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록
1. 개요
1960년 2월 25일에 대구에서 출생. 무협지 작가 겸 만화 등의 스토리 작가. 본명은 최재봉. 금강, 사마달, 서효원과 함께 80년대 한국무협 4대 작가로 불렸다.
연세대 응용통계학과(제적) 출신의 엄친아이기도 하다. 1980년 운동권에서 활동하다 신군부에 의해 '반정부 운동권'으로 낙인찍혀 제적, 이후 군입대. 야설록이라는 필명은 바로 군 생활중에 지은 것이다. 1982년 데뷔하여 처녀작인 강호야우백팔뇌(江湖夜雨百八惱), 다음 작인 강호묵검혈풍영(江湖墨劍血風影)에서 대박을 쳤다. 당시로서는 참신했던 무협지 주인공이 죽는 배드 엔딩을 구현함으로써 독특한 무협관을 선보였다. 이어 강호벽송월인색(江湖碧松月人色)까지 세 작품이 잇달아 히트를 치면서 인기 작가의 지위를 굳힌다. 제목에 '강호'가 들어가는 강호 시리즈, 1984년작인 녹수옥풍향(綠樹玉風香)을 비롯한 '녹수' 시리즈, '야객' 등 '객' 시리즈가 유명하다. 야설록 개인이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도 녹수옥풍향이라고. 그밖에 표향옥상(飄香玉霜), 북경야(北京夜), 구대문파(九大門派) 등을 대표작으로 꼽는다.
수려한 문체와 강렬한 캐릭터, 감수성을 자극하는 전개로 큰 인기를 얻었다. 꿈도 희망도 없는 암울한 상황에서 주인공이 맹렬히 '''파멸'''로 치닫는 전개는 당시 시대상황과 맞물려 독자에게 크게 어필했다.
1987년부터는 황재와 함께 작업한 '구대문파의 영웅들'을 필두로 만화 스토리 작가로도 발을 넓혔다.이후 '''이현세'''와 '아마게돈', '카론의 새벽', '남벌' 등을 작업했으며 박원빈과 '제2의 킬러', '제10야드', 이상세[1] 와 '달을 쏘는 사냥꾼', '아리랑', 김현과 '미로사냥', 황성과 '혈견휴혈련환'을 작업하여 2천여권의 만화스토리를 집필했다. 그와 호흡을 맞춘 만화가들은 대부분 (성인)극화체 계열의 만화가들이다.
1994년부터 삽화 소설 '대란'을 일간스포츠에 연재했고 남녀첩보원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용의 '동풍', 임진왜란때 한중일 삼국 무사들의 불꽃튀는 전쟁을 그린 '나비혼'을 연재하여 일반문학과 역사문학으로도 경계를 넓혔다. 스포츠서울에는 조승우, 수애가 주연한 명성황후 스토리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1995년엔 '야설록프로'를 설립하여 문하생들과 함께 직접 만화를 그렸다. 초기 '도지산검지림(이후 대왕의 도로 개칭), 오도칠검, 천상천하유아독존은 지금까지도 야설록무협의 백미로 꼽힌다.
야설록의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필력은 다양하다. 그는 무협, SF, 추리, 역사, 하드보일드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었으며, 무협소설, 만화, 역사소설, 영화 시나리오, 드라마 대본까지 전천후의 필력을 선보이고 있다. 순수 이야기꾼의 재능으로서는 한국 대중문화계에 독보적인 존재라 할만하다.
1995년 한국만화스토리작가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1998년부터 2003년까지 명지대학교 문화컨텐츠학과 객원교수로 출강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예당온라인에서 게임 MMORPG '패온라인'을 만들었다.
2. 논란
야설록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논란거리는 표절과 대명이다. 대표적으로 고룡 작품의 절대쌍교를 표방한 '강호벽송월인색'을 들 수 있다. 허나 작품을 뜯어보면 절대쌍교의 십대악인 캐릭터를 빌려와서 전혀 다른 얘기를 썼다는 점에서 엄밀히 말하면 재구성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작품도 개인의 작풍이 뚜렷한 만큼 오히려 특징을 모방하기 쉽기 때문에, 몇몇 작품은 진위여부-야설록 본인의 진본이냐 대명 작가의 카피본이냐-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것은 사실 작가의 문제라기보다는 당시의 출판 풍토에 기인했다고 봐야 한다. 1980년대의 무협출판사들은 화교가 번역하던 졸렬한 무협지들을 '와룡생', '진청운' 이름으로 출판하고 있었고 그후에 두각을 나타낸 한국 작가들, 사마달, 금강, 서효원, 야설록 등의 이름을 신인들의 작품에다 붙여 출판을 했기 때문이다.
만화계 또한 화실에서 오랫동안 공헌한 멤버에게 작가 본인의 이름을 같이 달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유행중이었는데(예를 들어 이현세 글 이상세 그림하는 식으로), 일종의 그 제도를 본받은 것이기도 했다. 당시 출판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던 신인들에겐 데뷔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으나 아쉽게도 공저자의 이름이 함께 기록되지 못함으로써 후에 대명으로 낙인찍히게 된 것이다. 저작권 제도가 확립되어 있지 않던 당시로선 여러 장점도 있긴 했으나 결국 무협계의 오점이 되고 말았다.
만화계로 넘어왔을 때 야설록의 필력은 독보적이었다. 당시 인터뷰에서 야설록은 작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은 '오직 재미'라고 했다. 만화계에서 보여준 야설록의 재미와 독창성은 수많은 문제작들을 만들어냈다. 이현세의 남벌(만화)과 아마게돈(만화), 이상세의 아리랑, 박원빈의 제2의킬러 등은 단순히 만화의 경계를 넘어 사회적 이슈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무협계에서의 표절 시비는 시스템상의 문제였지, 작가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실제로도 야설록 무협의 후반기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사우옥풍향, 표향옥상, 대협객은 감성무협의 최고봉으로 꼽히기도 한다.
3. 대본소 무협만화
야설록의 이름을 단 대본소 무협만화 역시 꾸준히 나오고 있다. 대본소 무협만화 시장에서 그동안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던 황성의 인기가 2014년 이후로 주춤해진 것과 맞물려 그 경쟁자로서 상대적으로 인기가 더욱 높아진 감도 있다. 2015년 현재 대본소 무협만화 시장에서 선두권의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허나 80년대 초반 일만 개에 달하던 전국 대본소가 500개 전후로 줄어들면서 사실상 대본소 만화는 이제 큰 의미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대본소에서 만화를 보던 세대는 현재의 40대 이후이고, 젊은 세대는 온라인으로 모두 옮겨갔다. 앞으로의 대본소 만화 또한 온라인 시대를 대비한 체질개선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조잡한 그림체를 바꾸고 공장 시스템으로 대량 생산되는 만화생산을 지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미스터블루와 손을 잡고 '건곤일월'이라는 올칼라물을 온라인상으로 연재중이다.
4. 작품
- 무쌍난무
- 도검난무
- 천하무림협의연맹
- 마검지로
- 일인표국
- 혈해비정록
- 파천황
- 황금련야차왕
- 혈풍화야고검향
- 천군
- 십전루
- 쇄심당십삼로
- 반마파천황
- 대자객문
- 대악마
- 귀천
- 오도쟁패
- 낭인무적
- 천의문
- 절대사신
- 녹림지존
- 태황기
- 격산호
- 독보강호
- 삼인무적
- 첩혈광견
- 혈룡지천하
- 고검마도혈로행
- 탄금농월
- 살인고사
- 녹림활협
- 고독도
- 철혈풍운
- 천외천
- 흑도천종
- 무인신화
- 삼황오제
- 천마이세
- 천살검
- 황금산장
- 혼세혈전
- 복수무적
- 소림영웅문
- 대왕의 도
- 무당마제
- 사황
- 천룡대형
- 강호독보행
- 불사검존
- 표객
- 참회영주
- 쌍면제왕
- 구룡쟁투
- 대도독행
- 묘광자
- 건곤일월
- 마검패검
- 강호취중행
- 강호취보행
- 염라
- 괴(연재중)
5. 기타
90년대 후반 (주)야컴이라는 상표로 만화출판업에 나섰다. 당시 봇물터진듯 밀려오던 일본만화에 대항한다는 뜻으로 '815코믹스'란 이름을 붙여 만화 뒷표지에 김구 선생이나 안중근 선생의 초상화를 넣기도 했다. 이때 철저하게 한국작가 만화로만 승부를 했다. 많은 문하생들이 자작의 기회를 얻었고 초기의 반응 또한 좋았으나 결국 일본만화의 다양성과 물량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결과를 떠나 해방 이후 모든 출판계열사들이 일본만화를 수입하기 위해 줄을 서고, 또 실제로 수많은 일본만화를 들여와 국내 만화시장을 질식시킬 때 유일하게 일본만화와 정면승부를 했던 시도이기도 했다.
(주)야컴은 이후 도서출판 뫼라는 상표로 용대운, 설봉, 좌백, 진산, 장경, 풍종호 등의 작가를 발굴하여 '신무협'의 시대를 열었다. 책의 판형도 구무협과는 완전히 다른 신국판에 고급 종이를 써서 당시 도서대여점의 확산과 더불어 무협출판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1997년엔 국내 최초의 공포를 주제로 한 순정만화잡지 '아디'를 발간했고, 성인이 볼 수 있는 만화를 표방한 새로운 판형의 '도시정벌'을 발표하여 만화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도시정벌은 한국만화사상 최다작 시리즈물의 기록을 남겼다.
(주)야컴은 한정된 만화작가 자원의 개발과 산학협력을 통한 인력구조개선의 일환으로 (재)사이버문화예술대학을 설립하고 2000년 사이버대학 공모에도 뛰어들었다. 총 13개 대학연합이 참여한 사이버대학 공모에 결국 실패했지만 이문열, 김종학 등을 교수진으로 영입하는 등 온라인 문화예술강좌에 새로운 지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2006년부터 개발 중인 패 온라인의 개발에 매진하였다. 2010년 2월에 테스트를 거쳐 4월쯤에 출시될 예정이라고 했으나, 5월 20일에 서비스가 시작되었다가 1주일만에 중단되었다. 인터뷰 참조 처음엔 과감한 결정에 환영하는 게이머들도 많았으나 추가 투자가 유치되지 않아 시기가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1] 본업은 타블로이드인 일요시사에 신문만화를 연재하고 있는것으로 여겨진다. 수년째 같은 신문에 신문만화를 연재하는거보면 사실상 일요시사 전속 만화가라고 봐도 좋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