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티안 치미로티치

 

''' 슬로베니아의 前 축구선수 '''
<colbgcolor=#eeeeee> '''이름'''
'''세바스티안 치미로티치
Sebastjan Cimirotič'''
'''K리그 등록명'''
세바스티안
'''생년월일'''
1974년 9월 14일
'''국적'''
[image] 슬로베니아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 조건'''
180cm / 79kg
'''소속 클럽'''
ND 슬로반 류블라나 (1991~1994)
NK 올림피아 류블라나 (1994~1996)
HNK 리예카 (1996~1998)
하포엘 텔아비브(1998~2000)
NK 올림피아 류블랴나 (2000~2001)
US 레체 (2001~2003)
NK 올림피아 류블라나 (2004)
NK 첼례 (2005)
인천 유나이티드 FC (2005~2006)
하이두크 스플리트 (2006 / 임대)
NK 돔잘레 (2006~2007)
NK 올림피아 류블라나 (2007~2011)
FC 류블라나 (2011~2012)
나스펠트 헤르마고 (2013~2014)
FC St. 페이트 (2017)
'''국가대표'''
33경기 6골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유럽 무대 시절
2.3. 유럽 무대 복귀
3. 플레이 스타일
4. 에피소드
5. 관련 문서


1. 개요


슬로베니아 국적의 전 축구 선수로, 현역 시절 스트라이커 포지션을 소화하였다. K리그에서의 등록명은 '''세바스티안.'''

2. 선수 경력



2.1. 유럽 무대 시절


치미로티치는 유고슬라비아 지역의 류블라냐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자신의 고향 근처에 있던 팀인 슬로베니아 1부 리그 소속의 슬로반에서 1991년 프로 선수로 데뷔하였고, 이후 1994년 같은 지역의 팀인 NK 류블라냐로 이적하면서 활약을 이어갔다. 자국 무대에서 어느 정도 활약을 쌓은 치미로티치는 1997년 크로아티아 1부 리그 소속의 HNK 리예카로 이적하면서 첫 해외 진출을 이루었으며, 이 때부터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되었다. 이후 이스라엘 리그의 하포엘 텔아비브로 이적, 이 팀의 주포로 활약하기도 했다. 텔아비브를 나와서 친정 NK 류블라냐로 돌아와서는 한 해동안 '''30경기 19골'''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을 보여주었고, 그 결과 2001-2002 시즌에는 이탈리아 세리에 A 소속의 US 레체에 입단하면서 빅리그에 진출하기도 하였다. 레체에서는 어디까지나 후보 선수 정도에 머물렀지만, 슬로베니아 국가대표팀에서는 그 입자가 더 공고해져 2002년에는 2002 FIFA 월드컵 본선 대표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강호 스페인과 조별예선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하며 메이저 무대에서의 활약으로 인지도를 올린 바 있다. 하지만 소속팀에서는 그다지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2003년에 친정팀인 NK 류블라냐로 세 번째 합류를 달성, 다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5년 들어서는 NK 첼례로 이적, 5경기 3골을 기록하며 순항중이었다.

2.2. 인천 유나이티드 FC


그렇게 활약을 쌓아오던 치미로티치는 2005년 8월 1일, 2년 계약을 체결하며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였다. 당시 인천은 기존 외국인 공격수 라디보예 마니치가 귀화를 선택함으로 외국인 쿼터가 남게 되었고, 그 빈 자리를 활용할 방안을 모색하다가 현역 국가대표 선수이자 2002년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치미로티치를 야심차게 영입하게 된 것이다.[1]
2005년 8월 1일자로 2년 계약으로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였다. 당시 인천은 기존 외국인 공격 자원이었던 라디보예 마니치가 귀화를 선택함으로 외국인 쿼터가 남게 되었고, 그런 이유로 현역 국가대표 선수이자 2002년 월드컵에서 활약을 선보인 바 있는 치미로티치를 야심차게 영입하게 된 것이었다. 한일 월드컵에서 골을 넣었던 그가 입단 초반부터 큰 주목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인천 입단 후 두번째 경기인 포항 스틸러스 원정 경기에서 데뷔골을 성공시켜 이름값을 하는가 싶었으나 이후 한달여 동안 결장하다가 10월 2일 FC 서울전에 출전한 것을 끝으로 다시는 인천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국가대표팀 차출로 슬로베니아로 귀국한 이후로 부상을 호소하면서 인천으로 복귀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인천 소속으로 세경기 교체출전 단 한골에 그친 치미로티치는 인천의 역대급 먹튀에 들기에 손색이 없다.
한일 월드컵에서 골을 넣었던 그가 입단 초반부터 큰 주목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인천 입단 후 자신이 출전한 두번째 경기인 포항 스틸러스 원정 경기에서 데뷔골을 성공시켜 꽤 이른 때에 득점포를 가동하였고 덕분에 이름값을 하는 선수가 되리라 기대됐지만... 이후 한달여 동안 결장하다가 10월 2일 FC 서울전에 출전한 것을 끝으로 다시는 인천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국가대표팀 차출로 슬로베니아로 귀국한 이후로 부상을 호소하면서 인천 복귀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치미로티치는 인천 소속으로는 단 세 경기에 교체출전하여 한 골을 기록했는데, 출장 시간 대비 득점력으로 따지면 몰라도 팀에 끼친 해악을 보았을 때는 인천의 역대급 먹튀 칭호를 받기에 손색이 없는 선수이다.

2.3. 유럽 무대 복귀


무단으로 팀을 이탈한 세바스티안은 이후 크로아티아 하이두크 스플리트로 임대되었지만 이 팀에서도 4경기 1골이라는 다소 저조한 출장 기록을 남겼다. 자국 리그의 NK 돔잘레로 복귀한 이후에는 기량을 어느 정도 되찾았지만 더 이상 국가대표에는 소집되지 못했고, 친정 NK 류블라냐에 다시 복귀하여 활약을 펼치다가 2010년대 들어서는 하부 리그를 떠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3. 플레이 스타일


신체 조건이 괜찮은 선수이고, 스피드와 힘을 적절히 갖추었다는 평. 신체 조건을 기반으로 한 플레이를 즐기는 스트라이커이며, 연계력 등도 준수하다는 평이다. 골 결정력같은 경우에는 치미로티치에게 특출난 장점까지는 아니지만, 한 때 리그 19골을 달성했던 만큼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다.

4. 에피소드


  • 2005년 9월, 인천 소속이던 치미로티치는 슬로베니아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2005년 9월에 독일 월드컵 예선에서 노르웨이를 상대로 골을 성공시켰다. 인천 팬들 입장에서는 악연이기는 하지만, 어찌됐든 치미로티치는 인천 소속으로 국가대표팀 득점을 성공시킨 첫번째 선수이다.

5. 관련 문서



[1] 마니치는 결국 시즌 중도에 국적을 포기하고 이적하게 되면서 후반기 인천의 외국인 선수는 야스민 아기치, 셀미르, 제난 라돈치치에 치미로티치까지 넷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