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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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킴 주의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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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킴 주의 지도.
सिक्किम
시킴 | Sikkim


국가
인도 공화국
면적
7,096km²
인구
65만명
주도
강톡
언어
네팔어, 시킴어
HDI
0.716 (10위)
1. 개요
2. 민족
3. 역사


1. 개요


Sikkim. 인도 서벵골 주 북부에 위치한 주이며 면적은 7,096㎢, 인구는 60만 7688명(2011년)이다. 주도는 갱톡. 서쪽에는 네팔, 동쪽으로는 부탄, 북쪽은 중국[1]과 접해 있으며, 히말라야 산맥 및 그 산록을 차지하여 기후는 고도에 따라 한대성에서 열대성까지의 다양한 분포를 보인다. 부탄과 같이 식물과 곤충의 종류가 많아 생물의 보고라고 불린다.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산인 칸첸중가산이 위치해있다.
인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지역으로 2016년 출산율이 1.2였다.
시킴은 티베트불교에서 언급되는 약속의 땅인데, 탄트라 불교의 고승 파드마삼바바는 시킴을 숨겨진 보석, 과일과 꽃의 땅이라고 일컫으며 훗날 티벳지역에서 불교가 쇠퇴하고 이곳에서 다시 번창하리라고 예언했었다.

2. 민족


원주민은 티베트미얀마계인 시킴 제민족(레프차인, 부티아인 등)이지만, 영국 보호령 시절 네팔인이 엄청나게 유입되는 바람에 네팔계 민족들이 60%를 차지해 버렸고, 인도에 병합되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2] 언어 측면에서는 62%의 주민이 네팔어를 사용해 사실상 공통어이며, 시킴어, 레프차어는 특정 지역에서 사용된다. 종교는 힌두교가 약 58%, 불교 약 28%, 크리스트교 약 10%이다.

3. 역사



1642년에 부티아인의 남걀 왕조가 시킴 왕국을 세웠는데, 티베트 불교를 믿는 독립된 왕국이었다. 왕의 호칭은 초걀(Chogyal)이었으며 티베트 불교의 달마를 겸했다. 작고 힘없는 나라라 1700년 이후 네팔, 부탄에게 연이어 침략을 받고 수도까지 털리는 동네북 신세였다. 1791년 청나라가 네팔의 침입으로부터 시킴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였는데 이후 시킴은 청나라의 지배 하에 들어간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던 시기, 시킴은 영국과 연합하여 네팔과 싸우는데 네팔은 구르카를 주축으로 시킴을 공격하여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한다. 이에 영국이 1814년 네팔로 반격하여 1817년 시킴을 반환받는다. 하지만 이후 영국과의 동맹은 약화되어 1849년 영국인의 억류를 계기로 영국군은 시킴을 정벌하고 1853년 이후 사실상의 영국 보호령으로 전락하고 만다.
1950년 인도의 보호령이 되었으나, 1974년 총선거에서 친인도계 "시킴 국민의회"[3]가 승리, 신헌법의 제정을 서둘렀으나 국왕이 반대하면서 1975년 3월 5일 국민의회는 인도에 합병을 요구했고, 9일 인도군이 진주해 왕궁 수비대의 무장을 해제, 왕을 감금했다. 다음날 국민의회는 인도 수상 인디라 간디의 지지로 일방적으로 왕정 폐지, 인도에 합병 결의를 했으며 14일 국민투표에서 97.6%의 지지를 얻었다. 결국 1975년 5월 16일 인도에 의해서 22번째 주로 합병되었고, 그때까지 존재하던 왕정은 폐지되었다.[4]
사실 소국이나 찍어누르는 강제합병으로 볼 수도 있었던 것이었으나 이미 네팔계들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해버렸고, 언제 중국과 인도에 사이에 끼어 불안한 상황에서 친인도파들이 중국보다는 차라리 인도가 낫다는 명분 하에 인도군을 끌어들여 합병하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반발도 있었지만 결국은 소수 의견에 묻혔다.
시킴 북쪽에 인접한 중국은 한동안 인도의 시킴 병합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중국 지도 중에서는 시킴이 독립국으로 표시된 지도도 있다.# 더불어 국경이 폐쇄되기도 하였으나, 2003년 시킴을 중국이 인도의 영토로 사실상 인정한 이후 2006년 국경이 재개방되었다. 이는 중-인 국경에서 유일하게 개방된 통로이다.
현재 시킴은 인도의 한 주로 정착했으나, 입국을 위해서는 따로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는 특이한 지역이다.

[1] 티베트 자치구.[2] 옆나라 부탄도 네팔계 힌두교도들이 1/5 가까이 차지했었는데, 이런 사태를 두려워해 각종 견제 정책을 쓰고 있다. 1990년에는 이런 네팔계들이 차별에 시위를 벌이자 강력하게 대응하여 상당수를 그냥 인도로 추방해버렸다. 강력한 친인도 정책을 취하는 부탄이라 인도는 공식적으로 힌두교인을 너무 과하게 괴롭히지 말라고 말로만 했을 뿐, 직접적인 제재라든지 반발을 보이지 않았다. 상당수 줄어든 힌두교인들은 지금도 여러 차별을 받으며 살아간다.[3] 당 이름이 인도의 정당인 인도 국민의회를 본뜬것.[4] 이때 시킴의 마지막 왕의 왕비가 미국인이었는데 나라가 망하고 국왕 부부 사이도 금이 갔다가 1980년에 이혼했다. 그리고 그 왕비는 다시 한 번 재혼했다가 이혼한 뒤 현재까지 미국에서 그대로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