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라트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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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에서 본 아라라트 산. 가운데가 대 아라라트, 왼쪽이 소 아라라트
터키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이란 및 아제르바이잔 국경에서 16km, 아르메니아 국경에서 32km 떨어져 있는 국경지대에 위치한 활화산이다. 마지막 분화는 1840년에 있었다.
높이는 해발 5,137m. 두 개의 봉우리인 대 아라라트(터키어 Büyük Ağrı Dağı)와 소 아라라트(3,896m: 터키어 Küçük Ağrı Dağ)가 있다. 1829년 프리드리히 파로트(Friedrich Parrot)와 하차투르 아보비안(Խաչատուր Աբովյան)이 처음 이 산의 정상에 올랐다고 알려져 있다.
고대 히타이트와 겨루던 미탄니가 결국 히타이트에게 멸망한 후 그 구성원이던 후르리 인들이 정착한 곳이 이 산 근처이다. 그들은 반 이라는 도시를 수도로 삼아 번영하였는데, 경쟁국이던 아시리아 인들에게 '''우라르투'''라고 불렀다. 그 명칭이 아라라트 라는 지명의 근원이 되었다고 추측된다.
기독교의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 끝에 표류하다가 도착한 곳이 여기라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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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터키 영토이지만 아르메니아에서는 한국의 백두산처럼 민족의 성지로 여기고 있는 산이다. 아르메니아 신화에서는 신들의 집으로 나온다. 그러나 현재는 터키 영토라 그저 착잡하게 바라봐야 한다. 터키와 아르메니아는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문제로 사이가 나쁘다.
아라라트 산에서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은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다. 예레반에서 아라라트 산이 뚜렷하게 보일 정도.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당시 터키가 비상령 내려서 아라라트 산 근처에 군장비를 배치하여 아르메니아에서도 무척 긴장했다.
아르메니아와 우방인 러시아가 소련 시절, 로잔 조약(1923)으로 1878년 소련의 전신인 러시아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게서 빼앗은 카르스, 아르다한 일대를 돌려주면서 아라라트 산을 터키 영토로 공식 인정하였다. 아라라트 산 일대는 러시아 제정 붕괴 이후 생겨난 신생국인 아르메니아 제1공화국의 영토로 아르메니아는 터키 독립전쟁으로 터키가 혼란에 빠진 사이 고대 아르메니아 왕국 시절의 영토를 탈환하려 터키 침공을 감행했다가 역으로 공격받은 후 터키가 점령하고 있던 상태였다. 당시 소련의 지도자였던 이오시프 스탈린은 아르메니아 민족주의를 견제하려고 터키에게 아라라트 산 일대를 넘겼다. 이 일대의 점유를 인정받은 조건으로 터키는 나머지 아르메니아 영토에 대한 소련의 영유권을 인정한다. 당시 소련과 터키는 국제사회에서 소외된 국가들이라는 동병상련이 있어 우호적 관계였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소련이 터키 견제용으로 카르스와 반을 비롯한 터키 동부 지역 땅을 내놓으라고 했지만 터키에선 "어디 덤벼봐라" 라고 총력전을 다할 분위기였고 이에 미국과 나토 국가들의 지원이 이어질 터라서 소련이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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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인들이 이 산에 대해 가지는 애착은 대단해서, 국장에 여길 집어넣은 건 물론, 수도 예레반 남쪽에 아라라트라는 이름의 행정구역도[1] 있고, 현지 유명 와인 및 맥주 상품에도 아라라트라는 이름을 단 맥주 및 와인이 있다. 소련 시절에 터키에서 아라라트 산을 아르메니아 공화국의 국장에서 빼라고 소련 측에 요구하자, 크렘린에서는 이렇게 대응했다.[2]
1998년에서야 관광이 공식적으로 허용되었다. 그 동안 터키군이 주둔해서 외부인 출입을 금지했는데 그 이유는 현지 쿠르드인 저항군과 갈등 및 아르메니아와 국경대치 때문이었다. 반으로 가는 터키항공 비행기를 타고 가서 육로로 가야하는 데 버스가 없기에 택시를 타야 한다. 교통이 불편해서 돈 펑펑 쓰지 않으면 택시기사들은 잘 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거주민도 거의 없는 터라 늑대 같은 맹수가 나올 수도 있기에 치안도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한다.
이 근처를 걸어서 여행하던 프랑스인 여행자가 천막치고 밤을 지내다가 군인들에게 걸려 내쫓긴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여행자가 민가도 없고 숙박업소도 없고 늦은 밤에 어찌 지내냐고 하소연하니 터키군이 막사 마당을 내줘서 거기서 하룻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외국인이라 그런지 무척 친절하게 대하고 물도 마음껏 쓰게 하고 같이 식사도 해줬다고 하지만 터키군들은 여긴 볼 것도 없거니와 국경이라 분위기도 안 좋고 치안도 안 좋으니 다음에는 오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고 한다.
방문이 가능한 지금도 교통이 불편하다.
물론 아르메니아 쪽에서는 직접 관광이 불가능하다. 다만 수도 예레반이 산과 가깝기 때문에 아르메니아 쪽에서도 바라볼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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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에서 본 아라라트 산. 가운데가 대 아라라트, 왼쪽이 소 아라라트
- 영어: Mount Ararat
- 터키어: Ağrı Dağı
- 아르메니아어: Մասիս (Masis), Արարատ (Ararat)
- 쿠르드어: Çiyayê Agirî
- 페르시아어: کوه آرارات
1. 개요
터키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이란 및 아제르바이잔 국경에서 16km, 아르메니아 국경에서 32km 떨어져 있는 국경지대에 위치한 활화산이다. 마지막 분화는 1840년에 있었다.
높이는 해발 5,137m. 두 개의 봉우리인 대 아라라트(터키어 Büyük Ağrı Dağı)와 소 아라라트(3,896m: 터키어 Küçük Ağrı Dağ)가 있다. 1829년 프리드리히 파로트(Friedrich Parrot)와 하차투르 아보비안(Խաչատուր Աբովյան)이 처음 이 산의 정상에 올랐다고 알려져 있다.
고대 히타이트와 겨루던 미탄니가 결국 히타이트에게 멸망한 후 그 구성원이던 후르리 인들이 정착한 곳이 이 산 근처이다. 그들은 반 이라는 도시를 수도로 삼아 번영하였는데, 경쟁국이던 아시리아 인들에게 '''우라르투'''라고 불렀다. 그 명칭이 아라라트 라는 지명의 근원이 되었다고 추측된다.
기독교의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 끝에 표류하다가 도착한 곳이 여기라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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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산을 둘러싼 터키와 아르메니아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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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터키 영토이지만 아르메니아에서는 한국의 백두산처럼 민족의 성지로 여기고 있는 산이다. 아르메니아 신화에서는 신들의 집으로 나온다. 그러나 현재는 터키 영토라 그저 착잡하게 바라봐야 한다. 터키와 아르메니아는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문제로 사이가 나쁘다.
아라라트 산에서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은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다. 예레반에서 아라라트 산이 뚜렷하게 보일 정도.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당시 터키가 비상령 내려서 아라라트 산 근처에 군장비를 배치하여 아르메니아에서도 무척 긴장했다.
아르메니아와 우방인 러시아가 소련 시절, 로잔 조약(1923)으로 1878년 소련의 전신인 러시아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게서 빼앗은 카르스, 아르다한 일대를 돌려주면서 아라라트 산을 터키 영토로 공식 인정하였다. 아라라트 산 일대는 러시아 제정 붕괴 이후 생겨난 신생국인 아르메니아 제1공화국의 영토로 아르메니아는 터키 독립전쟁으로 터키가 혼란에 빠진 사이 고대 아르메니아 왕국 시절의 영토를 탈환하려 터키 침공을 감행했다가 역으로 공격받은 후 터키가 점령하고 있던 상태였다. 당시 소련의 지도자였던 이오시프 스탈린은 아르메니아 민족주의를 견제하려고 터키에게 아라라트 산 일대를 넘겼다. 이 일대의 점유를 인정받은 조건으로 터키는 나머지 아르메니아 영토에 대한 소련의 영유권을 인정한다. 당시 소련과 터키는 국제사회에서 소외된 국가들이라는 동병상련이 있어 우호적 관계였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소련이 터키 견제용으로 카르스와 반을 비롯한 터키 동부 지역 땅을 내놓으라고 했지만 터키에선 "어디 덤벼봐라" 라고 총력전을 다할 분위기였고 이에 미국과 나토 국가들의 지원이 이어질 터라서 소련이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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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인들이 이 산에 대해 가지는 애착은 대단해서, 국장에 여길 집어넣은 건 물론, 수도 예레반 남쪽에 아라라트라는 이름의 행정구역도[1] 있고, 현지 유명 와인 및 맥주 상품에도 아라라트라는 이름을 단 맥주 및 와인이 있다. 소련 시절에 터키에서 아라라트 산을 아르메니아 공화국의 국장에서 빼라고 소련 측에 요구하자, 크렘린에서는 이렇게 대응했다.[2]
쿠르드족도 이 곳을 성지로 여긴다. 부근에는 쿠르드족이 많이 살고 있으며, 아라라트 공화국이란 나라를 1927년에 이 곳에 세웠다가 터키에 가혹하게 탄압당한 일도 있다. 이 아라라트 공화국 국기에도 이 산이 들어가 있다. 이 때문에 이 산의 소유권을 두고 쿠르드족도 터키 못지않게 아르메니아를 적대한다.
3. 관광
1998년에서야 관광이 공식적으로 허용되었다. 그 동안 터키군이 주둔해서 외부인 출입을 금지했는데 그 이유는 현지 쿠르드인 저항군과 갈등 및 아르메니아와 국경대치 때문이었다. 반으로 가는 터키항공 비행기를 타고 가서 육로로 가야하는 데 버스가 없기에 택시를 타야 한다. 교통이 불편해서 돈 펑펑 쓰지 않으면 택시기사들은 잘 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거주민도 거의 없는 터라 늑대 같은 맹수가 나올 수도 있기에 치안도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한다.
이 근처를 걸어서 여행하던 프랑스인 여행자가 천막치고 밤을 지내다가 군인들에게 걸려 내쫓긴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여행자가 민가도 없고 숙박업소도 없고 늦은 밤에 어찌 지내냐고 하소연하니 터키군이 막사 마당을 내줘서 거기서 하룻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외국인이라 그런지 무척 친절하게 대하고 물도 마음껏 쓰게 하고 같이 식사도 해줬다고 하지만 터키군들은 여긴 볼 것도 없거니와 국경이라 분위기도 안 좋고 치안도 안 좋으니 다음에는 오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고 한다.
방문이 가능한 지금도 교통이 불편하다.
물론 아르메니아 쪽에서는 직접 관광이 불가능하다. 다만 수도 예레반이 산과 가깝기 때문에 아르메니아 쪽에서도 바라볼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