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악 술탄국
1. 개요
시악스리인드라푸라 술탄국(Kesultanan Siak Sri Inderapura, 약칭 시악 술탄국)은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섬 리아우주에 있던 술탄국이다.
2. 역사
압둘 잘릴 라맛 샤 1세(Abdul Jalil Rahmad Syah I, 재위 1725–1746)가 1725년에 시악 지역의 중심지에 시악스리인드라푸라 술탄국을 세웠다. 압둘 잘릴 라맛 샤 1세는 1746년에 사망했고 사후에 마르훔 부안탄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시악 지역에서 부의 원천이 된 주요 교역 품목은 목재, 장뇌, 안식향, 주석, 금 등이었으며, 특히 시악의 풍부한 목재는 널리 수출되어 선박 건조와 시설 건축에 쓰였다. 말레이–수마트라 지역에서 여러 무역 국가의 세력 경쟁이 벌어진 18세기에 창업 군주 압둘 잘릴 라맛 샤 1세는 시악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리아우, 리아우 제도, 빈탄섬 등지에서 활발한 정복 사업을 펼쳐 시악 술탄국의 전성기를 열었다. 이때 시악 술탄국은 말레이 반도의 일부 지역도 정복하고 한동안 영유하였으며, 지역의 유력 세력이었던 조호르 술탄국이 당시까지 독점하던 말라카 해협 교역로들을 잠식하며 수마트라 동해안과 말레이 반도 동해안에서 무역 세력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18세기 전성기에 시악의 영향력은 일시적으로나마 수마트라 서부 미낭카바우 고원 지대까지 미쳤으나, 19세기 초 미낭카바우 지역에서 파드리 전쟁이 진행되며 이는 소멸하였다.
19세기, 영국과 네덜란드 세력이 말레이 반도와 수마트라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 시악의 세력은 이들의 걸림돌이 되었다. 1840년, 영국과 시악 간에 협정이 체결되어 시악의 영향권에 있던 많은 지역이 영국의 보호 하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때부터 시악은 수마트라 동부의 본토에 국한된 세력권을 가진 군소 국가가 되었다. 1858년 2월 1일, 영국의 간섭을 배제하고 수마트라 정복 사업에 박차를 가하던 네덜란드는 시악 술탄을 강요하여 네덜란드와 시악 간 새로운 조약을 체결하였는데, 이때부터 시악 술탄국은 네덜란드의 명실상부한 보호국이 되어 시악은 네덜란드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시악의 새로운 군주는 적법한 계승을 위해 네덜란드의 승인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후 1873년 7월 26일 체결된 네덜란드와 시악의 추가 협정으로 시악의 영토는 더한층 축소되었다.
네덜란드령 동인도 식민 정부는 1873년 시악 지역과 들리 지역을 포괄하는 군(Residentie)을 설치하였다. 이후 시악 지역은 네덜란드령 동인도 산하 간접 통치 지역으로 존속하다가 1945년 11월 마지막 술탄 샤립 카심 2세(Syarif Kasim II, 재위 1915–1946)가 신생 인도네시아 공화국에 합류할 것을 선언하여 곧 소멸하였다. 샤립 카심 2세는 독립 투쟁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였고, 수마트라 동부 인근 스르당(Serdang) 등지의 술탄을 설득하여 인도네시아 공화국에 합류하게 하여 현대에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