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린 스위프트
[image]
''''Supermarine Swift''''
1. 제원
[image]
2. 개요
슈퍼마린 스위프트는 슈퍼마린 사에서 1950년대 제작한 영국의 제트 전투기, 요격기이다. 급한 도입 과정과 운용 도중 많은 사고가 일어나 운용 기간은 길지 않다.
3. 개발
슈퍼마린 스위프트의 등장은 처음부터 늦게 나올 예정이 아니였다. 당장 스위프트의 기반이 된 슈퍼마린 어태커만 해도 슈퍼마린 스핏파이어를 개량한 슈퍼마린 스파잇풀을 기반으로 설계된 기체였기 때문에 개발을 더 빨리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클레멘트 애틀리 수상의 노동당 내각이 들어서면서 예산문제때문에 군축을 하면서 항공기 개발에 제동을 걸었다. 그 결과 슈퍼마린 사는 크게 줄어든 개발보조예산때문에[2] 어태커의 개발을 천천히 진행하면서 실기는 못만들지만 일단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설계를 하자는 방향으로 갔다. 그때 마침 영국이 후퇴각을 적용한 제트 전투기를 필요했고 슈퍼마린사가 해당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스위프트가 탄생하게 된다.
스위프트는 다양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가면서 개발된 기체였다. 첫 프로토타입은 슈퍼마린 어태커를 기반으로 후퇴익을 적용한 '''슈퍼마린 510'''이었다.(이하 언급되는 모델은 슈퍼마린 사내에서 개발했던 모델이므로 '타입(type) xxx'로 지칭한다.) 해당 모델은 어태커에 후퇴익만 적용한 상태여서 아직도 테일휠 기어를 장착하고 있었다. 타입 510은 1948년에 처녀비행을 성공해서 영국에서 최초로 후퇴각을 적용한 기체로 함상에서 이착륙하게 된다. 두번째 프로토타입은 꼬리날개에도 후퇴각을 적용한 1950년 3월에 첫 비행을 한 '''타입 528'''이었으며. 그 다음엔 설계를 조금 더 수정한 '''타입 535'''가 1950년 8월에 첫 비행을 했다. 마지막 프로토타입은 '''타입 541'''로, 엔진을 넨(Nene)에서 에이본(Avon)으로 교체했다. 이 때 스위프트라는 이름을 얻었다.
1951년, 노동당 내각이 무너져서 정권이 교체되면서 윈스턴 처칠이 재집권하자 다시 신무기 개발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전쟁때 제2차 세계대전때 등장한 더웬트 I보다 1.5배 이상 출력이 증가한 더웬트 VIII엔진을 장착한 글로스터 미티어 F Mk.8도 MiG-15의 상대할 수 없다는 것으로 판명되어 영국은 후퇴익을 단 전투기를 매우 급하게 보유할려고 했다. 당시 후퇴익 제트 전투기 프로젝트에 참가한 회사는 슈퍼마린사와 호커사였고 영국 정부는 급한 만큼 두 회사에게 일단 후퇴각 전투기를 만들어오라고 했다. 두 회사중 먼저 전투기를 선보인 회사는 슈퍼마린 사였다. 그러자 영국이 시제기에 대해서 자잘하게 검증을 하지 않고 먼저 100대 양산을 준비했다. 그렇게 스위프트는 도입되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너무 급하게 도입한 결과 스위프트는 처음부터 다양한 문제가 속출했다. 먼저 스위프트 '''F.Mk 1'''이 도입되고 바로 같은 달에 영국 공군의 요구사항대로 30mm ADEN 기관포를 4정 장착한 '''F.Mk 2'''를 도입했다. 일단 Mk 1은 엔진문제와 실속문제가 심각했다. 롤스로이스 에이본 엔진은 영국이 최초로 양산한 축류식 터보제트엔진(Axial flow turbojet engine)이었지만 롤스로이스도 낯선 방식의 엔진이었던 축류식 터보제트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해서 엔진 잔고장과 결함이 잦았다. 이점은 슈퍼마린사도, 호커사도 어쩔 수 없었던 문제였지만 영국 정부는 롤스로이스사의 엔진을 너무 신뢰한 나머지 무작정 양산을 해서 항공기에 장착한 탓이었다. 이 문제는 호커사의 경우 에이본 엔진 대신 암스트롱-시들리 사의 사파이어(Sapphire) 엔진을 장착해서 호커 헌터의 3번째 프로토타입를 비행시켰을 정도로 심각했다. 하지만 슈퍼마린사는 정부의 압력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해당 문제를 피할 수가 없었다. 한편 실속 문제는 후퇴각을 도입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문제였으며 이는 설계진들이 여러번 항공기를 날리면서 얻은 데이타를 통해 주익 설계를 개선해서 해결된다. 제일 큰 골치덩어리는 F.Mk 2였다. 영국 공군의 요구사항때문에 주익에도 30mm ADEN 기관포 2정을 장착하면서 주익이 무거워졌고 비행성에 약영향을 주었다. 거기에다가 기관포 사격시에 나오는 포연과 진동이 엔진의 잔고장을 더욱 유발시켰기 때문에 F.Mk 2는 온갖 악평을 들어야만 했다. F.Mk 2를 보고 ''총체적인 난국''(Abysmal Failure)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
스위프트는 초도분이 도입된 이후 영국 정부는 스위프트에 질렸다. 그리고 바로 계획된 생산량을 줄여버렸다. 이후 슈퍼마린사가 요격기로 사용하기 적합하게 애프터버너를 적용하고 안정성을 최대한 개선하는 방향으로 '''F.Mk 3'''와 '''F.Mk 4'''를 선보였지만 영국 공군은 한번 생긴 불신때문에 여전히 도입량이 적었다. 이와중에 애프터버너가 저고도에서 꺼지기도 한다는 문제까지 나타나면서 영국 공군은 스위프트를 더이상 지상에서 운용 할 생각을 버렸다. 이후 정찰기 역할을 할 수 있게 카메라를 장착한 FR.Mk 5가 등장했고 마지막으로 영국군이 운용한 스위프트가 되었다. 최종적으로 스위프트의 생산량은 197대였다. 1955년 슈퍼마린 사는 레이더를 기수에 장착하고 미사일을 운용 할 수 있는 F.Mk 7도 만들었지만 영국 공군은 차라리 훨씬 설계가 안정적이고 30mm 기관포 4정을 장착한 호커 헌터를 사용할 작정이었기 때문에 도입되지 못했다.
초기 설계형(Mk 1~2)은 버드케이지 캐노피와 전형적인 후퇴익을 장착하였지만, 후기형(Mk 3~4)은 위 사진처럼 버블 캐노피가 적용되었으며, 후퇴익 특유의 익단실속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도그투스가 적용되었고, 수직미익도 더 커졌다. Mk 5와 7은 각각 카메라와 레이다를 장착하기 위해 기수가 더 길쭉해졌다. 스위프트는 분명히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했지만, 1955년 정부의 가장 큰 스캔들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스위프트 초기의 문제는 당대 영국 항공사에 대한 전체적인 불신을 야기할 정도였다. 다만 당시 영국 정부가 충분하지 못한 예산으로 단시간에 최고의 전투기를 요구한 것은 어느정도 사실이었으며, 특히 엔진문제는 스위프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호커 헌터조차도 피할 수 없었던 점이었음을 생각하면 대영제국의 쇠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면이었다.
4. 파생형
- 타입 510(Type 510): 스위프트의 기반이 되는 시제안. 슈퍼마린 어태커에 후퇴각을 도입한 것이 전부였다.
- 타입 517(Type 517): 수평미익이 통째로 엘리베이터 역할을 하는 꼬리날개를 장착한 시제안.
- 타입 535(Type 535_: 렌딩기어를 세발자전거식으로 바꾼 시제안
- 스위프트 F.Mk 1(Swift F.Mk 1): 첫 양산기. 30mm ADEN 2정으로 무장했다.
- 스위프트 F.Mk 2(Swift F.Mk 2): 화력을 강화한 버전. 4정의 30mm ADEN으로 무장했는데 스위프트의 양산기중 가장 문제가 많았던 버전이었다.
- 스위프트 F.Mk 3(Swift F.Mk 3): 애프터버너를 사용할 수 있는 엔진을 장착한 버전. 무장은 다시 기관포 2정으로 돌아갔다. 다만 지상에서는 가동이 안된다던가 고고도에서 꺼지는 등 애프터버너와 관련된 엔진 성능에 문제가 많았다.
- 스위프트 F.Mk 4(Swift F.Mk 4): 스위프트의 마지막 전투기 버전. 1953년 9월 26일에 1,187km/h라는 속도를 내는데 성공해서 세상에서 가장 빠른 비행기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해당 기록은 8일만에 미국의 F4D 스카이레이에 의해 깨졌지만, 영국이 마지막으로 최속의 비행기라는 공식기록을 가진 순간이었다.
- 스위프트 FR.Mk 5(Swift FR.Mk 5): 사진정찰기 버전으로 기수를 늘리고 그 안에 카메라 3개를 집어넣었다. 가장 오래동안 운용된 스위프트이다.
5. 기타
- 월드 오브 워플레인에서 스핏파이어트리 10티어 전투기로 등장한다. 다만, 동체는 초기형이 적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