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요시타츠
斎藤 義龍(さいとう よしたつ)
(1527.07.08~156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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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전국시대의 다이묘. 살무사(蝮)인 사이토 도산의 장남이자 이복 여동생인 노히메의 남편인 오다 노부나가의 매제이기도 하다.
2. 생애
1527년 7월 8일, 사이토 도산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측실인 미요시노로 어렸을 때의 이름은 부타마루. 원복을 치른 뒤에는 도시히사, 다카마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1554년에 아버지 도산이 은거하고 가독을 이어받아 이나바 산성의 성주가 되었다.
그 뒤、도산은 요시타쓰를 모자라는 놈이라 단언하며 말 잘 듣는 자식 마고시로나 기헤이지 등을 편애하게 되었다. 요시타쓰 자신도 아버지의 정책과 행동에 대하여 불만과 위기감을 품고 있었다. 급기야는 도산이 요시타쓰를 폐적시키고 정실 고미 부인 소생의 마고시로를 적자로 삼으려 드는가 하면 막내동생 기헤이지에게는 명문 잇시키 씨를 잇게 하는 등의 일로 양자의 관계는 최악의 사태로 치닫게 된다.
1555년 요시타쓰는 숙부뻘인 나가이 미치토시와 짜고 동생 마고시로, 기헤이지 등을 꾀어 히네노 히로나리를 시켜 죽이게 했다. 이에 도산은 놀라 오가 성으로 달아났다.
1556년、요시타쓰는 나가라 강에서 아버지와 대치하였다. 도산을 지지하던 세력은 얼마되지 않았으며 옛 도키 씨 세력의 지지를 얻어 도산을 치는데 성공하였다. 또한 아케치 씨 등 도산을 지지하던 세력들도 별동대를 이용한 신속한 용병으로 거의 같은 시기에 공격을 당해 멸망하였는데, 오다 노부나가가 장인인 도산을 구원하러 올 겨를도 없을 정도였다. 노부나가 역시 요시타쓰와 크고 작은 전투를 치르고 철수해 물러났다.
한편 이때 요시타쓰의 막내동생 사이토 도시하루가 오와리의 오다 가문으로 망명하여 노부나가의 이름자 한 글자를 받아 나가타쓰로 개명하였다.
그 뒤 요시타쓰는 누키타카제에 기초한 안도장을 발급하여 긴 기간에 걸쳐 혼란을 겪고 있던 영지 소유 문제를 처리하고 또한 숙로에 의한 합의제를 도입하는 등 무로마치 시대의 체제를 살리면서 전쟁을 일삼던 도산의 치하에서는 충분히 실시될 수 없었던 슈고 령국제의 잔재를 배제하고 센고쿠 다이묘로써의 기초를 쌓았다. 요시타쓰는 훗날 머리를 깎고 법명을 겐류라 하였다.
요시타쓰는 오다 가문과의 전투가 지속되는 가운데 교토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로부터 잇시키 씨를 칭하는 것을 허락받고 미노 사이토 씨에서 이름을 바꾸어, 1558년에 지부다이호로 임명되어 이듬해에는 막부 쇼반슈의 반열에 들어 센고쿠 다이묘로써의 대의명분을 얻었다. 나아가 남부 오미의 롯카쿠 요시카타와 동맹을 맺고 북부 오미의 아자이 히사마사와도 싸웠다. 그러나 오와리의 오다 노부나가의 침공이 더욱 격렬해지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요시타쓰에게 불리한 조건이 닥치면서 세력을 더 확대할 수 없었다.
1561년) 사쿄노다이후로 임명되었으나 그 해 5월 11일에 급서하였다. 향년 35세. 뒤는 아들 타츠오키가 이었다.
3. 각종 매체 속의 사이토 요시타츠
2020년 NHK 대하드라마 기린이 온다에서는 이토 히데아키가 연기한다.
인왕 2에서 보스로 등장하는데 주인공과 일란성 쌍둥이란 설정으로 커스터마이징한 생김새 그대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