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종락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의병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서종락은 1873년 3월 16일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서 아버지 서찬성(徐鑽成)과 어머니 함안 조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6년 1월 정용기가 경상북도 영천군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가담하여 남석구(南錫球), 남석인, 임중호(林中虎), 심일지(沈一之) 등과 함께 청송 일대에서 의병을 모으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그해 3월 의병진이 구성될 때 중군장에 임명되었으며, 의병대가 북상하여 신돌석 의병대와 합세하려 할 때 종군했다. 그러나 정용기 의병장이 부친 정환직이 체포되었다는 거짓 소식에 속아 적에게 유인되었다가 체포되자, 의병대는 자연히 해산되었다.
이후 1907년 4월 정용기가 다시 거병했을 때 참여한 그는 여러 전투에 참가했지만 1907년 9월 1일 입암 전투에서 아군이 참담한 패배를 당하는 걸 막지 못했다. 이 전투에서 정용기, 이한구, 손영각, 권규섭 등 주요 간부들이 모두 전사하자, 서주일은 잔여 병력을 수습한 뒤 여러 사람과 함께 정용기의 부친 정환직을 대장으로 추대했다.
그러나 정환직 역시 1907년 11월 일제에게 체포되어 12월 11일 교수형에 처해지자, 서종락은 1908년에 남석구와 더불어 의병대를 재건했다. 그는 의병대의 동쪽을 맡았고, 남석구는 서쪽을 맡았다. 서종락의 의병대에는 최성집(崔成執), 이구옥(李舊玉), 이만파(李萬波) 등이 참여했으며, 각기 50명 내지 150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의성, 청송 안덕(安德), 포항 등지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1908년 말 경주, 영천, 의홍, 청송의 수비대가 연합한 토벌대를 상대로 고와실 전투에서 맞붙었다가 치명적인 손실을 입은 후 더이상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의병대를 해산했다. 이후 그는 고향의 산중에 은거하여 세상과 인연을 끊고 조용히 지내다가 1940년 7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서종락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