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지오 펠리시에르
1. 개요
키에보의 전설.
이탈리아 국적의 전 축구선수로, AC 키에보베로나에서 20여년간 뛰며 팀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다. 그의 등번호 31번은 2019년 은퇴 뒤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2. 클럽 커리어
아오스타 지역 유소년 팀의 전도유망한 기대주로 주가가 치솟던 그에게 토리노가 구애를 해왔고, 열두살부터 토리노의 유스팀에 합류한다. 1996년 살레르니타나를 상대로 프로 데뷔전을 치렀으며, 1998년에는 세리에 C의 바레세 칼초로 2년간 임대되었다. 그 후 키에보 베로나로 이적했고, 스물한살의 펠리시에르는 그곳에서 자신의 커리어와 함께 키에보의 역사를 써내려간다.
SPAL로의 임대를 거친 뒤 키에보에서의 첫 경기는 2002년 9월의 브레시아 전이었고, 이 경기는 그의 세리에 A 데뷔전이기도 했다. 두 달 뒤에는 파르마를 상대로 데뷔골을 성공시킨다. 이 시즌 현재의 유로파 리그인 UEFA컵에도 출전하여 동유럽 최고 명문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를 상대로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이어진 두 시즌 동안 61경기에서 10골을 기록하며 팀의 붙박이 공격수로 자리잡았고, 2005/06 시즌에는 잠재력을 폭발, 34경기 13골의 기록과 함께 세리에 수위급 스트라이커로 평가받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 해 악명높은 칼치오폴리 사건으로 많은 구단들이 징계를 받았고, 키에보보다 높은 순위에 있던 유벤투스, AC 밀란, SS 라치오, ACF 피오렌티나가 줄줄이 승점 삭감을 때려맞으며 창단 뒤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인 4위에 안착, 우승 트로피를 떠안은 인테르 - 강등을 피해간 메시나와 함께 판결의 최대 수혜자가 된다.
'''그러나 이 행운은 끔찍한 악몽으로 되돌아온다.''' 사실 펠리시에르 개인에게는 36경기 9골의 분전으로 2006/07 시즌 종료 뒤 팀내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는 등 나쁘지 않은 시즌이었으나, 팀에게는 최악의 1년이었다. 호기롭게 나선 챔피언스리그는 플레이오프에서 불가리아 챔피언 레프스키 소피아에 4:2로 털리며 광탈했고, 이어진 UEFA컵에서도 포르투갈의 브라가에게 무릎을 꿇고 다시 한 번 플레이오프에서 패퇴한다.[1] 리그에서도 키에보는 추락을 거듭했고, 시즌 막판까지 강등권에서 허덕이게 된다. 이 시즌 세리에에서는 역대급 강등 전쟁이 펼쳐졌는데, 19위 메시나와 20위 아스콜리의 강등이 확정된 상황에서 마지막 38라운드를 남겨놓고 15위 키에보를 비롯해 11위 칼리아리부터 18위 시에나까지의 승점차가 겨우 2점이었다. 누가 폭탄을 떠안게 될 것인지에 전유럽 축구팬들의 관심이 집중됐고, 시즌 내내 이어지던 강등 전쟁의 백미이자 최대 격전지는 39점의 키에보와 38점의 카타니아가 치르는 단두대 매치였다. 키에보는 이 경기에서 무승부만 거두어도 자력으로 잔류가 가능했으나, 후반전 연속 2실점을 기록하며 패배했고, 같은 시간 승점 38점의 파르마와 시에나는 강등로이드를 발휘해 상위권팀 라치오와 엠폴리를 때려잡으며 18위 폭탄 돌리기에는 키에보가 당☆첨, 승격 5년만의 강등을 맛본다. 애초에 칼치오폴리가 없었다면 유로파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수준의 팀이었던 키에보는 흐름을 타면 괜찮은 성적을 낼 수 있었으나 결코 스쿼드의 깊이는 두터운 편이 아니었고, 분수에 맞지 않는 챔피언스리그 출전과 이어진 실패, 그로 인한 정신적 충격, 늘어난 일정과 피로의 가중, 선수들의 연이은 이적과 부상 등 여러 요인들이 겹치고 쌓여갔으며, 이는 펠리시에르가 혼자서 짊어질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그러나 늘어난 부담에도 불구하고 시즌 내내 정상적인 활약을 보인건 펠리시에르와 수비수 다비데 만델리[2] 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들은 팀이 강등된 뒤 주축 선수들이 차례로 팀을 떠나는 와중에도 키에보에 잔류할 것을 선언하고, 펠리시에르는 새로운 주장으로 선임된다.
2부리그에서 맞이한 07/08 시즌, 펠리시에르는 37경기에서 22골을 터뜨리며 팀내 득점왕에 올랐고, 이는 종전 기록인 라파엘레 체르보네의 20골을 뛰어넘는 키에보 프랜차이즈 역사상 단일시즌 최다득점 기록이 되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키에보 역시 세리에 B 우승을 차지하며 강등 한시즌만의 승격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내었고, 펠리시에르는 다수 매체에 의해 시즌 MVP로 지명되었다. 08/09 시즌에는 리그 전경기에 출장하여 라치오를 상대로 기록한 멀티골과 유벤투스 원정에서 꽂아넣은 해트트릭을 포함해 13골을 기록하고 3년 연속 팀내 최고 선수에 선정되었으며, 09/10시즌과 10/11시즌에도 70경기 22골로 에이스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듬해에도 여전히 팀의 주전 공격수로 중용되었고, 2012년 2월 2일 노바라전에는 키에보에서의 100번째 득점을, 8월 26일 파르마를 상대로는 세리에 A 300경기 출장이라는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2013년 7월, 34세의 펠리시에르는 팀과 2년 재계약을 맺고 잔류했으나 노쇠화를 피해가지 못하며 22경기 1골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한다. 2014년 8월 22일에는 페스카라와의 코파 이탈리아 경기에 선발 출전하며 키에보에서의 400번째 경기를 치렀고, 이 해에는 27경기에 나서 7골을 기록하는 등 반등에 성공, 다시 한번 3년 재계약을 맺고 키에보가 자신의 커리어 마지막 팀이 될 것임을 선언한다. 이후 2016년 11월 6일에는 유벤투스를 상대로 세리에 A 400경기 출전의 대기록을, 한달 뒤 12월 11일에는 팔레르모를 상대로 세리에 A 통산 100골이라는 금자탑을 쌓아올렸으며, 이 시즌 펠리시에르는 리그 30경기 9골의 나이가 무색한 활약을 펼쳤다.
17/18 시즌을 19경기 1골 1도움으로 마친 뒤 1년 재계약에 합의했는데, 결국 18/19 시즌은 그의 커리어 마지막 일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 2018년 9월 26일 제노아전에서 후반 79분 교체 투입되며 키에보에서의 500번째 경기 출전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 경기는 제노아의 홈구장인 스타디오 루이지 페라리스에서 펼쳐졌는데, 그가 교체되어 들어오는 순간 키에보의 원정 팬들 뿐만아니라 제노아의 홈팬들까지 기립박수를 치며 전설의 마지막 발자취를 축복했다.
40세 생일을 조금 넘긴 2019년 5월 10일, 18-19 시즌이 끝난 뒤 은퇴할 것임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 직후 키에보 구단은 펠리시에르의 3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5월 19일 삼프도리아를 상대로 후반 교체투입되며 눈물의 고별전을 치렀고, 양팀의 모든 선수들이 그에게 경례를, 모든 팬들이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5월 25일 프로시노네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풀타임 출장하며 자신의 커리어 마지막 90분을 소화했다. 키에보에서의 통산 기록은 517경기 139골.
3. 국가대표
2009년 6월 북아일랜드와의 친선전에서 지암파올로 파치니를 대신해 교체 투입되어 데뷔전을 가졌고, 투입 11분만에 데뷔골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이후 아주리에게 철저하게 외면받으며 결국 이 경기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국가대표 커리어로 남게 되었다.
4. 우승 기록
- AC 키에보베로나
- 세리에 B : 2007/08
[1] 심지어 5~7위로 올라갔던 팔레르모, 리보르노, 파르마는 모두 플레이오프를 통과했고, 팔레르모를 제외한 두 팀은 호성적으로 조별리그까지 통과한다.[2] 키에보의 또다른 프랜차이즈 스타로, 2004년부터 2012년까지 키에보에서 활약하며 부주장을 역임하는 등, 주장 펠리시에르와 공수의 근간이 되었다. 리버풀의 제라드-캐러거와 흡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