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웅
向雄
(? ~ 283)
삼국시대 위나라, 서진의 인물. 자는 무백(茂伯). 상소의 아들. 하내 산양 사람.
처음에는 군에 출사해 주부가 되어 태수인 왕경을 섬겼고 260년에 사마소를 죽이려고 모의하다가 왕경이 죽자 상웅은 그를 기리고 통곡했으며, 상웅은 제사에 지내는 소를 운송하면서 먼저 후임 태수[1] 에게 헌정하지 않고 예에 따라 곧장 낙양으로 운송했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더워서 군에서 도성으로 보내는 소가 대부분 더위를 먹어 죽었으며, 주군의 법이 엄정해 상웅은 태수로부터 소환되어 장형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
종회로부터 옥 중에서 부름을 받고 도관종사가 되었으며, 종회가 반란을 일으켜 264년에 죽으면서 종회를 장사지냈다가 사마소가 책망한 것에 대해 의로움을 실천한다는 것으로 대답하자 사마소가 기뻐하면서 연회에서 이야기하면서 보냈다.
여러 차례 승진해 황문시랑이 되었고 이 때 후임 태수였던 예전 상관이 시중을 지냈지만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이를 안 무제가 군신 간의 교제를 회복하기를 명했다. 그러자 상웅은 예전 상관을 찾아가 칙명을 받고 오긴 했지만 군신 간의 도의는 끊어졌으니 어찌하겠냐면서 곧장 떠났다.
무제는 아직도 화해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노해서 물었는데, 상웅은 군자가 사람을 대하는 것에 대해 말하면서 적군의 장수가 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스러운 일인데 어찌 다시 군신 간의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겠냐고 하자 무제는 그의 말을 인정했다.
태시 연간에 점차 승진해 진주자사가 되어 적당, 곡개, 고취와 20만 전을 하사받았으며, 275년에 입조해 어사중승으로 승진하고 시중을 더하면서 정로장군이 되었다. 280년에는 하남윤이 되고 관내후에 봉해졌으며, 사마유를 영지로 보내려 하자 이를 반대하는 진언을 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완고하게 훈계하면서 무제의 마음을 거슬렀고 화병으로 사망했다.
[1] 진서 상웅전에서는 유의(劉毅), 세설신어에서는 유회(劉淮), 세어에는 오분(吳奮)이라고 나오는데, 진서 교감기에 따르면 유회는 유준(劉準)의 잘못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