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시민아파트
1. 개요
청계천 복개도로변에 있던 시민아파트. 다른 시민아파트들과는 달리 꽤나 독창적인 특징을 가졌던 아파트였다.
1.1. 특징
이 아파트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주상복합 형태의 아파트였다는 것이다. 1층은 상가, 2층은 사무실 or 상가, 3층부터 7층까지는 주거구역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여타 시민아파트스럽게 엘리베이터는 없다는 게... 그렇다고 구름다리나 그런 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안습...
그 외에도 이 아파트는 다른 시민아파트들과는 달리 값이 싼 산 중턱이 아닌 평지, 그것도 당시 중심가이던 청계천변 한복판에 위치해있었다. 게다가 주변에 동대문시장, 신당역이 있는 등 타 시민아파트들과 비교하면 매우 특이한 주변환경을 갖고 있었다. 다만 신당역은 이 아파트가 완공되고 10년도 더 된 1983년 개역했다.
이외에도 아파트 바로 앞에 고가도로가 지난다는 유니크한(...) 특성도 가지고 있다. 그 고가도로가 삼일고가차도로 삼일로, 지금의 삼일대로의 일부분 구간이었는데 이 도로는 지금도 서울의 중심도로 중 하나로 기능하고 있다.
7층이면 당시로는 꽤나 높은 아파트였는데[4] , 이렇게 높이 지은 이유는 황학동 일대 판자촌을 가리기 위해서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삼일고가차도를 축으로 북쪽 12개동과 남쪽 12개동으로 나누어져 있다. 행정구역상 다른 위치라 주소도 서로 다르게 받았다. 북쪽은 종로구 창신동 소속으로 되어 있으며, 남쪽은 중구 흥인동 소속이지만 실제로는 황학동 소속에 더 가깝다. 따로 단지 구분은 없으며, 근처에 12개동을 더 지으려 했지만 와우 아파트 붕괴사고로 인해 무산되었다.
2. 역사
시민아파트 1차분으로 1969년 12월 15일 완공, 입주를 시작했으며 아래의 상가는 1970년 2월 3일 공경매를 거쳐 입주를 시작했다.
그러나 완공된 지 반 년도 안 지난 1970년 4월 8일, 와우시민아파트가 도괴하는 사태가 발생하였고, 이 사고가 일어나기가 무섭게 여러 시민아파트에서 하자가 나오기 시작한다. 삼일시민아파트도 내장공사가 제대로 안 되었다는 게 밝혀져 4월 14일 업자 22명이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하고야 만다. 게다가 사고직후 실시한 긴급 안전진단조사에서 삼일시민아파트는 12개동이 조사를 받았는데, 거의 대부분이 문제 있음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이후 사고처리와 예산 등의 문제로 인해 계획되던 2차분 12개 동이 모두 취소되고 말았다.
부실공사의 폐해로 인해 급속한 노후화가 진행되면서, 누수나 누전은 기본이요 판자촌을 가리려고 만든 아파트가 10년도 안 되어 흉물처럼 보이는 현상이 발생하거나 난간이 떨어지는 등의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한 데다가 유지보수비도 만만찮게 들어갔던지라 비교적 빠른 1984년 재개발 계획이 등장했고, 1993년 흥인동에 위치한 12개동은 주상복합 아파트를 새로 짓기로 했다. 이후 주민들과의 갈등이 계속 있다가 남측 흥인동 구역 12개동은 2004년 철거, 롯데캐슬 베네치아가 들어섰다. 창신동 구역 12개동은 2005년 7월 19일부터 주거구역만 철거하고 1~2층 상가구역은 그대로 존치시킨 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창신동 구역은 철거 직전인 2004년 12월 연쇄 방화로 인해 몸살을 앓았던 적이 있다. 다행히 방화범은 해를 넘기기 전에 잡혔다.
여담이지만 1~6동과 7~12동 사이는 사이에 동일상가/숭인상가아파트를 두고 몇 블럭 떨어져있다. 3, 7, 11, 12동은 외관을 새로 도색했다.
3. 기타
당시 매우 좋았던 주변환경으로 인해 시민아파트 치고 꽤나 후덜덜했던 집값을 자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독창적인 특징들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회현시민아파트 다음으로 제일 기억에 남는 시민아파트로 꼽히기도 했다.
아직까지 창신동 구역 12개동의 상가가 철거되지 않고 남아있기 때문에 잔존하는 시민아파트라 볼 수 있지만, 주거 기능을 하지 않기에 좀 애매하다.
영화 텔 미 썸딩에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