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 보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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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전 축구선수이자 QPR의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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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에 맨체스터에 있는 코이허스트에서 태어나 1967년에 19살의 나이로 고향팀 맨체스터 시티에 입단했으나 당시 코치인 말콤 앨리슨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결국 맨체스터 인근의 팀인 베리로 이적해야 했다. 베리에서 잠깐 뛴 뒤 크루 알렉산드라에서 1년을 뛰면서 뛰어난 득점력을 선보여 상위리그 팀들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칼라일 유나이티드로 옮겨서 최선을 다해 활약하긴 했으나 팀이 부진하자 그를 영입해 준 이안 맥팔레인 감독이 잘리고 앨런 애시먼 감독이 복귀했다. 그는 감독 교체를 좋은 기회로 받아들이며 1년 동안 36경기 13골을 기록한 뒤에 QPR로 이적해 처음으로 1부 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당시 QPR의 감독인 고든 자고 주니어 감독은 보울스의 플레이 스타일이 제리 프랜시스, 테리 베너블스와 잘 어울릴 거라고 확신했다. 마침 로드니 마시가 떠난 것에 대해 실망하던 QPR의 팬들은 등번호 10번에 어울릴 만한 선수를 고대했고, 그 꿈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는 팀에서 7년 동안 활약하며 QPR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 '슈퍼 후프스'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팀의 인기 스타로 급부상했고, 1975/76 시즌에는 최고 성적인 2위까지 이끌기도 했다. 1976/77 시즌 UEFA컵에서 브란 베르겐과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2번이나 선보이는 등의 활약으로 팀을 8강까지 이끌어 유럽 무대에 이름을 날리기도 했으며, 11골로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사실 그의 행실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지만, 보울스는 자신이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테크닉은 이견이 없었고, 그는 동시대 최고의 스타선수 중 하나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1974년 3월에 알프 램지 감독의 부름을 받아 잉글랜드 국대에 선발되어 램지 감독의 마지막 경기인 포르투갈전에서 뛰면서 재능을 나름 발휘했으나 그의 A매치 출전은 단 5경기에 불과했다. 만약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는 더 많은 활약을 보였을 것이다.
1979년에 7년간 몸담은 QPR을 떠난 보울스는 노팅엄 포레스트로 이적하여 1년간 뛰다가 이후 레이튼 오리엔트, 브렌트포드를 거쳐 1984년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러나 은퇴 이후에도 아마추어 팀인 에핑 타운에서 잠깐 뛴 바 있었다.
은퇴 뒤에 1996년에 자서전을 썼고, 그 외에도 로프터스 로드의 VIP 팬들을 위해 구단 홍보대사도 하면서 스카이 스포츠에서도 방송 출연을 하고 축구 논평을 쓰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2015년 6월 20일에 자신이 알츠하이머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QPR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가진 영국의 록그룹 'The Others'는 2005년에 스탠 보울스를 소재로 <Stan Bowles>라는 곡을 만들었다. 이 곡은 영국 인기 차트 순위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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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전 축구선수이자 QPR의 레전드.
2. 커리어
2.1.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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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에 맨체스터에 있는 코이허스트에서 태어나 1967년에 19살의 나이로 고향팀 맨체스터 시티에 입단했으나 당시 코치인 말콤 앨리슨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결국 맨체스터 인근의 팀인 베리로 이적해야 했다. 베리에서 잠깐 뛴 뒤 크루 알렉산드라에서 1년을 뛰면서 뛰어난 득점력을 선보여 상위리그 팀들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칼라일 유나이티드로 옮겨서 최선을 다해 활약하긴 했으나 팀이 부진하자 그를 영입해 준 이안 맥팔레인 감독이 잘리고 앨런 애시먼 감독이 복귀했다. 그는 감독 교체를 좋은 기회로 받아들이며 1년 동안 36경기 13골을 기록한 뒤에 QPR로 이적해 처음으로 1부 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당시 QPR의 감독인 고든 자고 주니어 감독은 보울스의 플레이 스타일이 제리 프랜시스, 테리 베너블스와 잘 어울릴 거라고 확신했다. 마침 로드니 마시가 떠난 것에 대해 실망하던 QPR의 팬들은 등번호 10번에 어울릴 만한 선수를 고대했고, 그 꿈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는 팀에서 7년 동안 활약하며 QPR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 '슈퍼 후프스'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팀의 인기 스타로 급부상했고, 1975/76 시즌에는 최고 성적인 2위까지 이끌기도 했다. 1976/77 시즌 UEFA컵에서 브란 베르겐과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2번이나 선보이는 등의 활약으로 팀을 8강까지 이끌어 유럽 무대에 이름을 날리기도 했으며, 11골로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사실 그의 행실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지만, 보울스는 자신이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테크닉은 이견이 없었고, 그는 동시대 최고의 스타선수 중 하나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1974년 3월에 알프 램지 감독의 부름을 받아 잉글랜드 국대에 선발되어 램지 감독의 마지막 경기인 포르투갈전에서 뛰면서 재능을 나름 발휘했으나 그의 A매치 출전은 단 5경기에 불과했다. 만약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는 더 많은 활약을 보였을 것이다.
1979년에 7년간 몸담은 QPR을 떠난 보울스는 노팅엄 포레스트로 이적하여 1년간 뛰다가 이후 레이튼 오리엔트, 브렌트포드를 거쳐 1984년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러나 은퇴 이후에도 아마추어 팀인 에핑 타운에서 잠깐 뛴 바 있었다.
2.2. 은퇴 이후
은퇴 뒤에 1996년에 자서전을 썼고, 그 외에도 로프터스 로드의 VIP 팬들을 위해 구단 홍보대사도 하면서 스카이 스포츠에서도 방송 출연을 하고 축구 논평을 쓰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2015년 6월 20일에 자신이 알츠하이머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3. 기타
QPR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가진 영국의 록그룹 'The Others'는 2005년에 스탠 보울스를 소재로 <Stan Bowles>라는 곡을 만들었다. 이 곡은 영국 인기 차트 순위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4. 참고 자료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