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네마루급
[1]
1. 제원
- 기준배수량 : 11,989t
- 만재배수량 : 20,459t
- 전장 : 160.5m
- 최대 폭 : 22.8m
- 출력 : 8.600hp
- 속력 : 18.5kt
- 항속력 : 10kt로 10,000해리
- 무장 : 120mm 단장포 2문, 25mm 3연장 대공포 9문, 25mm 연장기총 1기, 25mm 대공포 23기, 폭뢰 투사기 1기
- 탑재기 : 93식 연습기 12기
- 승원 : 600~800명
- 기공 : 1944년 6월 8일
- 진수 : 1944년 12월 17일
- 취역 : 1945년 2월 28일
- 격침 : 1945년 7월 24일
2. 개요
일본 제국 해군의 호위 항공모함 시마네마루(しまね丸).
태평양 전쟁이 한창 진행중인 1943년 일본 육군의 요구로 인해 제작되었으며[2] , 일본 내에서는 원 유조선의 형식을 따 특1TL형으로 분류한다.
3. 함생
3.1. 육군의 요청
시마네마루의 제작은 해군의 자체적 계획이 아닌 육군의 요청으로 인해 이루어졌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인 1943년, 일본군이 점령한 남방 군도로 물자를 수송할때 수송함들이 미국 잠수함의 공격으로 침몰이 잦아지자 육군성에서 상선을 간단히 개조하여 대잠 초계기를 탐재할 수 있는 호위 항공모함을 제작하여 수송선단을 호위한다 라는 제안을 해군에 제출했다. 해군은 물론 육상기의 초계활동이 더 유효하다고 반대했지만 대형 유조선 TL급을 개조하여 제작하게 된다. TL급은 원래 항모로의 개조를 상정하고 설계된 선박으로, 15노트라는, 유조선중에선 비교적 고속의 속도를 자랑했다. 개조된 시마네 마루는 전통식의 비행갑판 아래 격납고를 두었으며 엘리베이터 1기를 설치해 일단은 항모로써의 겉모습은 갖추게 된다.
3.2. 호위 항모? 이거 경항모잖아요
원래 TL형 유조선은 군함으로의 개장을 염두에 둔 전시 표준선으로 여러 형식이 존재했는데 그 중 1형은 시마네마루가 속하는 함형으로 비교적 좋은 기관과 큰 함체를 갖춘 형식이었고 2형은 양산성을 최우선으로 하여 1형보다는 성능이 그에 못 미쳤다. 개장계획은 당연하게도 육군과 해군이 따로 놀게 되었는데, 미드웨이 패전 이후 항모 확충에 고심하던 해군은 '기왕 만드는 거 함대전 전력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만들자'란 생각으로 함대 수반이 가능한 TL1형을 바탕으로, 육군은 그렇게까지 고성능의 배가 필요한 게 아니었으므로 2형을 바탕으로 개장하기로 한다. 하지만 늦은 등장시기와 맞물려 실질적으로 개장을 완수한 건 시마네마루뿐이었다. 그나마 시마네마루도 풀빵처럼 찍혀나온 미국의 호위항모군들 같은 본격적인 호위항모라고 보긴 힘든 과도기적인 함선이었고, 함재기에 로켓 부스터를 달아 어떻게든 '이륙만은' 가능하게 만드는 영국의 CAM쉽(캐터펄트 탑재상선)에 가까운 선박이었다. 어쨌거나 첫 의도는 선단 호위였으므로 일본군도 이들을 실험삼아 호위임무에 투입해보긴 했으나, 마찬가지로 개조형 항모였던 운요가 고속 수송선단에 동행했다가 잠수함 뇌격 굉침크리를 당한 후 '이런 느려터진 배로는 선단호위하면서 어뢰 못피함여'라는 보고를 올리자 해군은 '역시 육군놈 생각하는 게 다 그렇지 뭐'라며 호위항모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으로 돌아서게 된다. 물론 그때 미국은 호위항모를 주 단위로 찍어내며 바다를 제패하고 있던 중이었다(...).
3.3. 이건 뭐 쓰기도 그렇고 버리기도 그렇고
시마네마루가 건조되던 때는 1945년 2월 이미 전세는 기울어진 상황이었다. 일본이 점령한 해상이 남방과 본토로 분할되어버렸고 분할된 해상을 지나 남방에 자원을 보급하는게 어려워져서 할 일 없이 나니아 항구에 정박해둔 채 사용하지 않게 된다.
더욱이 시마네마루는 전투에서 사용하기에도 애매한 함선 성능으로 인해 전투에 투입하기에도 뭐했다. 시마네마루같은 애매한 성능의 항모에 넣을 기름을 다른 함선에 넣으면 더 유용하게 사용 가능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3.4. 최후
1945년 7월 24일 영국 함재기의 공습을 받아 나니아 항구에 정박한 그곳에 착저하게 된다. 착저한 시마네마루는 1948년에 끌어올려져 스크랩 처리를 받게 된다.
4. 관련항목
- 특2TL형 호위항모 야마시오마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