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갑

 


<colbgcolor=#878787><colcolor=#ffffff> '''성명'''
신기갑(申基甲)
'''이명'''
신언갑(申彦甲)
'''생몰'''
? ~ ?
'''출생지'''
평안북도 의주군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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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평안북도 의주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출생년도는 알 수 없다. 그는 1919년 김승만(金承萬)·오순근(吳淳根)·김두만(金斗萬)·오능조·이영식(李英植)·박춘근·김시점(金時漸)·오학수·장재순(張裁淳)·오동진(吳東振)·최지화(崔志化)·백일진(白日鎭)·주석환(朱錫煥)·서용섭(徐龍燮)·홍성익 등과 함께 안동현임시의사회를 조직하고 그 중심 인물로서 활약하였다.
1920년 1월 12일부터 1921년 9월 21일까지는 상해임시정부의 국내 조직이 연통제하에서 평안북도 독판부(督辦府) 경무사장(警務司長)의 직책을 맡았으며, 동년 9월 21일에는 김시점(金時漸)의 뒤를 이어 내무사장(內務司長)이 되었다. 그리고 재만독립운동단체들이 통합하여 조직한 광복군참리부에 참여하여 법무사장으로서 재만동포의 법적지위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1922년에는 평북 독판부 대표로서 대한광복군총영, 대한정의군영, 대한광복단군영, 한교회, 대한독립단, 서로군정서의 대표들과 협의하여 통의부(統義府)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이에 참가하여 학무부장으로서 부원인 남정도(南廷都)·이세준(李世俊)·곽상하(郭尙夏) 등과 함께 재만 한인의 민족의식고취에 노력하였다. 이후 통의부가 유림파와 청년파로 분열되었다가 다시 통합되어 환인현 마권자에서 간부를 재임명 했을 때, 그는 교통부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신기갑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