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첸중가
[image]
다즐링[1] 에서 바라본 칸첸중가 산괴 파노라마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clearfix]
1. 개요
네팔과 인도의 국경에 위치한,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분을 이루는 산이다. 해발고도 8,586미터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기도 하다. 또한 인도의 최고봉이다.
칸첸중가는 다음과 같이 주봉 하나와 네 개의 위성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 칸첸중가 주봉 (8,586미터)
- 칸첸중가 서봉 (얄룽캉, 8,505미터)
- 칸첸중가 남봉 (8,494미터)
- 칸첸중가 중봉 (8,482미터)
- 캄바첸 (7,903미터)
1852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었으나, 영국 측량대의 관측에 의해 에베레스트 산이 발견된 뒤 순위가 밀려났다.
2. 등정 역사
칸첸중가는 동서방향와 남북방향으로 산마루(ridge)가 형성되어 십자가 또는 (+)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image]
칸첸중가는 등정하기 까다로운 산으로 정평이 나있다.아래 사진은 차례로 동벽, 남벽, 북벽인데 보다시피 동벽과 남벽은 거의 수직절벽이다.
[image]
[image]
[image]
희한하게도 1899년에 첫 등반 시도가 있었던 뒤로 계속 여러 원정대가 도전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중도에 되돌아가는 일이 잦았다. 이런저런 루트로 등정을 시도했으나 대원의 사망, 영 좋지 않은 날씨, 네팔과 인도 측의 압박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등반이 계속 좌절되었다.
마침내 1955년 5월 25일에 영국의 조지 밴드와 조 브라운이 등정에 성공한다. 등정 기간은 4월 18일부터 캠프에 돌아온 5월 28일까지.
대한민국에서는 부산 대륙산악회의 칸첸중가 원정대가 대원 1명을 잃으면서도 등정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지만, 사진이 없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이후 1999년 박영석 대장의 등정을 한국 내 초등으로 인정하고 있다.
아래 영상은 구글어스 3D로 구성한 동벽(East Face) 등정영상이다.
아래 영상은 구글어스 3D로 구성한 남벽(South Face) 등정영상이다.
3. 기타
대한민국의 여성 산악인 오은선이 2010년 안나푸르나를 등정하면서 히말라야 8,000미터급 14좌를 완등한 세계 최초의 여성 14좌 완등 산악인이 되는 듯 했다. 그러나 2009년 칸첸중가를 무산소로 등정했다는 주장에 대해, 정상을 너무 빨리 올랐다는 점, 정상 사진이 부족하다는 점,[9] 완등했다면서도 정상까지 오르려면 꼭 거쳐야하는 포인트들의 지리를 전혀 모른다는 점 등의 의혹이 제기되었다. SBS에서도 2010년 8월 21일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의혹을 제기한 바가 있다. 한국산악회는 등정 성공, 대한산악연맹에서는 최종적으로 칸첸중가 등반에 실패했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다.
오은선 본인은 이런 의혹을 강력히 부정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1] 다즐링 홍차로 유명한 그 다즐링 맞다.[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3]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4] 최상의 자연 현상이나 뛰어난 자연미와 미학적 중요성을 지닌 지역을 포함할 것[5] 과학이나 보존 관점에서 볼 때 보편적 가치가 탁월하고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을 포함한 생물학적 다양성의 현장 보존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의미가 큰 자연 서식지를 포괄[6] 와일리식 표기법에 의한 표기로, 글자를 그대로 옮긴 것으로 발음과 차이가 있다. 발음에 따른 표기의 경우 중국령 티베트에서 쓰는 티베트어 병음으로는 Kangqênzöng'a(캉첸죙아)라고 쓴다. 19세기 이 지역을 방문한 서양인들은 이 산의 이름을 처음에는 Kanchinjínga라고 적었다가, 이후 19세기 말부터 현재의 표기인 Kangchenjunga가 정착되었다.[7] 안나푸르나, K2 다음이다! 역대 등정 횟수도 안나푸르나 다음으로 적다.[8] 장비가 발달하고 등반로가 개척되어도 오히려 사망률이 증가했다! 위험성에서 K2에 가려있지만 이곳도 다섯이 올라가면 한명은 못 내려오는 무시무시한 산이다.[9] 완등했다고 주장하며 증거로 든 사진은 정작 꼭대기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 배경이 뒤에 찍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