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관음도
1. 고려시대 수월관음도
水月觀音圖. 고려시대 수월관음도는 전세계 약 160점(일본이나 미국, 한국의 개인소장가들이 소장한 작품들까지 포함하면 약 200점정도 되지 않을까 하는 추정도 있다.)정도 남아있는 고려불화 중에서 40점 정도 남아있는 가장 인기있고 많이 남아있는 편인 주제의 회화작품이다. 중국에서 당송 시대 이후 형성된 33변화관음 중 하나인 수월관음의 모습을 도상화한 불화인 수월관음도는 일반적으로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의 연못가 바위 위에 앉아 스승들을 만나서 깨우침을 받기위해 긴 여정을 떠난 선재동자의 방문을 받는 관음보살의 모습을 기본 구성으로 한다. 중국 당말(唐末) 오대(五代) 돈황(敦煌)에서 제작된 수월관음도들이 현존하는 수월관음도 중 가장 이른 작품이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제작된 관세음보살화 대부분이 수월관음도에 속한다.[1]
수월관음이 상징하는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들이 있지만, 관음보살의 자비가 물에 비친 달처럼 멀리 퍼져나가서 중생에게 깨우침을 준다는 해석이 주된 해석이다. 수월관음도가 여러 고려불화 중 가장 인기있는 이유는 장식성이 매우 뛰어난 도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특히나 관음보살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쓰고있는 장식적인 사라(투명하고 얇은 비단) 베일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고려시대에는 매미 날개만큼이나 얇고 투명한 비단을 직조해서 원나라 공주가 탐을냈다는 기록도 있을정도로 직조술이 발달했었다고 한다.
국내에 남아있는 고려시대 수월관음도는 공식적으로 6점이며,이 중 5점이 삼성 리움이나 호림박물관, 아모레퍼시픽 등 사립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국외 매입하여 환수된 케이스다. 최근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윤동한씨의 기증으로 겨우 한 점을 소장하게 되었으나 보존 상태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국내에 수월관음도를 비롯한 고려불화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이유는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고려말의 왜구의 수탈도 있겠지만 조선 전기 일본에 고려의 불교 문화재를 종종 하사했던 조선의 상황을 봤을 때 무조건적으로 약탈의 결과라고 하긴 어렵다. 이외에 일제강점기에 고미술경매를 통해 유출된 경우도 많다.
경매에 수월관음도를 비롯한 고려불화가 출품되면 약 20~40억 정도의 가격에 매매되며, 보존도가 좋은 경우에는 그 이상의 가격에도 입찰된다고 한다. 이렇게 귀한 고려시대의 불화를 삼성미술관 리움에서는 9점 이상 소유하고 있으며, 그 중 고려시대 수월관음도만 2점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과연 삼성미술관 리움의 소장품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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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보물 제926호
관음보살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하여 중생 앞에 나타나 자비를 베푼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보살이다. 가로 53㎝, 세로 86㎝ 크기의 이 수월관음도에는 관음보살이 사는 화려한 정토(淨土)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중앙에 표현한 관음보살은 바위에 왼쪽으로 비스듬히 걸터 앉아 선재동자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관음은 풍만한 얼굴과 섬세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으며, 가는 눈과 작은 입 등에서는 부드러우면서도 근엄한 인상이 풍긴다.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寶冠)을 높이 쓰고, 몸에는 투명하고 부드러운 옷과 화려한 팔찌·목걸이 등을 표현하였다. 등 뒤로는 한 쌍의 푸른 대나무가 보이고 바위 끝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꽃병이 있으며 그 주위를 둥근 광배(光背)가 둘러싸고 있다. 관음의 발 아래에는 붉고 흰 산호초와 연꽃 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 있다.
고려불화는 전 세계에 80여 점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4∼5점만이 전한다. 이 수월관음도는 섬세하고 화려하면서 우아한 종교적인 아름다움과 격식을 지닌 작품으로 고려불화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1.2. 보물 제1286호
관음보살은 여러 모습으로 중생 앞에 나타나 고난에서 안락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로 수월관음도에는 그가 사는 정토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수월관음도는 관음보살이 오른발을 왼쪽무릎에 올린 반가좌 자세로 바위 위에 걸터앉아 선재동자를 굽어보고 있는 모습으로, 『화엄경』의 내용 중 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관음보살의 등 뒤로는 한 쌍의 대나무가 표현되어 있고, 앞쪽으로는 버들가지가 꽂힌 꽃병이 있으며 주위에 금가루로 원형을 그려 놓았다.
윤곽선과 세부 묘사는 붉은색을 주로 사용하였는데, 베일의 바탕과 주름선은 백색으로 그린 다음 금가루에 아교를 섞은 금니로 겹쳐 그렸고 안쪽에는 고려문양의 특징인 연꽃덩쿨무늬를 원안에 넣었다. 입고 있는 치마는 붉은색을 칠하고 백색으로 거북 등껍질 문양을 그린 다음 그 위에 먹선으로 덧그려 문양이 뚜렷하다.
이 그림은 1994년에서 1996년까지 보수작업을 통해 원래의 모습을 거의 되찾은 상태로 색채가 매우 양호하다. 전체적으로 안정되었고 고려 불화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어 수월 관음도의 시대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으며, 섬세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1.3. 보물 제1426호
수월관음도는 비록 조성연대와 작가가 명확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변·퇴색과 수리 및 덧그린 흔적이 엿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 소재의 1323년 작 서구방 필 수월관음도를 위시한 고려시대 14세기 관세음보살도들과 비교해 보면 마치 한 본을 사용하기라도 한 듯 구도와 인물의 형태가 거의 같고, 고려불화의 특징적인 화사한 색채와 세련되고 우아한 선을 구사한 인물 묘사 등 세부묘사에 있어서도 서로 유사한 점이 엿보여 예술성 높은 동일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화면 구성이 충실하며 표현기법 역시 고려불화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 그리고 국내에는 제대로 된 고려시대 수월관음도가 2∼3점에 불과하다는 자료의 희소성, 나아가 이미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두 점의 수월관음도와 비교하여도 질적인 면에서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자료적 가치가 충분하다.
1.4. 보물 제1903호
고려 수월관음도의 도설내용은 『大方廣佛華嚴經』「入法戒品」에 근거하며, 「입법계품」은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53명의 선지식을 찾아 가는 남방순례 중 28번째 관음보살을 방문하여 보살도는 묻는 장면이다. 이 그림은 이러한 경전의 내용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것인데, 그림은 관음보살과 선재동자라는 이야기의 두 주인공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화면의 중심에는 보타락가산 금강암좌에 반가좌 앉은 관음보살을 압도적인 크기로 배치하였고, 우측 하단에는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합장하며 공손히 보살도를 묻는 선재동자를 조그맣게 배치하여 두 주인공 사이의 심오한 공간감을 나타내었다. 이외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프를 이루는 청죽·바위·정병 등 경물의 표현과 배치 등은 고려 후기 수월관음도상의 전형을 보여주며, 존상의 형태와 구도 등에서도 고려 불화답게 빈틈없는 짜임새와 균형감을 보여준다. 선묘 역시 굵고 가는 다양한 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물 흐르듯 유려한 선묘를 보여주고, 화려하고 복잡한 문양을 전신에 걸쳐 시문하였음에도 고귀한 품격을 놓치지 않았으며, 붉은색과 백색, 금색 등 고급스러운 색들이 상호 조화를 이루며 요란하지 않은 세련된 아름다움을 표출하였다. 이 작품은 비록 박락되고 손상된 부위가 후대에 수리되었지만, 고려 후기 수준 높은 불교회화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판단된다.
2. 조선시대 수월관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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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조 시기에 세조의 편을 든 적개공신 함안군(咸安君)의 부인 윤씨가 왕의 지원하에 발원한 왕실불화이다. 조선시대 수월관음도의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현재 일본 후쿠이현 쓰루가시 사이후쿠지(西福寺)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