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쇼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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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Richard Shorten, 1967.5.12 ~
호주의 정치인. 전 노동당 대표였다.
멜버른에서 태어났으며, 모나쉬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부모의 영향으로 영국 국적을 갖고 있었으나, 2006년 차기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포기했다. 따라서 현재는 호주 국적만을 갖고 있는 중.
2000년 데비 빌(Debbie Beale)과 결혼했으나 8년 만에 이혼했으며, 2009년 클로이 브라이스와 결혼했다. 2010년 처음으로 아이를 갖게 되었다.
호주 노동당에 입당한 뒤, 1996년 매리버농 지역구에 출마를 선언했으나 경선에서 밥 서콤브에 밀려 탈락했다. 1998년 조기 총선이 치러졌으나, 여기에 출마하지 않고 대신에 이듬해에 치러진 빅토리아 주 총선거에 출마했으나 도중에 사퇴했다.
이후 잠잠하다가 2005년 매리버농 지역구에 재출마할 것을 선언했고, 서콤브가 고심 끝에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공천을 받는데 성공했다. 이후 2007년 총선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동시에 노동당이 집권하게 되자 교육부 장관 등을 비롯한 각료로 활동하면서 명성을 쌓게 된다.
2013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패하자, 케빈 러드 대표는 이에 대한 책임으로 직을 사퇴했다. 곧바로 치러진 전당대회에 출마하게 되었으며, 앤서니 올버니지를 누르고 신임 대표로 선출되었다. 여담으로 노동당 최초로 당원투표제로 치러진 전당대회인데, 이에 따라 당원들의 지지를 받은 첫 노동당 대표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야권 대표로서 쇼튼은 국민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으며, 마침 자유당-국민당 연합 정권이 지지를 잃게 되자 2016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처럼 승승장구하고 있었으나, 중간에 연합 대표 겸 총리가 맬컴 턴불로 교체된 이후로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으며, 결국 아쉽게 패했다. 그럼에도 노동당 의석이 늘어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안거리가 되었으며, 반대로 연합의 의석수는 간당간당하게 과반을 차지하는 수준으로 추락했다.
이후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이 1위를 기록하면서[1] 2019년에는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고 있었다. 연합이 내분 상황 속에서 턴불마저도 물러나고 스콧 모리슨이 신임 총리로 오르는 등 정치적 불안이 지속되고 있고, 이에 대한 민심의 이탈로 노동당이 반등하고 있는 것. 하지만 총리 선호도에서 모리슨에게 밀린다는 점은 변수가 될 여지가 있다.
실제 2019년 총선에서 출구조사 결과까지 뒤집히는(...) 이변 속에 접전지에서 노동당이 패배하며 정권 탈환에 실패하자 대표직에서 사임한다고 밝혔다. 이후 후임으로는 앤서니 올버니지 전 부총리가 당선되었다.
중도에 가까운 온건파로 평가받는다. 투표 연령을 16세로 하향하는 것을 지지하며, 이외에도 동성애 차별 등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또한 열렬한 공화파 정치인으로, 호주를 장기적으론 공화제로 개헌하는 것을 지지한다.
1. 개요
William Richard Shorten, 1967.5.12 ~
호주의 정치인. 전 노동당 대표였다.
2. 생애
멜버른에서 태어났으며, 모나쉬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부모의 영향으로 영국 국적을 갖고 있었으나, 2006년 차기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포기했다. 따라서 현재는 호주 국적만을 갖고 있는 중.
2000년 데비 빌(Debbie Beale)과 결혼했으나 8년 만에 이혼했으며, 2009년 클로이 브라이스와 결혼했다. 2010년 처음으로 아이를 갖게 되었다.
3. 정치 활동
호주 노동당에 입당한 뒤, 1996년 매리버농 지역구에 출마를 선언했으나 경선에서 밥 서콤브에 밀려 탈락했다. 1998년 조기 총선이 치러졌으나, 여기에 출마하지 않고 대신에 이듬해에 치러진 빅토리아 주 총선거에 출마했으나 도중에 사퇴했다.
이후 잠잠하다가 2005년 매리버농 지역구에 재출마할 것을 선언했고, 서콤브가 고심 끝에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공천을 받는데 성공했다. 이후 2007년 총선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동시에 노동당이 집권하게 되자 교육부 장관 등을 비롯한 각료로 활동하면서 명성을 쌓게 된다.
2013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패하자, 케빈 러드 대표는 이에 대한 책임으로 직을 사퇴했다. 곧바로 치러진 전당대회에 출마하게 되었으며, 앤서니 올버니지를 누르고 신임 대표로 선출되었다. 여담으로 노동당 최초로 당원투표제로 치러진 전당대회인데, 이에 따라 당원들의 지지를 받은 첫 노동당 대표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야권 대표로서 쇼튼은 국민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으며, 마침 자유당-국민당 연합 정권이 지지를 잃게 되자 2016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처럼 승승장구하고 있었으나, 중간에 연합 대표 겸 총리가 맬컴 턴불로 교체된 이후로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으며, 결국 아쉽게 패했다. 그럼에도 노동당 의석이 늘어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안거리가 되었으며, 반대로 연합의 의석수는 간당간당하게 과반을 차지하는 수준으로 추락했다.
이후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이 1위를 기록하면서[1] 2019년에는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고 있었다. 연합이 내분 상황 속에서 턴불마저도 물러나고 스콧 모리슨이 신임 총리로 오르는 등 정치적 불안이 지속되고 있고, 이에 대한 민심의 이탈로 노동당이 반등하고 있는 것. 하지만 총리 선호도에서 모리슨에게 밀린다는 점은 변수가 될 여지가 있다.
실제 2019년 총선에서 출구조사 결과까지 뒤집히는(...) 이변 속에 접전지에서 노동당이 패배하며 정권 탈환에 실패하자 대표직에서 사임한다고 밝혔다. 이후 후임으로는 앤서니 올버니지 전 부총리가 당선되었다.
4. 정치 성향
중도에 가까운 온건파로 평가받는다. 투표 연령을 16세로 하향하는 것을 지지하며, 이외에도 동성애 차별 등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또한 열렬한 공화파 정치인으로, 호주를 장기적으론 공화제로 개헌하는 것을 지지한다.
[1] 2차 한정. 1차에서는 자유당이 우세한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