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B조
1. 개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의 진행상황 중 조별리그 B조를 설명하는 문서.
2. 1경기 : 파라과이 2 vs 2 남아프리카 공화국
B조의 첫 스타트는 파라과이 대 남아공의 경기로 열렸다. 파라과이는 주전 수문장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가 남미 예선에서 브라질 수비수 호베르투 카를루스의 얼굴에 침을 뱉는 비신사적 행위를 저질러 그 징계로 출전 정지를 당해 후보 골키퍼가 대타로 출전하는 페널티를 안았다. 물론 파라과이는 그래도 로케 산타 크루스와 프란시스코 아르세의 릴레이 골로 2 : 0으로 앞서가며 유리하게 풀어가기는 했지만 그 때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혼신을 다한 맹추격이 시작되었고 후반 18분, 테보호 모코에나의 슛이 파라과이 수비수의 몸을 맞고 들어가며 만회골을 터뜨렸다.[1] 그리고 종료 직전 킨톤 포춘의 페널티킥 골로 2 : 2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마치 1994 미국 월드컵 때 한국 VS 스페인의 경기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 만일 칠라베르트가 그 비신사적인 행위를 저지르지 않아 출전 정지 징계를 먹지 않았더라면 경기는 아마 파라과이의 2 : 0 승리로 끝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3. 2경기 : 스페인 3 vs 1 슬로베니아
무적함대 스페인과 월드컵 처녀 출전국 슬로베니아의 맞대결에서 예상대로 스페인이 3 : 1 승리를 거두었다. 슬로베니아도 세바스티안 치미로티치가 월드컵 데뷔골을 넣으며 분전했지만 실력 차이를 극복할 수 없었다. 그런데 팀 전력의 절반을 차지하는 즐라트코 자호비치가 경기 후 스레츠코 카타네치 감독과 대판 싸움을 벌인 후 돌연 귀국하였고 이로 인해 자호비치는 대표팀에서 퇴출되었다. 이는 슬로베니아가 다음 경기인 남아공과의 2차전에서 패배하고 조기 탈락이 확정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스페인은 '''52년만에 월드컵 본선에서 첫경기 승리를 거두었으며, 기존 월드컵 본선 첫경기 승리 기록은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미국을 상대로 3:1로 이긴 건데, 그날은 1950년 6월 25일에 경기가 벌어진 날이다.''' 그러니까 그 이후 스페인은 월드컵 첫 경기에서 한 번도 못이기고 비기거나 지거나 본선진출도 못했거나(...) 라는 의미이다.
4. 3경기 : 스페인 3 vs 1 파라과이
'''초반에 실수를 범했으나 곧 만회한 끝에 지난 월드컵 때의 수모를 완벽히 설욕한 복수극'''
'''푸욜의 이 자책골은 결국 파라과이를 16강에 진출시켜 주게 된다.''' 나중에 파라과이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똑같이 1승 1무 1패에 골득실도 0점이었는데 파라과이는 푸욜의 이 자책골까지 합쳐서 +6-6가 되었다. 그로 인해 +5-5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다득점으로 누르고 16강에 진출했다. 만약, 푸욜이 자책골을 넣지 않았더라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득실차에서 1골 앞서서 파라과이를 제치고 16강에 진출했을 것이다. 한편 스페인은 이 경기에서의 승리로 16강 진출 조기 확정은 물론 지난 프랑스 월드컵 때 조별리그 2차전인 같은 파라과이전에서 무득점 무승부에 그치는 바람에 3차전인 불가리아전에서 압도적인 대승을 거두고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던 수모를 완전히 설욕하는데 성공했다.
5. 4경기 : 남아프리카 공화국 1 vs 0 슬로베니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전반 4분에 터진 시야봉가 놈베테의 결승골을 끝까지 잘 지켜 1 : 0 귀중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월드컵 첫 승이었다. 대회 직전에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 경질되며 조모 소노 감독이 급히 부임해 대회를 치르는 불운을 겪었지만 승점 4점을 얻어 16강 청신호를 켰다. 이 때 남아공의 월드컵 첫 승 소식을 SBS 8 뉴스에서 보도했는데, 당시 앵커인 홍지만 앵커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남아프리킥으로 잘못 얘기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한편, 처녀 출전국 슬로베니아는 이 경기마저 패배하며 결국 2패로 탈락이 확정되었다.[2]
6. 5경기-1 : 남아프리카 공화국 2 vs 3 스페인
스페인이 가장 고전한 경기 중 하나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객관적으로 열세라는 전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스페인을 맞아 당당하게 싸웠으나 결국 2 : 3으로 석패하였다. 그리하여 파라과이와 1승 1무 1패로 승점 4점 동률을 이루었고 골 득실까지 0이었으나 파라과이는 6득점 6실점이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은 5득점 5실점이어서 결국 다득점에서 1골이 밀려 아쉽게 탈락했다. 만일 승점자판기였던 슬로베니아를 상대로 1골을 더 넣어 2 : 0으로 이겼거나 아니면 이 경기에서 1골을 덜 주든 더 넣든 해서 비겼다면 16강에 올라갔을 것인데 이러나 저러나 그 1골이 너무나도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팀들 중 가장 높은 순위인 17위를 기록했다.
7. 5경기-2 : 슬로베니아 1 vs 3 파라과이
'''최고령 감독 VS 최연소 감독'''
'''그리고 여러 최악의 조건을 완벽히 극복하여 일구어낸 대성과의 표본'''
재미있게도 이 두 팀은 이 대회 32개 출전국 가운데 최고령자 감독과 최연소자 감독이 이끄는 팀이다. 1932년 2월 5일 생 체사레 말디니 파라과이 대표팀 감독은 대회 당시 만 70세로 이 대회 출전국들 가운데 최고령자 감독이었으며 1963년 7월 16일 생 스레츠코 카타네치 슬로베니아 대표팀 감독은 대회 당시 만 38세로 이 대회 출전국들 가운데 최연소자 감독이자 유일한 '''30대''' 감독이었다.[3] 특히, 체사레 말디니 감독의 아들인 파올로 말디니는 1968년생이니 카타네치 감독과 겨우 '''5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 셈이다. 그러므로 카타네치 감독에게 말디니 감독은 거의 아버지 뻘이라 할 만하다. 백전노장 체사레 말디니 감독과 패기만만한 30대 스레츠코 카타네치 감독의 맞대결에서 결국 관록의 백전노장 말디니 감독이 3 : 1로 승리를 거두었다. 물론 그 승리를 일구어 내는 과정에서 카를로스 파레데스의 경고 누적으로 인한 퇴장과 그로 인한 수적 열세[4] 그리고 밀렌코 아치모비치의 선제골까지 얻어맞는 악재까지 맞이하기도 하였지만 이러한 악재들을 정말 완벽하게 극복해 낸 것이다.
이로 인해 파라과이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1승 1무 1패(승점 4점), 골 득실 0으로 동률을 이루었으나 6득점 6실점을 기록해 5득점 5실점에 그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다득점에서 1골 앞서 간신히 16강 진출에 성공했고 처녀 출전국 슬로베니아는 결국 3전 전패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8. 평가
보다시피, B조에서는 무적함대 스페인이 가볍게 3승을 쓸어담으며 16강 진출에 성공했고, 반면에 벤피카에서 활약하던 즐라트코 자호비치가 이끌던[5] 슬로베니아는 3패로 승점셔틀이 되며 16강 진출에 실패한 가운데 스페인에 캐관광당하여 불리했던 파라과이는 마지막 슬로베니아전에서 3골을 연달아 몰아넣는 기적적인 활약 덕분에 남아공을 다득점에서 1점차로 겨우 제치고 16강에 올랐다. 이게 상당히 웃기는데 파라과이는 스페인전에서 카를레스 푸욜이 넣어준 자책골 덕분에 16강에 올라갔다. 그러니까 그 자책골이 아니었으면 파라과이는 얄짤없이 조별리그 탈락이었던 것이다. 남아공은 마지막 스페인전에서 상당한 선전을 보여주고도 후반 11분, 라울 곤잘레스에게 결승골을 얻어맞고 2:3 분패,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2010년보다도 16강 진출 가능성이 더 컸던 대회라서 남아공의 아쉬움은 두배로 클 듯.[6] 스페인이 비교적 순항은 했지만, 데포르티보에서 무시무시한 활약을 보여줬고, 라리가 득점왕을 차지한 디에고 트리스탄이 너무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스페인 대표팀의 근심거리로 자리잡게 되었다.[7] 그래도 라울과 모리엔테스가 하드캐리를 했던지라 티는 안 났지만... 참고로, 조별리그에서 스페인은 모두 3골씩을 넣어 승리했다.[8][9]
[1] 경기 직후에는 파라과이 측의 자책골로 기록되었으나 후에 모코에나의 골로 정정되었다.[2] 이는 슬로베니아의 전력 절반 이상의 역할을 하는 즐라트코 자호비치의 부재로 인한 영향도 컸다.[3] 당시 대회에 참가했던 32개국의 현역 선수들 중 최고령자였던 잉글랜드의 데이비드 시먼 키퍼와 동갑이었다.[4] 그러나 슬로베니아의 나스차 체흐도 막판에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5] 다만, 자호비치는 첫 경기 스페인전만 뛴 후 감독과 대판 싸우고 짐싸들고 귀국했다(...). 그 때문이었는지 슬로베니아는 결국 남아공과의 두 번째 경기에서 0:1로 져서 조기 탈락의 쓴맛을 봐야 했다.[6] 차라리 남아공이 한 골을 덜 줬거나 한 골 더 넣어 3:3으로 무재배를 만들기라도 하였더라면 남아공은 16강에 진출할 수가 있었다.[7] 참고로, 트리스탄은 그 이후 다시 부활하지 못했다.[8] 32개의 팀들 중 유일하게 조별리그에서 3골 이상을 기록했다. 대회 우승한 브라질도 1차전 터키에게 2골만 넣었으며 준우승국 독일도 1차전 사우디전에만 8:0으로 대승을 거두고 나머지는 많아야 2골이었다. 3위 터키 역시 조별리그에서 중국전만 3:0으로 승리하고 4위 한국은 아예 3골 이상을 기록한 경기가 없다.[9] 당시 라울과 모리는 레알마드리드에서도 영혼의 투톱이었고, 더불어서 그들의 마지막 전성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