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라트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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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건국
2.1. 멸망
3. 그 뒤에
4. 마하바드 공화국


1. 개요


영어: Republic of Ararat
쿠르드어: Komara Agiriyê
터키어: Ağrı Cumhuriyeti
1927년부터 1930년까지 터키 동북부 아라라트 산 일대 지역에 존재했던 쿠르드족의 독립국가이자 중동의 단명국가. 수도는 오늘날 터키 동부 아으르(Ağrı)[1]도 도우베야즈트(Doğubeyazıt)군 치프틀릭쾨이(Çiftlikköy)에 해당하는 쿠르다바(Kurdava)이다.

2. 건국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터키 공화국 정부는 오스만 제국 시기동안 통제하지 못했던 지방에 지방관을 파견하고 행정, 교육, 사법, 군사적 영향권을 확보하고자 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시기 이 지역의 쿠르드 부족들은 세금만 제대로 납부하는 조건하에 행정권도, 사법권도, 군권도 전부 부족장이 장악하여 사실상 반독립상태에 있었고, 신생 공화국 정부의 중앙집권화 정책이 자신들의 이권을 침해한다고 여겨 불만이 높아지고 있었다. 1924년 디야르바크르에서 벌어진 셰이흐 사이트(Şeyh Sait)의 난과 같은 복벽주의 혹은 반세속주의적 반란이 계속되고 있었고, 후술할 이흐산 누리 파샤도 그러한 인물들중 하나였다.
1927년 10월 28일, 쿠르드계 젤랄리(Celalî) 부족 출신인 이흐산 누리 파샤(Îhsan Nûrî Paşa, 1893년 ~ 1976년)와 비로예 헤스키 텔리(Biroyê Heskî Têlî[2], ? ~ 1931년)를 비롯한 인물들이 아라라트산 근처에 세웠던 나라이다. 비로예 헤스키 텔리는 젤랄리 부족과 헤세난(Hesenan)·헤이데란(Heyderan) 하위부족들을 통합하여 반공화국 운동을 주도했고 1926년 5월, 아라라트 산 부근에서 터키군을 물리치면서 쿠르드족 자치구를 편성하였다. 이후 오스만 제국군 출신이던 이흐산 누리가 주도하는 쿠르드 독립국가 결의안을 받아들이면서 비로예 헤스키 텔리가 초대 대통령, 이흐산 누리가 초대 국방장관 및 사령관이 되었다.

2.1. 멸망


하지만 터키군을 일시적으로 막아냈지만, 이를 가만히 보고 있을 아타튀르크가 아니었다. 아타튀르크는 우선 반란 및 폭동으로 규정한 아라라트 공화국 해산을 경고했지만 당연히 아라라트 공화국 인사들은 거부했고 결국 터키군과 총력을 다해 싸워야 했다. 1928,1929년 터키군의 연이은 공세에 아라라트 신생공화국군은 극심한 고전을 겪어야 했고 국제적으로 지원을 부탁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국방장관 이흐산 누리는 프랑스 및 영국, 소련, 독일 등 여러 강대국에 지원을 부탁하며 전세계를 돌아다녔고 국제연맹에게까지 평화협상 중재를 호소해봤지만 결국 모두 터키 내부에서 일어난 내전으로 일관하며 개입을 거부했다. 국제사회에서조차 버림 받았던 이들은 그저 산을 배경으로 벌이던 보병전에 의존해야 했지만 1930년에는 터키군이 공군까지 동원하여 대대적인 진압 작전을 펼치면서 이마저도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국가 내부에서는 쿠르드인들뿐만 아니라 아르메니아인들도 다수 존재했는데 이들은 쿠르드족 지배층들의 통치에 반대해 자국 내부에서 내전과 소요사태들을 일으키면서 아라라트 공화국은 내부에서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1930년 9월 17일, 터키군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아라라트 공화국은 겨우 3년만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결국 다시 터키에 흡수되었다.

3. 그 뒤에


비로예 헤스키 텔리는 아우인 에흐메드(Ehmed)와 어머니 텔리 하님(Têlî Xanim)을 터키군의 학살로 잃고, 남은 식구와 추종자들을 데리고 이웃 이란으로 달아났지만 결국 이란에서도 이란군과 전투 와중에 사살당하고 만다.
이흐산 누리는 테헤란으로 망명하여 쿠르드족 독립을 위하여 노력했으나 끝내 결실을 보지못하고 1976년 암살당했으며 정부 수립을 주도하던 대부분의 인사는 해외에서 암살 및 병사, 아니면 이 당시 터키 현지에서 사살당하는 비극으로 막을 내리고 만다.
터키에선 아라라트 반란으로 이야기하며 멸망 이후 해당 국가에 대한 기록물들을 죄다 없애거나 비공개로 돌린 탓에 이 나라에 대한 상세한 기록 여부가 별로 없거나 드물다. 물론 작고 힘없던 나라였던 점도 있었지만 건국 당시 터키 동부 지역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아인과의 민족 갈등같은 내부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오래가기에는 무리였다.[3] 게다가 지리학적으로 주변에 도와줄만한 나라조차 없는 고립된 형국이었던 점도 아라라트 공화국의 멸망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4. 마하바드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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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ublic of Mahabad
여담으로 이란에서도 소련의 지원으로 쿠르드족의 사회주의 국가인 마하바드 공화국이 1946년 세워졌다. 마하바드 공화국 문서 참조.

[1] 쿠르드어로는 Agiri(아기리)이며 사건 당시에는 이 지역을 카라쾨세(Karaköse)라고 부르고 있었다.[2] 비로(비로예는 에저페가 붙은 굴절 형태.)는 비라힘(Birahîm)의 축약형 이름이다. 비르호(Birho)로 표기하기도 한다. 헤스키 텔리는 성씨가 아니라 부친과 모친의 이름을 덧붙인 것이다.[3] 물론 당시 아라라트 공화국의 쿠르드족 권력층들이 아르메니아인들을 아예 적대하거나 배척한 것만 한 것도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쿠르드계 주민은 세금을 내도,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은 세금을 안 내도 되는 면세 혜택을 내건다던지, 의회 내각에 아르메니아인 출신 의원들의 의석도 배정한다던지 이들을 자국민의 일원으로 만들려고 여러 유화책들을 제시했다. 실제로 아르메니아인들도 오스만 제국 시기 터키에게 학살당하던 피해자의 처지였던지 터키 정부에게 적대적인 몆몆 아르메니아인들은 쿠르드 주축의 아라라트 공화국 정부를 지지하며 터키와 싸우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