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치고산

 

七五三(しちごさん)
1. 개요
2. 상세


1. 개요


3, 5세가 된 남자아이와 3, 7세가 된 여자아이를 그해 11월 15일 가까운 신사에 데리고 가 그때까지 무사히 성장했음을 축하하는 일본의 전통 행사.
시치는 7, 고는 5, 산은 3으로 직역하면 753이다.

2. 상세


일본의 대부분의 연중 행사가 그렇듯이, 이것도 원래는 음력 11월 15일에 열렸다. 음력 11월이면 양력으로는 12~1월 내외라서 농사가 완전히 끝난 뒤였다. 농한기 보름날에 한 해 수확을 고마워하고, 아이의 성장을 축하하는 행사였다. 현대에서는 양력 11월 15일에 열리지만, 11월 주말을 고르는 일도 많다. 홋카이도처럼 추운 곳에서는 10월 중에 행사가 열린다.
한국으로 치면 대한민국의 100일 또는 돌잔치인 셈이다. 근대화 이전에는 어느 국가에서나 영아 사망률이 높았다. 중근세 일본에서도 이는 당연했으므로 七歳までは神のうち라 하여 '(아이의 생명은) 7살까지는 신에게 달린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좀 더 깊게 들어가자면 '7살까지는 우리 아이가 아니라 신의 아이이기 때문에, 7살 이전에 아이가 사망하면 원래 부모인 신에게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신의 아이를 7년 키워줬으니 신께서 보답으로 진짜 자식을 점지해줄 것'이라는 일종의 자기위안이다. 에도 시대에는 7살까지는 어린 아기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환경이었기 때문에 호적에도 쉽게 올리지 않았고, 7살을 넘기면 비로소 가족들과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식으로 받아들였다. 즉, 시치고산은 지금까지 아이가 살아남았음을 신령에게 감사드리고 비로소 가족과 지역의 일원으로 받아들임을 축하하는 행사였던 것이다.
일본횡단보도 교통신호음으로 유명한 에도 시대의 메이저급 동요 도랸세의 가사에서도 이에 관련된 내용이 있다.
다만 위의 신의 아이 드립이 단순히 유아 사망률이 높아서만 나온 것은 아니다. 에도시대의 과도한 세금과 부족한 수입으로 마비키와 같은 영아살해가 흔했는데, 이것도 7세 이하는 신의 아이이니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인식이었다. 어차피 죽을 수도 있고, 키우기도 어려우니까 조금 빨리 죽여도 문제가 안된다고 본 것이다.
대개 시치고산 때는 아이에게 일본 남녀 전통의상기모노를 아이옷으로 작게 만든 것을 입힌다. [1] 특히 여자용 기모노인 후리소데는 아이용이라도 제법 화려하고 귀엽지만 (정식 후리소데 만큼은 아니지만) 가격이 꽤 비싸다. 그래서 요즘은 렌탈로 대여해 입기도 한다. 그리고 가까운 이나 신사로 데리고 가서 참배하거나, 사진관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경우도 많다. 이 돈도 한국의 백일 사진이나 사진 값만큼 꽤 비싼 편이다. 그래도 아이가 있는 집은 대부분 찍고 보통 앞에 아이를 앉히고 부모가 양쪽 뒤에 앉아 찍는다. 이런 사진 자체를 시치고산이라고도 부른다. 시치고산의 아동용 기모노 중 3세 유아용은 조끼를 덧입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그리스도교파들도 시치고산을 교파에 맞게 받아들여 성직자 주도로 아이들을 축복하고 축하하는 행사를 열곤 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그리스도교가 아무래도 압도적 소수라 신사에서 하는 시치고산 행사보다는 단촐할 수밖에 없으므로, 여기에 아쉬움을 느끼고는 그리스도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신사에서 시치고산 행사를 하고 싶다고 느끼는 부모들도 있어 종교적인 고민을 하기도 한다는 듯.
7차 교육과정 중학교 2학년 두산(김) 교과서에도 나온다.

[1] 3세쯤 되는 아이들에겐 히후(被布)라는 조끼 비슷한 옷을 위에 입히는데, 정식 기모노 입기는 좀 어려운 아이들을 배려한 것이라고 한다. 남아들도 입으나 거의 절대다수 여아들이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