄
수도
탄중팔라스
위치
인도네시아 북부 칼리만탄주
언어
말레이어(불룽안 방언)
종교
이슬람교, 카하링안(다약 애니미즘)
성립 이전:
브라우 술탄국, 술루 술탄국
성립 이후
인도네시아

1. 개요


불룽안 술탄국은 인도네시아의 북부 칼리만탄주(칼리만탄우타라주)에 있던 술탄국이다.

2. 역사


칼리만탄우타라(보르네오 동북부) 해안 지역에 다약인의 일파인 카얀(Kayan)인이 17세기에 정착하여 일대 세력을 이루고, 지역의 번성한 브루나이 술탄국과 교류하였다. 1650년 무렵 브루나이에서 온 남성이 카얀의 공주와 결혼하여 오늘날의 탄중슬로르(Tanjung Selor)에 정착하여 카얀의 영주 가문을 세웠다. 이 카얀의 영주 가문이 18세기 중반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영주가 술탄위를 칭하여 불룽안 술탄국(Kesultanan Bulungan, 1731–1964)이 창건되었다. 불룽안 술탄국은 전통 시대에 오늘날의 인도네시아령 보르네오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영토를 다스렸던 국가였으며, 초기에는 남쪽으로 인접한 브라우 술탄국의 봉신국이었다.
전통 시대 필리핀의 술루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술루 술탄국(15세기–1915)이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오늘날 말레이시아 사바 지역 가운데 일부를 지배하기도 했는데, 이 영토 가운데 많은 부분은 브루나이 술탄국에서 양도받은 것이었다. 이 지역의 정치는 브루나이, 술루 외에도 이들과 국경을 접하는 불룽안 술탄국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었는데, 19세기 중반에 불룽안 술탄국은 술루 술탄국의 종주권을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술루의 선박은 불룽안의 항구 타라칸(Tarakan) 등을 자유롭게 왕래하였다. 한편 19세기 전반에 인근의 브라우 술탄국과 쿠타이 술탄국을 복속시킨 네덜란드 세력 역시 1850년 불룽안과 해적과 인신매매 퇴치를 위한 우호 협정을 맺고 불룽안 지역에 점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
술루의 세력을 억제하고 서로의 세력권 범위를 확정하기 위해 영국스페인 사이에 1870년대부터 논의가 이루어졌으며, 1878년 무렵 불룽안 술탄국은 술루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1885년의 마드리드 의정서(Madrid Protocol)에 의해 북보르네오를 영국이, 술루 제도를 스페인이 관할하는 협약이 영국, 스페인, 독일 제국 사이에 성립되었다. 이는 기존 술루의 북보르네오 관할권을 승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스페인이 약간 양보한 결과였다. 이전까지 브루나이와 술루가 지배하던 사바 지역은 19세기 후반에는 영국의 북보르네오 칙허 회사(North Borneo Chartered Company, 1881년 창설)가 관리하게 되었다.
한편 술루에 종속되어 있던 불룽안 지역은 영국, 스페인 어느 쪽으로의 귀속도 불분명한 상태였다. 이에 보르네오 동부에서 팽창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치던 네덜란드 세력이 개입하여 불룽안을 종속시켜 1880년대부터 1900년대 초까지 불룽안은 네덜란드령 동인도로 완전히 흡수되었다. 영국령 사바와 네덜란드령 보르네오 사이의 경계는 당분간 다소 불명확한 채로 남아 있다가 1915년에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확정되었다. 네덜란드는 1893년 불룽안 지역의 탄중슬로르에 네덜란드 정청을 설치[1]하였다.
20세기 초, 구 불룽안 지역의 타라칸과 부뉴섬(Pulau Bunyu) 인근에서 석유가 발견되어 항구 도시 타라칸을 중심으로 구 불룽안 지역의 경제가 크게 발전하였다. 이는 19세기 말부터 석유 부문의 주도로 경제가 발전한 구 쿠타이 지역사마린다(Samarinda)와 발릭파판(Balikpapan) 등지와도 유사한 것이었다. 향신료 무역이 전통적으로 지역 경제를 지탱했던 보르네오 남부, 서부 해안과는 달리 주요 무역로와 거리가 있는 보르네오 동부 해안은 네덜란드령 보르네오 지역에서도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고 도시 발전이 늦은 편으로, 석유 주도형 경제 발전으로 현대에는 인구가 급성장하였으나[2] 여전히 남부의 구 반자르 지역보다는 인구 밀도가 낮은 편이다.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에 불룽안 지역은 토착 지배 가문들에 의해 간접 통치되었으며, 인도네시아 독립 후에도 불룽안 지역은 한동안 술탄이 지배하는 특별 지역 지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1958년 불룽안 술탄 잘랄루딘(Jalaluddin)이 죽은 후, 인도네시아 정부는 1964년 불룽안 지역에 군대를 투입하여 불룽안 술탄궁을 포위, 접수하고 술탄가의 재산을 압류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불룽안의 왕족과 귀족 다수가 체포되거나 살해되었다.(Tragedi Bultiken) 이후 인도네시아 정부는 불룽안 지역의 특별 지위를 폐지하였다.

[1] 탄중슬로르는 오늘날 칼리만탄우타라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주의 최대 도시는 탄중슬로르가 아닌 타라칸이다.[2] 인도네시아 통계청의 공식 1971, 1980, 1990, 1995, 2000, 2010년 주별 인구 통계에 따르면, 1971년 칼리만탄티무르(오늘날의 칼리만탄우타라와 칼리만탄티무르를 합한 지역으로, 칼리만탄우타라주는 2012년에 신설된 주이다)주의 인구는 약 73만 4천 명, 칼리만탄슬라탄주의 인구는 약 169만 9천 명이었다. 그러나 칼리만탄티무르주의 인구는 2010년에 거의 5배에 달하는 급성장세를 보여 약 355만 3천 명이 된 반면, 칼리만탄슬라탄주의 인구는 두 배가 조금 넘는 수준인 약 362만 7천 명 정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