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납치 포르말린 절임사건

 



1. 개요
2. 사건 내용
3. 범인과 후일담

少年誘拐ホルマリン漬け事件

1. 개요


1957년, 실종된 소년이 살해되어 포르말린에 절여진 채로 발견된 사건이다.

2. 사건 내용


1957년 4월 2일 프로레슬러 키요미가와 우메유키의 장남(12세)[1]목욕탕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이틀 후 범인으로부터 '아이를 돌려받고 싶으면 오후 4시까지 츠루가시마역에 115만 엔을 준비해 기다리라는 협박장을 받았다. 경찰에 신고한 뒤 돈을 준비해 역에서 기다렸으나, 결국 납치당한 소년도 범인도 나타나지 않았다.
소년의 동급생으로부터 목욕탕에서 소년과 25세 전후의 남자가 함께 나갔다는 목격 제보를 얻었으나, 특정한 몽타주를 따내진 못한 채 시간만 흘렀다. 일주일이 지나 한 남자가 체포되었는데, 프로바둑기사 하야시 유타로[2]의 장남 하야시 쿠니타로[3](26세)였다. 환자가 수상하다는 정신병원의 제보를 받고 집을 수사한 결과, '''토막 난 후 포르말린에 절여진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바로 납치됐던 소년의 시체로 확인되었다.

3. 범인과 후일담


[image]
체포된 범인의 모습
쿠니타로는 살인 전부터 소년과 아는 사이였고, 평소에도 폭력을 행사하거나 음란한 행위를 하는 등 이미 현행범 체포가 가능한 짓을 하고 있었다. 사건 당일에는 소년을 집으로 초대해 강제로 범하려 했으나 거부했기 때문에 때려 죽였다. 살해 후 시체를 토막 내고, 4개 용기에 포르말린을 부은 뒤 자른 토막을 넣어 보관했다. 정신병원에 입원할 때까지 매일 밤 그것들을 꺼내 바라보았다. 몸값을 요구하는 협박장은 큰 의미 없이 보냈던 거라고 한다.
범인은 일기도 썼는데, '''결국 찾고 있던 이상적인 소년을 발견했다''', '''용기에 들어간 그 아이는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포르말린에 절여진 그 아이는 살아있을 때보다 더 귀엽다''' 등의 정신 나간 내용이 적혀 있었다. 체포된 후 정신감정을 받았지만 책임능력이 인정되어 1958년에 징역 10년형을 판결을 받고 항소하지 않고 복역한 후 1968년 만기 출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1] 당시는 부모가 이혼해 어머니와 함께 살았고, 아버지 키요미가와 우메유키는 프로레슬링 경기 때문에 장기간 해외 체류 중이었다.[2] 한국에서는 별로 유명하지 않아서 듣보잡 기사로 생각할 지 모르겠는데, 혼인보 슈사이의 직계 제자이며, 이 당시 이미 58세로 일본 바둑계의 큰형님 노릇을 하고 있었다. 1983년 사망.[3] 실제 사건에서는 실명이 공개되었으나, 어째서인지 후에 매스컴 등에서 이 사건을 다룰 때는 실명이 비공개로 처리되었다. 현재 일본어 위키백과에도 실명은 언급이 없고, 하야시 유타로의 장남 X 라고 나와있다. 물론 사건당시 성인이라 이미 실명이 공개된 관계로 인터넷 상에서는 실명을 쉽게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