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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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신기철(申琦澈)
'''아호'''
송산(松山)
'''본관'''
평산 신씨[1]
'''생몰'''
1922년 1월 24일 ~ 2003년 6월 23일
'''출생지'''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용산리
'''학력'''
춘천고등보통학교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다. 상록회를 주도했으며, 신옥철신영철이 그의 친형이다.

2. 생애


1922년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용산리 출신으로 춘천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인 1938년 2월 항일비밀결사인 상록회에 가입하였고, 상록회의 임원개편으로 동년 9월 상록회장 겸 서적계의 일을 맡아 활동하였다.
그는 재학 당시 맏형인 신옥철과 셋째 형인 신영철로부터 민족주의 사상을 주입받아 항일독립의식이 투철하였다. 또한 졸업생 회원들과도 긴밀한 연락을 맺고 있었는데 친형인 신영철 등 여러 졸업생 선배들과 우두산·봉의산 등지에서 비밀리 모임을 갖고 토론, 강좌를 통하여 항일의식을 함양하였다.
그런데 1938년 가을 상록회 조직이 일경에게 탄로되자 연루자 모두가 체포됐고 1년여 동안 모진 고문을 당했다. 1939년 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이후 사전 편찬의 중요성에 눈을 떠 평생 사전 편찬에 힘썼다. 광복 후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으나 사전 편찬에 전념하기 위해 얼마 안 있어 그만두었다.
59년에 '표준국어사전'(을유문화사)을 처음 펴냈고, 75년엔 '새 우리말 큰 사전'(삼성출판사)을 친동생 신용철과 함께 펴냈다. 국가 기관이 아닌 개인이 이같은 사전을 펴낸 일은 일석 이희승 선생의 업적에나 견줄 만한 사례로 평가 받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75년 이후 민족 문화를 집대성하는 사전 편찬을 목표로 세웠다. 20여년간 자료를 수집하고 집필한 결과 '한국문화대백과사전'(전10권, 2백자 원고지 12만장 분량)도 출간됐다.
그러나 '한국문화대백과사전' 출간을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서점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꼬박 이틀간 북한 관련 자료를 조사하기 위해 서서 책을 보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사망에 이르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엔 대통령 표창을, 1990년엔 건국훈장 애족장을 정부에서 수여했다.

[1] 34세손 '''철(澈)''' 식(湜) 순(淳) 영(泳)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