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민주운동
Movimento Democrático Brasileiro
1. 개요
1965년에 창당된 브라질의 빅 텐트, 포퓰리즘정당.[1]
2. 명칭
원래 이름은 "브라질 민주운동"으로, 약칭은 MDB를 사용한다. 다만 1981년부터 2017년까지는 당명에 "당(Partido)"을 붙여 "브라질 민주운동당"이라고 불렀으며, 약칭 또한 PMDB였다. 2017년 12월 원래의 당명으로 회귀했으나, 아직까지도 "당"을 붙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3. 역사
1965년 12월 4일에 창당되었으며, 2015년 창당 50주년을 맞이했다. 노동자당을 비롯한 다른 정당들보다 훨씬 더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MDB보다 더 오래된 정당은 브라질 사회당(PSB) 정도다.
하지만 "민주"라는 이름과는 달리 현실은 군사정권의 조종을 받는 관제야당이었으며, 1980년대 민주화를 주도한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군사정권을 받드는 역할을 했다. 쉽게 말하자면 대한민국 5공 시절의 민주한국당과 비슷한 포지션. 그리고 이 시절 브라질은 "양당제"였는데, 미국처럼 2개의 정당이 우위를 점하되 다른 정당들도 활동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일당제의 반댓말로서의''' 양당제였다. 즉 유일 합법 야당이었던 것.
다만 "야당"은 야당이었는지, 민주화를 갈망하던 인사들이 MDB를 비판적으로 지지하며 입당하면서 서서히 선명 야당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1984년 대선에서 비록 간선제였지만 이 당의 탕크레두 네비스가 당선되어 비로소 여당이 되었으나, 취임도 못하고 사망하여 부통령인 호세 사르네이가 승계하게 되었다. 다만 사르네이 또한 이 당 출신이었으므로 집권당 지위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허나 여전히 군사 정권 하에서의 민주화였던지라 사르네이 정권의 민주화는 큰 전진을 보지 못했으며, 군부의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1988년 신헌법이 제정되고 나서야 비로소 실권을 쥘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신헌법 덕분에 다당제로 전환되면서, 당세는 급격하게 줄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은 이 당이 유일한 합법 야당이었기 때문에, 진보 성향의 인사들도 어쩔 수 없이 이 당에 입당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다당제로 전환되면서 더 이상 이 당에 눌러 앉아 있을 이유가 없었고, 곧바로 대거 탈당한다.
그 덕에 1986년 총선 때 과반 의석을 차지하던 정당이 4년 뒤에는 개헌저지선 이하로 추락했으며, 1989년 대선 또한 울리세스 기마랑이스 후보가 4.7%만을 득표해 광탈했다. 1994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으며, 심지어 1998년 대선 때는 후보 선출조차 실패하기에 이르른다.
이후 2002년 여성인 리타 카마타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해 잠시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만, 저조한 지지율에 결국 사회민주당(PSDB) 후보인 호세 세라와 단일화해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에 이르른다. 하지만 세라가 낙선하면서 고전하다가 2006년 또 다시 후보 선출에 실패했으나, 2010년 미셰우 테메르 대선 후보가 노동자당의 지우마 호세프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들어가면서 비록 집권당은 아니지만 그래도 20년만에 여당 지위를 되찾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호세프 정권의 잦은 실책으로 연정 탈퇴 논의가 나오기 시작했고, 2016년 끝내 연정에서 탈퇴해 호세프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렇게 해서 호세프를 탄핵하는데 성공했으며, 테메르가 대통령직을 승계해 26년만에 집권당으로 복귀한다.
그러나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었으며, 각종 부정부패 논란 등에 휘말리다가 너무나도 저조한 지지율에 불출마를 선언하기에 이르른다. 대신 엔히키 메이렐리스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지만, 지지부진하다가 1% 대의 득표율로 광탈한다.
그나마 결선투표에서 주요 대도시 지역 시장자리는 지켰다. 하지만 이건 좌파후보가 광탈하고 2위 후보가 사회자유당이거나 했기 때문(...)이다.
[1] 평균적인 스펙트럼은 중도~중도우파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