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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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ido dos Trabalhadores'''
'''약칭'''
PT
'''한글명칭'''
노동자당
'''창당일'''
1980년 2월 10일
'''상징색'''
하얀색
'''이념'''
사회민주주의

내부계파:
사회자유주의, 보수자유주의,
그람시주의, 트로츠키주의,
기독교 좌파, 21세기 사회주의
'''스펙트럼'''
중도좌파 ~ 좌익[1]
'''당대표'''
클레이지 호프만
'''당원 수'''
1,534,315명(2020년 기준)
'''국제 조직'''

'''아메리칸 조직'''
상파울루 포럼
COPPPAL
'''상원 의석 수'''
6석 / 81석
'''하원 의석 수'''
56석 / 513석
'''공식 사이트'''

1. 개요
2. 역사
2.1. 창당
2.2. 전성기 (2002년~2012년)
2.3. 2013년~2015년
2.4. 2016년~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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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정당. 1980년 창당되었다.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정당으로, 브라질의 전임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의 정당으로도 나름 유명하다. 라틴 아메리카 진보정당 상임 이사회와 상파울루 포럼[2]에 소속되어있으며 창립멤버이기도 하다.

2. 역사



2.1. 창당


브라질 군사독재 시절인 1979년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를 주축으로 한 다양한 노동운동가와 좌파 지식인들이 결집했고, 브라질에서 군사독재정권이 약화된 시점인 1982년 2월에 정식 정당 등록이 이루어졌다. 당 강령에서는 "민주적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착취, 지배, 억압, 불평등, 불의, 빈곤을 없애기 위해 투쟁하겠다"고 명기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 기독교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대다수의 중도좌익에서 소수의 중도우파나 극좌까지 다양한 정치 세력이 결집하고 있었다. 또한 노동운동 이외에도 환경 보호인권 보호 등 다양한 분야의 시민운동·사회운동가들의 참여도 있었다.
브라질 노동자당의 정당 등록이 이루어진 것과 같은 해 11월에 실시 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수는 낙선했지만, 하원에서 8석을 얻었다(득표율 3.5%). 이후로 1985년 지방선거에서 다수의 시장직 및 지방의원직을 배출했으며 이렇게 얻은 힘으로 대통령 직선제 재도입 및 사회복지제도 도입을 주창했고, 헌법에 반영되었다. 1988년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 후 처음 열린 1989년 12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룰라가 출마했지만 결선 투표에서 페르난도 코로르 드 멜로에 패배했다(결선 투표 득표율 38%). 이후로는 지방선거에서의 패배도 있었지만 페르난도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브라질 보수 정치세력이 힘을 잃으며 기회를 잡을거 같았는데, 1994년 의회 선거에서는 이전(1990년)보다 득표와 의석을 크게 늘렸지만, 동시에 행해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헤알 플랜으로 명성을 얻은[3] 페르난도 엔리케 카르도(브라질 사회민주당[4])에 큰 차이로 패했다.

2.2. 전성기 (2002년~2012년)


'''대통령 취임식 중인 룰라 대통령과 조제 알렝카르 부통령'''
1998년 대선을 앞두고 브라질은 다시 경제 위기에 빠지게 되었고, 기존 정권들의 무분별한 민영화 정책의 폐해도 그대로 드러났다. 하지만 룰라가 대통령이 될 경우 급진적인 좌파적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보수 우파의 불안감은 여전했고 아예 디폴트 상태에 빠져서 경제가 더욱 악화될 수 있을거라는 썰이 보수층을 중심으로 나돌면서 카르도수 대통령에게 다시금 패하고 말았다. 이후로 카르도수 대통령이 또 죽을 쑤면서 2002년 10월 대선에서 60% 정도의 득표를 얻어 드디어 첫 승리를 거뒀다. 거기에 동시에 열린 국회의원 선거에서 91석을 얻어서 거대 여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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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치뤄진 2006년 10월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룰라가 재선에 성공해 브라질 노동자당은 여당의 자리를 유지했다. 룰라는 노동당 출신 정치가답게 브라질 사회에 급진적인 복지 정책을 추진했지만, 경제적으로는 현실적이고 안정적인 중도적 시장 경제 정책을 채택했고, 쉽게 말해 성장과 복지 둘 다 잡는 가운데 2014 월드컵과 2016 올림픽[5]이란 국제대회도 유치하는 등 브라질의 국제적 위상도 높여 대중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으며, 말년에도 지지율 70%를 자랑하며[6] 2010년 대선에서 자신의 후계자인 지우마 호세프를 손쉽게 당선시킨다. 참고로 호세프는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기도 했다.

2.3. 2013년~2015년


그러나 2013년부터 지우마 호세프 정권이 월드컵 개최 예산 문제와[7] 부동산 투기 문제 등으로 인해서 비끄덕거리기 시작했으며, 2014년 대선에서는 겨우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2015년부터는 연립정당과의 갈등 때문에 야당과 연립여당 사이에서 탄핵론이 대두되었고,[8] 이 문제로 공동여당인 민주운동당이 연정을 탈퇴하는 등 시끄럽다가 결국 야당이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하기에 이른다.

2.4. 2016년~현재


결국 상원에서 탄핵이 인용되자 부통령인 미셰우 테메르가 대통령직을 승계하면서 야당이 되었다. 그렇지만 2018년 선거에서 선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도 나왔는데, 테메르 역시 삽질 연속에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건 여전했기 때문. 그런데 브라질 정치판도 골때리는게 이때 호세프가 탄핵되고 덤으로 엮여 부패 혐의로 재판받고 있던 룰라가 당시 대권 여론조사에선 '''부동의 1위'''였다.(...)
그러나 룰라가 압도적인 지지율에도 재판 때문에 출마하기 힘들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인지라 총선에서 선전할 수는 있어도 대선에 후보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 게다가 룰라가 9월 1일자로 형을 받으면서 '''끝내 출마하지 못하게 되었다'''.[9] 이에 부통령 후보로 미리 지명된 페르난두 아다지(Fernando Haddad) 전 상파울루 시장이 대신 나가게 되었지만 지지율이 영.. 다만 아다지 후보가 룰라의 지지선언으로 인지도와 지지율이 급속히 상승해 잘만 하면 50~60%대 득표율로 결선 당선은 따내는거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막판에 아다지에게 힘을 실어주던 룰라의 인터뷰가 금지되고 모로가 노동자당을 비토하는 발언을 하는 악재가 터져나오고, 보우소나루가 기습 테러로 본인이 의도한건 아니지만 대선 토론회에 나가지 못하게 되면서 불리한 질문을 저절로 회피할 수 있게 된 점이 아다지에겐 악재로 작용했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페르난도 아다지 후보를 비방하는 가짜뉴스도 개신교 복음주의자들을 통해서 전파된 것이 의외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결선투표에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말 그대로 미지수가 되어버렸다.
결국 결선투표 기간 내내 보우소나루 측의 가짜뉴스 살포 전략에 수세에 밀렸으며 보우소나루 측이 안전을 이유로 의도적으로 아다지 후보와의 토론을 회피하면서 보우소나루측의 약점을 짚는데 실패했다. 선거운동 막판에 가짜뉴스 살포전략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보우수나루의 지지율이 하락했지만 이미 판세를 뒤집기에는 늦어버린 바람에[10] 결국 정권탈환에 실패하고 말았고 지방선거에서도 동북지역을 제외하면 크게 세를 확보하지 못했다.
동시에 상하원선거에서도 부진한 성적표를 거두웠다. 하원에서 민주운동당을 제치고 1당 자리를 차지하기는 했지만 의석수가 줄어들었으며, 상원에서는 6석만을 차지하는 처참한 성적표를 거두웠다. 물론 민주운동당이나 사회민주당 등에 비하면 패배의 정도는 비교적 덜하기는 하고, 비슷한 성향을 띄고있는 민주노동당과 사회주의 자유당(PSOL)으로 표 분산이 된 것이 크기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상원에서 처참하게 패배해버린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평. 호세프도 4위로 처참하게 낙선한 것이 이를 반증한다.
하지만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론 보우소나루 정권이 죽을 쑤면서 묘하게 재평가(?)되고 있다. 룰라도 재기를 노리는지, 202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노동자당에 개신교 신자들과의 스킨쉽을 주문했다. 2018년 대선에서 개신교 세력의 지지를 얻지 못한게 대선 패배의 한 원인이라고 진단한듯. 브라질 룰라, 좌파 노동자당에 개신교 세력과 '스킨십' 주문. 참고로 2010년대 브라질의 종교별 유권자 비율을 가톨릭 55%, 개신교 27%, 무신론 등 기타 18%라고 한다.
2022년 대선에서는 노동자당 후보 외에 정권 교체에 적합한 후보가 출마할 경우, 후보 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간접적으로 후보 단일화를 하겠다는 이야기로 풀이된다.
2020년 지방선거에서는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는 굴욕을 당했다.# 노동자당이 주도 단위에서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한건 1985년 이후 35년만에 처음있는 일이다. 2018년 대선 패배 이후 계속된 민주노동당-사회당의 온건 좌파 연합과의 불화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앞으로도 당의 정체성에 대하여 깊이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1] 단, 후술된 것과 같이 중도우파나 극좌도 더러 있다. 쉽게 말해 포괄정당 특징을 띈다.[2] 라틴 아메리카 일대 좌파정당의 연맹체로, 상파울루 포럼 자체는 1990년 냉전 해체와 라틴 아메리카에 흘러오는 신자유주의 물결을 좌파정당들이 어떻게 대응해야될지 논의하는 자리를 만든 것에서 비롯되었다.[3]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브라질의 물가상승은 외채난과 맞물려서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악명이 높았으며 브라질 당국에서 이를 틈타서 바가지를 씌우는 상인들과 기업들을 단속하거나 화폐개혁을 주기적으로 시행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고 결과적으로 매년 십수배에 달하는 물가상승률을 기록하면서 브라질 경제를 좀먹었다. 이때 카르도수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여러 경제학자들과 함께 헤알이라는 가상의 단위를 체택해서 해당 단위를 바탕으로 해서 물가를 책정하도록 했는데 뜻밖에 이 조치가 크게 실효를 얻으면서 이 가상의 화폐단위를 정식화폐로 승격(?)시키고 따로 화폐를 발행하면서 물가가 안정세를 되찾자 카르도수가 대권주자로 떠올랐고,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8년간 대통령으로 재직했다. 물론 카르도수도 나중에 브라질의 외채를 크게 증대시켜서 IMF 외환위기에 까지 몰렸다는 점이나 무분별하게 민영화를 시행해서 빈부격차와 치안을 악화시켰다는 점, 실업률이 한자릿수대에서 10% 중반대를 웃도는 등 물가안정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형편없기 때문에 사실 브라질 내에서도 크게 까이는 인물이기는 하다.[4] 이름 그대로 사회민주주의 성향을 띄고 있고, 집권 초기 민주운동당에서 분당되었을때만 해도 그런 성향이 있었지만 카르도주 집권시에 우파 정책을 폈고, 정권상실 이후로도 금융규제완화 같은 정책을 주장하기에 실제로는 포르투갈의 이름 같은 정당처럼 우파 성향을 띈다고 보기도 한다. 실제로도 브라질인은 사회민주당을 이름만 좌파적이지 실제로는 우파정당이라고 생각한다.[5] 남미에서 개최된 최초의 올림픽이기도 하다.[6] 오죽하면 당시 야당 대권 후보조차 룰라 본받아 정치하겠다고 할 정도였다.[7] 월드컵 경기장 건설 등에 드는 비용을 서민층에 쓰라는 시위가 이어졌다.[8] 참고로 탄핵을 주도한 인물은 쿠냐 전 하원의장이었는데 지우마 호셰프 정권 초기까지만 해도 노동자당의 지지에 힘입어 하원의장이 되었지만 지우마에게 구원해달라는 요청이 거절당하자, 노동자당과 야당과 합세해서 탄핵을 주도하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부패 혐의가 제대로 드러나면서 탄핵 가결에 성공한 뒤로는 감옥에서 생활하고 있는 중.(...)[9] 당연히 룰라 지지자들은 룰라가 대권에 나오지 못하게 반대파들이 기획한 정치적 재판이라고 반발했다.[10] 실제 선거운동 기간 동안의 여론조사를 보면 보우소나루가 선거 2주간 아다지 후보에게 우위를 기록했으며, 나머지 1주간은 아다지 후보가 급속히 따라붙기는 했지만 결과 자체를 바꾸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