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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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1년 1월 1일 창당한 '''관제야당.''' 약칭은 민한당이다. 신군부에 의해 정치규제를 당하지 않은 신민당 출신 정치인들이 민주한국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그 해 유치송이 총재가 되었다.
2. 상세
제5공화국 시절에는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2중대라는 조롱을 당했으며 실제로도 국군보안사령부와 국가안전기획부가 창당자금을 제공하고 공천자 명단, 당직 임명까지 관여한 관제야당이다.
유치송이 바지 총재이고 신상우 사무총장이 실세로 알려졌으나 그 역시 허수아비였다. 이러다 보니 '''민주한심당'''이라는 멸칭도 존재했다.
하지만 일부 의원들은 전두환 정부의 탄압으로 양김(김영삼, 김대중)이 사라진 상황에서 어떻게라도 야당을 지키겠다는 심정으로 뛰어든 인물도 있었다. 민주정의당에 간 의원들에 비하면, 이들의 처지는 변명의 여지가 있으나 실질적 이미지는 '''힘없는 어용 야당이나 비시 프랑스 격이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81석을 얻어 제1야당이 되었지만, 1985년 신한민주당이 창당되고 치러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지역구 26명과 전국구 9명으로 35명이 당선되는 데 그치며 제2야당으로 전락하였다. 특히 대도시 지역에서 3위로 낙선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 타격이 컸다. 이후 소속 의원들의 탈당(주로 신한민주당행)[1] 이 뒤를 이어 신한민주당이 148석의 민정당과 맞서는 103석의 거대 야당이 되는 반면 민한당은 3석[2] 짜리 정당으로 전락했다. 그리하여 그 해 3월 유치송은 민주한국당 총재직을 사퇴하고 조윤형[3] 이 잠시 총재가 되어 신민당과 합당을 추진하였으나 선명야당을 표방한 신민당이 2중대 소리 듣던 민한당을 받아줄 리가 만무했다. 결국 조윤형을 비롯한 일부 인사들은 탈당하여 신민당에 입당했고, 그 해 9월 유치송이 다시 총재가 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여 정당등록이 취소되고[4] , 남은 인사들은 통일민주당에 흡수되었다.
중앙당사는 창당 초기 서울특별시 종로구 공평동 5-1 공평빌딩[5] 에 터를 잡다가, 1981년 5월 1일부터 영등포구 여의도동 13-31 기계회관으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