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협

 


1. 문예 운동
1.1. 개요
1.2. 상세
1.3. 특징
2. 세대론적 명칭
2.1. 개요
2.2. 특징
2.2.2. 신무협
3. 관련 항목


1. 문예 운동



1.1. 개요


과거의 한국 무협소설에서 변화를 추구하였던 90년대 한국의 무협 소설의 흐름을 지칭하는 말.

1.2. 상세


80년대 무협 스타일에서 탈피하려 노력한 무협 작품들을 일컫는다. 80년대에 흥성하던 무협 장르는 90년대에 접어들자 이미 쇠퇴하여 많은 작가들이 창작 생활을 접거나 만화 스토리 작가로 전직한 상황이었다. 검궁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무협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무협작가들이 고료도 하락해서 한달에 한질을 쓰던 자신 정도가 마지막까지 버틴 사례라고 한다. 문제는 이게 가능한 것은 검궁인과 서효원 정도였다는 것이고, 나중에는 고료가 더 떨어져서 한 달에 2질씩 써야 되는 상황이 왔다는 것. 여기서 한 질이라는 것은 일반적 소설책 3권 분량으로 스토리 하나가 완결되는 기준인데, 이걸 한달에 2질을 썼다는 것은 아무리 정형화된 책이라고 해도 한 달에 6권을 쓴다는 이야기다. 차명에 대명으로 공장 돌리지 않는 이상 이걸 유지하는 사람이 나올 수가 없다.[1]
그 상황하에서 대본소 시장이 아닌 서점 시장을 노리기 위해 소장 가치가 있는 작품을 쓰기 위한 문예 운동이 바로 신무협이었다. 가장 처음에는 서효원의 형 서희원이 세운 서울창작에서 서효원의 유작들을 서점용 책으로 출판하기 시작한 것이었고, 이것을 본 야설록이 도서출판 뫼를 세우면서 자신과 금강의 과거 책을 재판했다. 여기까지는 1980년대 무협소설 황금기의 책들을 서점용으로 재간한 것이었는데, 후자에 속하는 도서출판 뫼에 소속되어 있었던 흔히 '뫼 사단'이라 불리우는 일군의 창작 집단[2]이 신작을 찍어내면서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초에 대해서는 의견이 조금씩 갈리지만, 일반적으로 용대운태극문이 시작이고, 좌백대도오가 등장하면서 확실하게 진입한 것으로 본다. 유명한 신무협 작가는 좌백, 진산, 용대운, 풍종호 등이다.
하지만 이런 작품성 추구는 작품 집필기간이 이전 작가들에 비해 한참 길어지는 결과와 재미 부족으로 인한 독자들의 외면을 초래했고, 계속해서 신인 작가가 등장하면서도 이들 중 안정적으로 계속 작품이 나오는 작가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인 상황을 만들었으며, 결국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 신무협은 새로이 나타난 3세대 무협인 판협지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1.3. 특징


일반적인 특징으로는 기존 무협과 달리 주인공이 별 특징이 없거나 볼품없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악역의 목표도 반드시 무림 통일이 아닌 경우가 많다. 또한 기존 무협에 등장한 조연은 단순한 캐릭터와 그 캐릭터에 맞는 전형적인 역할만을 맡았지만, 조연들도 입체적으로 묘사하게 되었다. 기존 무협에서 금기시하거나 주목하지 않았던 소재에 눈을 돌리기도 했고, 인물간 관계도 훨씬 복잡다양하게 변했다. 소수의 작품은 순문학적 색채가 짙기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흐름도 오래지 않아 독자의 외면을 받게 된다. 애당초 신무협의 탄생 자체가 기존 무협에 대한 안티테제 성향이 짙었기 때문에, 계속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끝내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한마디로 80년대 무협들이 재미에만 치중한 나머지 장르 문학으로서 최소한의 문학성마저 등한시했다면, 신무협은 반대로 문학성에 치중한 나머지 소설의 기본인 재미를 등한시한 것이며, 결국 이러한 문제점은 2000년대에 이르러 신무협이 판협지에게 무협소설의 주류 자리를 내주는 원인이 된다. 훗날 좌백은 신무협 작가들의 이런 실책을 솔직히 인정하고, 재미와 문학성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천마군림을 집필했다.
문단문학과 무협문학은 여전히 서로 백안시하는 관계지만, 당시 소설가 조해일과 평론가 성민엽은 좌백의 작품에 추천사와 평론을 써주며 무협이 나름대로 고유한 성취를 이뤄냈다는 것을 인정해주었다.

2. 세대론적 명칭



2.1. 개요


90년대 이후 등장한 2세대 무협을 일컫는 말.
90년대 뫼 사단의 운동으로 말미암아 신무협이란 용어가 보급되며 당시 난립하던 출판사 사이에서 마케팅 용어로 신무협이란 용어가 남발되게 된다.[3] 대본소 이후 새로운 출판 경향인 대여점이 활발해지며 통신 연재작, 인터넷 연재작이 출판될 때 신세대적인 감각을 갖추고 쓴 글이란 점을 어필하기 위했던 것. 뫼 사단의 신무협 운동을 모르는 대다수의 독자들은 이 마케팅 용어를 수용하여 90년대 이후 등장한 무협을 일컫는, 세대론적인 용어로 받아들였다. 이에 대비되는 용어로는 80년대 이전 작품을 일컫는 구무협이란 말이 등장했다.
판협지 역시 표지에 신무협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최광의의 의미로 볼 때는 판협지까지 신무협으로 보기도 한다.

2.2. 특징



2.2.1. 구무협


한국에서 무협소설이 출간되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후반, 당시 시작된 무협소설붐과 80년대 크게 유행한 김용 무협소설 등의 영향으로 무협소설은 대중문학의 한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 70년대 후반에 창작되기 시작한 한국작가의 무협소설은 갑작스럽게 성장한 시장의 탓인지 표절과 대필, 짜깁기로 인한 수준 이하의 작품들을 대량 생산하면서 쇠퇴의 길을 걷는다.
한자가 과용된다. 성애씬이 많이 등장한다.

2.2.2. 신무협


한자가 비교적 쓰이지 않는다. 성애씬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중국 무협의 영향에서 탈피했다.(중국 무협계의 소식이 아예 끊겼다.) 가볍고 코믹한 작품도 많아졌다. 판타지 소설과의 연결고리도 많다. 애초에 양자 모두가 PC통신 시절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PC통신에서는 판타지 소설과 무협소설이 같은 구덩이에서 굴렀다. 이른바 '환무동'이다. 이 때문에 해당시기에 무협과 판타지는 같은 정서를 공유했으며, 한국 판타지의 역사에서는 무협을 빼놓고 언급할 수가 없는 수준이 되었다.

3. 관련 항목


[1] 그런데 이런 사람이 있다. 바로 백상. 좌백에게 진짜로 한 달에 2질을 썼다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원고 완성도는 처참한 수준.[2] 용대운은 태극문을 집필한 이후에 원고를 들고 뫼를 찾아가서 출판한 것이었고, 용대운이 편집실장이 되면서 이런 성향이 분명해진다. 뒤에 언급된 대표적인 작가인 용대운, 좌백, 진산, 풍종호 외에도 운중행, 정진인, 하성민, 장경, 석송, 냉죽생, 몽강호, 무악, 설봉, 한수오 등이 이 시기의 구성원이다.[3] 이에 대해선 다른 증언도 있다. 세대론적 명칭이 외부에서 먼저 등장하여 사용되자 뫼 사단에서 이 용어를 전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