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 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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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부터 러벨,앤더스, 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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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폴로 계획의 8번째 미션.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지구 궤도를 벗어나 달 궤도에 갔다 온 미션이다.
2. 불가능에 도전하다
아폴로 8호는 아폴로 11호 이전의 가장 괄목할 만한 미션 이었다. 이제까지 지구궤도 선회 정도만 성공한 상태에서, 아폴로 8호는 지구를 벗어나 달로의 비행, 달궤도 진입, 달궤도 이탈, 지구로의 귀환이라는 인류가 해보지 못한 과제를 동시에 수행해야 했다. 몇 번의 미션으로 쪼개서 단계적으로 진행할 과정들을 모아 한 큐에 해야했고, 매우 위험성이 크고 거의 도박에 가까운 미션이었다.
원래 아폴로 8호 계획은 달 착륙선을 탑재하여 시험 비행을 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사실 달 착륙선 이전에 새턴 V 로켓의 유인비행 테스트부터 시행하는게 올바른 단계였다. 로켓은 한 번도 유인비행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 하지만 시간은 촉박했다.새턴 V 로켓은 신뢰성을 어느 정도 검증받은 상태였기에 유인발사 테스트 과정은 스킵되었고 연구진들은 과감히 다음 단계를 진행시켰다.
하지만 정작 착륙선 개발이 지연됨에 따라 원래 계획은 아폴로 9호로 미루어지게 되었고, 아폴로 8호는 무언가 새로운 미션으로 대체되어야만 했다.
한편 아폴로 7호 성공 후 소련도 존드와 소유즈를 잇달아 성공시키며 미국을 위협하고 있었다.[4]
자칫 아폴로 8호 계획 자체가 목적없이 붕 떠버릴 수도 있었기에, 폰 브라운은 사람을 태운 아폴로 8호를 '''아예 새턴 V에 우주인 3명이 탄 사령선만 실어서 쏘아 달까지 보내 달 선회 비행을 시킨 후 지구로 귀환시키자'''는 제안을 했다. 당시 이 제안은 무척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제까지 인류는 지구궤도를 벗어나본 적조차 없었다. 달 선회 비행이라는 아폴로 8호 계획 자체의 무모함을 차치하더라도 아폴로 8호에 투입될 새턴 V 로켓은 이제 막 개발된 것으로 사람을 탑승시킨 유인우주비행은 한 번도 테스트해 본 적이 없었다. 아폴로 8호가 발사되기 6개월 전에 BBC 기자가 이 내용을 특종으로 보도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내용이라 오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아폴로 8호 미션은 졸지에 '''새턴 V의 성능 테스트[5] + 사령선 성능 테스트[6] '''를 한 미션에 때려넣은 나사 초유의 빅 이벤트로 변하고 만다.
당시 폰 브라운은 NASA의 기술력과, 무엇보다도 자신이 직접 개발한 새턴 V 로켓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었다. 또 그는 아폴로 8호가 성공한다면 소련 과학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어 그들의 개발 열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브라운은 회의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아폴로 8호 계획을 밀어붙였다. 결국 11월 중순 NASA 전문가 회의에서 17명 가운데 16명의 압도적인 찬성을 얻게 되어 계획이 추진되었다.
아폴로 8호 미션은 준비도 부족한 가운데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결행한 도박행위지만,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1968년 12월 21일에 발사된 아폴로 8호는 3일만에 성공적으로 달 궤도에 진입했던 것이다. 물론 이 사이에 프랭크 보먼이 구토를 하며 NASA 관계자들이 단체로 감기 걸렸던 아폴로 7호를 떠올리며 충공깽에 빠지기도 했지만, 어쨌든 시국이 시국인지라 미션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달 착륙선도 없이 감행한 상태에서 사고가 났거나[7] 사령선이 예상외로 약해 달 궤도를 탈출하지 못했다면 우주비행사들은 모두 죽었겠지만 이들은 모두 살아서 돌아왔다. 탑승한 우주비행사는 프랭크 보먼(사령관), 짐 러블(사령선 조종사), 윌리엄 앤더스(달착륙선 조종사)로, 이 중 짐 러블은 아폴로 13호 사령관이 된다.
소련은 이번에도 아폴로 8호 발사일보다 12일 앞선 1968년 12월 9일 유사한 달로의 비행을 계획했으나, N-1 로켓의 불안정성과 소유즈 1호 추락 등의 여파로 취소되고 말았다.
3. 메리 크리스마스
미션의 클라이맥스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찾아왔는데, 아폴로 8호 승무원들이 성경(정확히는 킹 제임스 성경)의 창세기 제1장을 돌아가며 읽었다. 읽은 후 이렇게 마무리를 했다. "아폴로 8호 승무원들로부터, 좋은 밤을 보내시길 빌면서 마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지구의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이 말을 듣고 NASA에 나중에 지원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4. Earthrise(지구돋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지구 궤도를 벗어나 달 궤도에 갔다 온 아폴로 8호는 달 궤도에서 바라 본 지구의 사진을 다량으로 촬영하였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외부 천체에서 촬영한 지구의 사진을 직접 보게된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깊은 인상을 받았다.
특히 아폴로 8호가 찍은 '''Earthrise(지구돋이)'''라는 사진은 아직도 유명하다. 일출, 해돋이라는 뜻의 Sunrise에서 해(Sun)만 지구(Earth)로 바꾼 것이다. 사실 이 '지구돋이'라는 표현은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맞지는 않다. 달은 지구에 대해 동주기 자전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달에서 본 지구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영원히 고정된 것처럼 보인다. 즉 뜨지도 지지도 않기 때문에 rise나 set은 존재할 수 없다. 다만 달궤도를 도는 우주선 입장에서는 지구가 달의 지평선 너머로 뜨거나 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므로 아주 틀렸다고 하기도 그렇다.
참고로 단어가 주는 간지 때문인지 NASA에서도 공식 명칭으로 써먹고 있다.. 국제천문연맹에서도 위의 사진이 찍힌 바로 아래에 보이는 크레이터의 공식 명칭을 해당 사진을 찍은 우주인인 앤더슨+지구돋이를 합쳐서 "Ander's Earthrise"라 지었다.
5. 갤러리
6. 의의
아폴로 8호의 성공은 유인 달착륙 계획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약 중 하나였다. 아폴로 8호를 통해 미국은 소련과의 치열한 우주 경쟁에서 결정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애초에 여러 번에 나누어서 수행되었어야 했을 중요한 미션들을 한큐에 성공시킴으로써 달착륙 일정을 크게 앞당길 수 있었고 이후 케네디의 계획대로 1969년 안에 달착륙 후 귀환시킨다는 계획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
미디어의 영향을 십분 활용했던 폰 브라운의 영향으로 TV 카메라를 싣고 간 아폴로 8호는 달 선회 비행 동안 달에서 본 지구의 모습, 인류가 보지 못하는 달 뒷편의 모습을 카메라에 생생하게 담아 생중계로 시청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일반 대중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얻었다. 일반 대중들은 아폴로 8호가 달 상공에 생중계로 촬영한 달 표면의 화면들을 보면서 인간이 달 상공까지 갔다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류의 달 착륙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타임 지에서 68혁명의 젊은이들 대신 올해의 인물로 아폴로 8호의 우주인들을 실은 것처럼, 68혁명의 좌절과 보수파의 승리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아폴로 8호 미션에 대해 쓴 책 인류의 가장 위대한 모험 아폴로 8이 2018년 5월 국내 출간되었다.
[1] CDR백업 닐 암스트롱[2] CMP백업 버즈 올드린[3] LMP백업 프레드 헤이즈[4] 소련은 새로운 사령선인 존드를 잇달아 성공시켰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발사체 개발에 끝내 실패했다. 반면 아폴로 계획은 이미 새턴 V 로켓의 무인 비행에 성공한 상황이었다.[5] 사람이 탑승한 아폴로 우주선을 실제로 달까지 날려보낼 수 있는가의 성능이다.[6] 이 당시 가장 큰 문제는 사령선이 과연 자체 추진력으로 달 궤도를 탈출해 지구까지 돌아올 수 있는가가 검증이 안 된 것이었다.[7] 달에 착륙해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니라(...), 아폴로 13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사령선에 문제가 생겼을 때 착륙선을 임시 대피소로 사용할 수 있는 등 생존에 큰 도움이 된다.