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류

 

Nueva Mayoría
칠레의 중도좌파 정당연합.
1. 역사
2. 정권 창출, 그러나...


1. 역사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야권이 콘세르타시온(이하 협력체)를 조직했고, 이를 바탕으로 단일 후보인 파트리시오 아일윈이 1989년 대선에서 여권연합 단일후보인 에르난 뷔히를 누르고 압도적으로 당선되면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이러한 인기에 힘업어 2009년까지 문제 없이 정권을 유지했으나, 서서히 한계까 드러나면서 2010년 세바스티안 피녜라에게 정권을 넘겨주었다. 이에 기존의 정당연합으로 차기 정권 창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2013년 지금의 신주류로 개편했다.

2. 정권 창출, 그러나...


2013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사회당 소속의 미첼 바첼레트 전 대통령을 신주류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고, 집권연정의 에벨린 마테이와 맞붙게 되었는데 특이한 점은 둘 다 여성이었는데다가 유년 시절 사이좋게 지내던 친구였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었다. 중남미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대한민국에서도 어느 정도 화제가 되었을 정도. 바첼레트의 인기가 엄청 높았는데다가 보수우파 성향의 집권연정에 대한 민심 이반의 영향을 받아, 1차 투표에서 46.7%를 득표했으며 2차 투표에서 62.2%를 득표해 4년 만에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하지만 바첼레트 정권 2기는 1기와는 달리 심각한 문제를 안기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계파 갈등이었다. 대게 중도 ~ 좌파 정도를 포괄하던 협력체 시절과는 달리 이번에는 공산당까지 포괄하면서 중도 ~ 극좌로 스펙트럼이 넓게 확대되었는데 겉보기에는 지지기반 확장에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역으로 내부 분란을 심화시켰다.
이 때문인지 2기는 1기처럼 높은 인기를 유지하지 못했다. 물론 바첼레트 측근의 스캔들도 한 몫을 했지만, 이를 제대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문제는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장 내부 분란에 직면하면서 각종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고, 거기다가 정부 정책과 신주류 소속 장관들 간의 마찰이 심해지면서 몇몇이 낙마하는 문제까지 생겼다.
결국 민심 이반을 초래했고, 이어 베아트리스 산체스 등을 위시로 한 광역전선 등이 범여권 개편을 목적으로 창당되면서 가망은 없다고 봐도 무관하기에 이르렀다. 설상 협력체 시절부터 정권을 잡던 양대 정당인 기독교민주당과 사회당 간의 반목까지 겹쳐져 2017년 대선은 아예 단일 후보까지 내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거기다가 기민당이 연대 탈퇴를 선언하면서 분열은 가시화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문제의 주역인 정당인으로서는 도저히 안 된다는 주장까지 나왔고 이 때문에 연합 소속이나 정당인은 아닌 알레한드로 기이에르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기민당은 카롤리나 고이치를 선출했고.
이미 예상이 되었는지 기이에르는 본선에서 2위를 기록했다. 다만 당초 여론조사보다는 다소 높게 나왔는데 애초에 여론조사 때는 좌파 표심이 일부 기권했던 것도 한 몫을 했다. 거기다가 출마한 좌파들의 득표율을 다 합치면 과반이었으며, 결선 때는 각계의 좌파 정당들이 기이에르 지지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단일대오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고 분탕질만 했고, 결국 1차 투표때 크게 데인 우파 지지층이 결집하는데 반해 좌파지지층들의 결집이 실패하여 피녜라가 과반득표를 하면서 정권연장은 꿈 깨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