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고대죄
1. 개요
'''席藁待罪'''
죄를 지은 죄인이 죄를 자책(自責)하여 거적을 깔고 엎디어 처벌을 기다린다는 뜻.
2. 상세
석고대죄를 할 때는 관과 의복을 벗은 소복 차림으로 거적때기를 깐 바닥에 꿇어앉는다. 당시의 의관은 양반에게는 기본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이런 차림은 요즘으로 치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광화문 한복판에서 싸구려 돗자리를 깔고 팬티와 런닝셔츠만 걸치고 꿇어앉아 있는 꼴'이 되는 정도로 수치스러운 모습이다. 즉, 이 자체가 큰 처벌. 또한 벌을 청하며 '기다리는' 것이므로 벌을 내릴 사람이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눈이 오든 비가 오든 계속 죄를 청하며 며칠 동안 바닥에 앉아있어야 한다.
고대 중국 전국시대 때 제나라의 염파 장군이 인상여에게 회초리를 지고 찾아간 '부경청죄(负荆请罪)'와 같이 석고대죄는 '이러이러한 벌을 내려주십쇼'라고 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제가 이렇게 볼품없는 차림으로 죄를 청하고 있으니 그만 뜻을 거두어 주십시오'의 의미에 가깝다. 실제로 회초리를 지고 인상여의 집을 찾아간 염파장군에게 인상여가 그 회초리로 염파 장군을 때리지(?) 않았다. 다시말해 석고대죄는 자신을 상대에게 한없이 낮추어 상대로 하여금 주장을 꺾게 하거나 반대로 자산의 주장을 관철시키게 하려는 퍼포먼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3. 조선 시대의 석고대죄
관용적인 표현으로 상소문 등에서 신하가 자신이 잘못했음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 "석고대죄할 뿐입니다", "석고대죄하면서 기다립니다" 등으로 쓴다.
사극에서는 은근히 자주 나오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관용표현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석고대죄를 했다'''는 기록은 그리 많지는 않다.[1]
3.1. 실제 사례
4. 현대
사극의 영향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정치권, 언론 등에서 잘못한 사람에게 석고대죄하라고 비판하거나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가 상대방에게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용서를 빈다" 식의 표현을 사용한다. 가끔 실제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과시성 쇼로 여겨져서 별로 좋은 말은 못 듣는다.
5. 여담
일본 창작물에서의 도게자를 번역할 때 비슷하게 엎드려 사죄하는 석고대죄로 종종 의역한다.
[1] 석고대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고위 관료 혹은 왕족들 정도나 할 수 있었다. 또한 조선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정치체제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석고대죄라는 극단적 방법까지 동원할 만큼 어떤 정치적 문제가 크게 확대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